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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코치 Dec 27. 2018

#3 나그네는 태양과 바람 중 누구의 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여러분에게

  “너 이 자식 따라 나와!” 회의장 너머로 고성이 들려온다. 오늘은 2020년 날씨를 전망하기 위해 세계기상기구(WMO)에서 태양, 바람, 달, 구름, 비, 지각판 등 여러 이해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국제회의를 진행하는 날이다.


  ‘굿 웨더 위시’ 위원장이 인사말로 “올 한 해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크고 작은 기상 변화로 저희가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저희 입장이 참 곤란한 한 해였습니다.” 한숨 쉬며 말문을 열었다. “쓰나미가 오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작은 조짐이라도 미리 말씀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라며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뭐 약속은 할 수 없지만 최대한 노력해보겠수다.” 쓰나미 직접적인 당사자인 지각판이 팔짱을 낀 채 대답했다. 태양이 불쑥 끼어들더니, “사실 저는 특별히 어떤 변화나 움직임이 없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이 제 역할에 충실할 뿐이죠. 매번 늦는 그 분과는 다르게 말이죠.”라고 말하니 앉아있던 참석자들 모두 크게 웃었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 여유롭게 들어온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오다가 일이 생겨서...” 언제나 처럼 제일 늦는 ‘바람’이다. “아니 오다 보니 토끼랑 거북이가 뭘 하는지 몰라도 열심히 뛰고, 걷고 하길래 하도 안돼 보여서 '약풍'으로 바람 좀 살짝 넣어주느라 늦었습니다.” 바람은 멋쩍게 웃으며 변명을 늘어놨다. ‘비’가 귓속말로 ‘구름’에게 속삭였다. “변명이 매번 새롭네요. ㅋㅋ 오지랖은 아주 그냥... 남들이 보면 온화한 부처님인 줄 알겠어요.ㅋㅋ”


  그렇다. 바람은 성격이 수시로 바뀐다. 너무나 즉흥적이다. 오전에는 산들산들 세상의 모든 꽃들에게 자상하다가도 오후에는 500년 된 참나무도 두 동강 낼 정도로 무섭게 몰아치는 그런 두려운 존재다.


  태양이 비꼬듯 바람에게 물었다. “다음엔 무슨 일로 늦을 계획이신지?” 참석자들이 킥킥 거리며 숨죽여 웃었다. “당신이야 매일 하는 일 없이 똑같은 곳에서 열이나 뿜어대고 있으니 나처럼 바쁜 걸 이해 못하겠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면 사람들이 바쁜 사람을 가리켜 바람처럼 사라진다고 말하겠나?” 바람은 흥분해서 쏟아내듯 말했다. 태양은 시니컬하게 “난 잘 모르겠는데, 보통 안 좋은 일에 당신 이름을 쓰던데. 예를 들어 허파에 바람 들었다, 누구랑 바람났다, 바람 잘 날 없네... 뭐 이런 거 말이야.” 분위기가 사뭇 이상하게 흐르는 걸 눈치챈 참석자들은 괜히 불통이 튈까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태양, 너 이 자식 따라 나와! 안 그래도 매번 딴지를 걸어서 언제 한번 혼쭐을 내 줄려고 했는데… 너 달처럼 얼굴에 구멍 좀 몇 개 내줘야 정신 차리지?” 구름이 달려들 듯 태양에게 위협하는데 태양도 지지 않고 한마디 했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호락호락하게 보이나 본데. 너 나랑 내기 한판 할까? 누가 더 힘이 센지?”, “좋았어. 지금 당장 붙자. 따라 나오라니깐.” 세계기상기구 위원장은 어떡하든 중재를 해보려고 했지만 양쪽의 위세에 눌려 한마디도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다. “당장 해보자구. 거기 콧수염 난 양반, 자네가 위원장이지? 자네가 심판 보도록. 태양이 나중에 딴말 못하게.” 하고 회의장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장소를 옮겨, 태양과 바람, 그리고 콧수염 난 그 위원장이 대결을 할 넓은 들판에 다시 모였다. 바람은 거만하게 태양에게 말했다. "아무거나 상관없으니 룰은 네가 정해라. 어차피 내가 이길 테니...", 그 말을 듣고 태양이 잠시 생각하다 두리번거리며 들판을 바라봤다. 마침 들판 한가운데 지나가는 나그네 한 명이 보인다. 그리고는 씨익 웃으며 바람에게 말했다. "오케이! 저기 아래 보이지? 낡은 외투를 입고 지나가는 저 남자. 저 외투를 벗기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하자.", "오케이! 콜! 아니 이건 한 방이네. 그럼 시간 끌 것 없이 룰은 네가 정했으니 내가 먼저 한다. 빨리 끝내고 나의 승리를 동네방네 알리러 가야겠다." 바람은 바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준비를 마친 바람이 한 방에 끝내겠다는 각오로 힘껏 바람을 불었다.


  여기서 잠깐! 내기가 있기 2시간 전. 나그네는 이리저리 구상하고 진행했던 사업들의 실패로, 생각 정리도 할 겸 한달 넘게 산악 트래킹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오늘 저녁은 바닷가 근처에서 민박을 하며 고등어회에 소주나 한잔할 계획이었는데 길을 잃었는지 아직도 산속이다. 산을 거의 내려왔을 때 양을 치는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소년에게 길을 물었다. "학생, 길 좀 물을게요. 바닷가로 가려하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나요?" 소년은 불쌍하다는 얼굴로 "방향을 잘못 잡으셨네요. 다시 산 중턱까지 올라가면 넓은 들판이 나오는데, 거기서 동쪽으로 쭈욱 직진하면 바닷가로 가는 오솔길이 보여요. 그리로 가세요."라며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학생 고마워요. 이 마을 사람이라 그런지 자세히 설명해주네. 정말 고마워요." 연신 고마움을 표시하며 다시 산 중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나그네는 돌아서는 순간 짓궂게 웃고 있는 그 소년의 얼굴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2시간 동안 열심히 올라갔더니 정말 넓은 들판이 나왔다. 나그네는 잠시 숨을 고르고 바닷가에서 고등어회와 소주를 마실 생각으로 입맛을 다시며 걷기 시작하는데 이게 웬일인가? 몸을 지탱하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들판이라 그런가? 바람이 왜 이리 세지?' 갸우뚱하며 한발 한발 내디뎠다. 몇 걸음 걷다 보니 단추가 뜯어져 외투가 거의 벗겨질 정도까지 이르렀다. 저 멀리 보이는 오솔길 옆 참나무도 이 엄청난 바람을 맞자 두 동강이 났다. 나그네는 가까스로 낡고 튿어진 외투를 쥐어 잡고 기다시피 하며 들판을 지나가는 중이다.


  1차 시기, 바람 실패. 바람은 울그락푸르락. 바톤을 넘겨받은 태양은 가볍게 비웃어주며 작렬하는 태양열을 뿌려댔다. 그러자 나그네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서 다시 걷기 시작한다. 이제 좀 체온이 돌아왔는지 땀도 다시 난다. 외투를 벗어 손에 걸치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태양은 깔보듯 바람을 쳐다봤다. 콧수염 심판이 태양의 손을 들어주려던 찰나, 바람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저기 나그네를 봐라. 더워서 패딩 조끼도 벗었다. 이건 우리가 정한 룰에서 벗어난 거니 무효다. 무효."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태양은 말도 안 된다며 우기지 말라고 심판에게 빨리 승리를 선언하라고 종용했지만, 콧수염 심판은 뒤끝 작렬하기로 유명한 바람이 무서워 무효를 선언했다. 다시 기회를 얻은 바람은 패딩 조끼만 입힐 속셈으로 바람을 조절하며 불었지만 나그네는 들고 있던 외투가 거추장스러웠는지 그냥 입어 버렸다. 태양도 다시 외투 벗기기를 재시도해봤으나, 태양열 자체가 기본적으로 너무 뜨거워 바람이 도와주지 않는 한 외투만 벗기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다시 기회를 얻은 바람은 또다시 바람을, 태양도 또다시 햇볕을 번갈아가며 끝장 결투를 벌였다. 콧수염 심판은 중간에 뭐라 말도 못 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런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결국 나그네가 하늘에다 주먹질을 하며 한마디 내뱉었다. “거 작작 좀 하쇼. 작작 좀” 태양과 바람은 갑자기 뻘쭘해져서 급한 약속을 핑계 대며 서둘러 사라졌다. 홀로 남은 콧수염 심판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중얼거렸다. "내년에도 날씨 때문에 고생 좀 하겠구나..."




  우리 주변에는 태양처럼 따뜻해 보이지만 어떤 속내가 있어서 친절한 사람도 있고, 바람처럼 대놓고 앉은 자리에서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소리를 눈하나 깜빡이지 않고 거칠게 불어대는 사람도 존재한다. 또한, 이 둘의 속성을 한 사람 안에 모두 갖고 있는 다중인격자들도 있다. 특히 이런 속성의 리더와 함께 일을 하면 어느 장단에 비트를 맞춰야할지 실로 난감할 때가 많다. 때로는 '콧수염 심판'처럼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치를 보면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지켜야 할 많은 것들이 있을 경우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나그네'와 같다. '낡은 외투(자존심)'를 벗기려 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낡은 외투(자존심)'를 지키기 위해 힘줄이 불거져 튀어나오도록 움켜쥐고,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내딛는 나그네가 우리의 모습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자존심'을 벗기려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거나, 피하고 살아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스스로 '낡은 외투(자존심)'를 벗어 버리고, '자존감'이라는 '새로운 외투'로 갈아 입어야 한다. '자존심'이 외부 대상과 연결되어 그들의 평가, 시선, 행동에 좌지우지 되는 감정이라면, '자존감'이란 외부 요인으로 자신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온전하게 자신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상위 개념이다. '자존감수업(윤홍균 저/심플라이프)'에선 자존심은 자존감과 연관된 감정을 뜻하며, 일반적으로 자존심은 자존감이 떨어졌을때 느끼는 상한 감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자존심'을 벗어 버리고, '자존감'을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1. 나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는 공동체에 속하자

  회사를 그만두고 1인 기업으로 활동하면서, 간혹 "혼자 일하세요?, 직원은 없나요?", "대표님말고 다른 직원이 오셔도 되는데..."라는 말을 들을 때 상대방은 특별한 이유없이 묻는 것이지만 한참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때엔 자연스럽게 자존심이 상했다. '이 사람이 혼자 일한다고 무시하는거야?', '이런 사소한 걸 왜 대표가 하는지 물어보는거야?'라며 괜한 자격지심도 생겨났다. 이런 감정이 들때마다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을 묵묵히 응원해주는 이들을 만나면 자존감이 다시 회복되는 걸 느꼈다. 갑작스럽게 생각났다며 앞장서서 길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멋지다며 지지해주는 업계 후배들의 한마디와 괜시리 싱겁게 전화해서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연락주는 지인들, 별 도움도 못 주는데 항상 '최고'라고 치켜세워주는 무조건적인 지지해주는 공동체들을 통해 외부요인에 흔들림 없이 '자존감'을 지켜가고 있다.  


2. 결정의 주체는 나다. 사소한 것이라도 결정하는 훈련을 하자

  난 태생적으로 '결정장애'를 갖고 태어난 듯 싶다. 하다못해 점심 메뉴를 고를 때도 내 의지를 갖고 고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항상 있었다. 때로는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그럴싸하게 포장도 해봤지만 솔직히 내 결정을 타인에게 미루기 위한 일환이었다. 아마도, 결정과 세트로 따라 다니는 '책임'이라는 단어를 회피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에게 책임을 미루기 위해 결정을 회피하게 되면, 결국 자신이 없어지게 되는 걸 몇 몇 사건을 통해 내 자신이 뼈저리 느끼면서 결정의 주체 의식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독자 중 나와 비슷한 유형이 있는 분이라면  '자존감' 훈련을 위해서라도 아주 사소한 것부터 결정하는 연습을 해보자. 당장 오늘 점심 메뉴는 본인의 의지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선택해보자. ^^    


3.  감정을 드러내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감정 표현에 솔직해지자.

  감정 표현에 있어서 실제로 남녀차이가 존재하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태어나 전형적으로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분위기에서 성장해 눈물, 슬픔, 외로움, 기쁨 등 감정을 드러내는 단어를 문장형으로 구사하는게 쉽지 않았고, 지금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하지만, 코칭을 공부하고 나서부터 의지를 가지고 일부러 감정단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실제로 코칭 질문을 하면서 내 자신이 달라지는 순간을 느낄 때가 있다. 상대방에게 단순히 정보를 묻는게 아니라 그 사건, 상황에서 발생한 감정을 묻게 된 것이다. "그 프로젝트에서 빠지게 되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혹은 "지난 제안서가 통과 되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어요?"와 같은 질문에 처음엔 쉽게 답을 하지 못하지만 천천히 본인의 감정을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깊이 있는 주제로 연결되는 경험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먼저 감정 표현에 솔직해지려면 결국 누군가가 물어봐줘야 한다. 주변 친구들에게 기분, 감정을 먼저 물어보자. 그러면 상대방도 물을 것이다. 서로가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들을 확보하자. 자연스럽게 '자존감' 훈련을 할 수 있다.


  끝으로 다시 강조하자면, 우리의 외투는 온전히 우리의 것이다. 더워도 내가 춥게 느껴지면 입고 있는 것이고, 추워도 내가 덥다 싶으면 벗을 수 있다. 그것이 우리의 온전한 '자존감'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사람이 그대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고대 로마의 철학자) -

거북이와 토끼가 왜 걷고, 뛰고 했는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클릭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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