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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코치 Dec 18. 2018

#1 거북이는 앞만 보고 달린다

거북이가 토끼와 재대결하면 다시 이길 수 있을까?

  거북이와 토끼의 경주 이야기는 유치원 아이들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우화이다. 몇 년 전 TV 프로그램에 한 연예인의 강연으로 다시 주목받았는데, 거북이가 토끼를 이길 수 있었던 건 거북이에겐 ‘콤플렉스’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느리다는’, ‘질 것 같다’는 열등감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거다. 물론 감동적이고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지만 우리가 처해있는 현실을 들여다보면 인생은 마냥 우리의 마음가짐처럼 되지 않는다. 인생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정말 거북이는 ‘콤플렉스’가 없어서 그 경주에 응했을까?


  보통 그런 거북이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돈키호테 유형이거나, 거북이들 사이에서 불가피하게 뽑힌 피해자 유형 이거나, 모종의 거래로 가족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레이스에 몰린 '소년 가장' 유형일지도 모른다.


  거북이는 느리다. 나무늘보 보단 빠르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겠지만 절대적으로 느린 동물이다. 보통 물속에선 4~5m/s, 땅에서 걸을 때는 1~2m/s라고 하며 이를 시속으로 계산하면 넉넉하게  잡아도 시속 8km 정도다. 토끼는 최대 속도가 80km/h라고 하니 거북이보다 10배 정도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거북이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 경주에 임했을까? 어차피 질 경기인데 최선을 다하면 창피할 테니 바위 이끼를 밟고 굴러서 다리를 다칠까? 좋아하는 새우를 왕창 먹고 탈이 난 걸 핑계 댈까? 보통 이런 걸 가리켜 심리학 용어로 ‘구실 만들기(self-handicapping)’라고 한다. 이렇게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기 정당화 거리를 열심히 찾았을까? 만약 지더라도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자책보다 핑계 대고 빠져나갈 무언가를 만들어놓으려 준비했을까? 경기에 임한 거북이는 적어도 그런 마음은 아니였을 것 같다. 왜냐하면 거북이에게는 완주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고난이었을 텐데 끝까지 결승전을 통과했으니 말이다.


  토끼와 경주를 벌인다고 용궁 내부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런 이벤트를 기획하는 용궁 수뇌부를 비웃었다. 하지만, 어찌 윗분들의 뜻을 한낱 거북이가 이해할 것인가! 최근 ‘드래곤 킹’의 병환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면서 간이식을 위해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데, 해양 동물에선 간이식을 실패해 육지 동물까지 실험을 넓힐 계획을 갖고 있었다. 이를 위해 육지 동물과 친선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이번 이벤트를 기획한 것이다. 거북이는 처음엔 비웃었지만 생각해보니 바다와 육지를 오갈 수 있는 생물이 몇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불안해졌다. 역시나 펭귄과 거북이가 최종 후보로 발탁되었고, 한참 여름인 점을 감안해 거북이가 최종 낙점이 됐다.


  대회 본부에선 어차피 기대하지 않으니 육지 동물들과 새로운 교류의 장을 여는 측면이라 생각하라고, 거북이에게 부담 갖지 말라며 격려해준다. 거북이는 대회 날짜가 다가올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어차피 지는 경기인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오히려 더 창피한 게 아닐까? 하지만, 8살 딸아이에게 죽은 새우를 먹더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신념에 부합하지 않는 것 아닌가? 혹시 토끼가 너무 자만해서 달리다가 다리를 다치는 경우도 만에 하나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오만가지 생각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제 거북이는 생각이 정리되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선입견과 거북이가 갖고 있는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겠지만, 질 때 지더라도 ‘가오’있게, 가족과 친구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지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멋있게 지기 위한 전략적 방향을 생각해 본다.


  첫째, 환경을 장악하라. 경기 날짜를 올해 들어 가장 더운 날로 선정하고, 태양이 가장 뜨거운 오후 2시로 잡았다. 어차피 경기하기 유리한 날씨는 차이만 더 벌어질 뿐이다. 최악의 날씨와 함께 점심 식사 이후 긴장이 누그러지는 시간대를 잡았다. 단거리는 어떠한 시도도 하기 전에 끝나 버릴 수 있어 장거리를 제안했다. 거북이 입장에선 토끼보다 더 고통스러운 레이스가 되겠지만 명분 있게 지려면 이런 장치들이 필요하다.


  둘째, 심리전을 펼쳐라. 토끼에게 도발하는 건 하등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토끼가 안심할 수 있도록 토끼를 더욱 칭찬하고, 괜히 이런 이벤트에 착출 되어 고생한다며 동료애를 만들자.


  셋째, 페이스를 조절하라. 어차피 질 바에는 끝까지 결승선에 도착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토끼도 친선 경기에서 상대방 입장도 있어서 일방적으로 마냥 달리지는 못할 것이다. 경기 초반엔 평상시보다 더 느리게 걸으면 토끼 입장에선 답답해서 어쩔 줄 몰라할 것이다. 경기 막판까지 걸을 수 있는 힘을 아껴놓고 마지막 시점에 온 힘을 다해야겠다.


  넷째, 승부수를 걸어라. 만약, 정말 계획에 없던 돌발상황이 발생할 경우, 예를 들어 토끼가 너무 신나게 달리다가 나무 터기에 부딪쳐 다리가 골절된다거나, 날씨가 너무 더워 열사병으로 휴식을 취하게 될 때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에너지를 집중해서 멋있게 지겠노라고…


  출발 총소리와 함께 경기는 시작되었다. 역시나 토끼는 토끼다. 알기론 나와 시합하게 된 저 토끼는 작년에 여우 2마리에 쫓겼을 때 놀라운 스피드로 살아남아 초식 동물 세계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토끼 페이스에 말리지 않도록 일부러 더 늦게 걸음을 떼고 있다. 앞서가던 토끼가 뒤를 자꾸 돌아본다. 그리고는 갑자기 다리를 조금 절룩거린다. 누가 봐도 페이크이다. 저쪽에서도 친선경기이다 보니 서로의 체면을 살려주자고 어느 정도 이야기가 오고 간 듯 싶다. 난 그럴수록 더 늦게 걸었다. 다리에 추를 달고 걷는 죄수처럼 다리를 질질 끌면서 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리를 절룩거리는 척하던 토끼는 30분이 지나자 더는 못하겠다는 얼굴로 다시 쌩하니 달리기 시작한다. 이젠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이미 결승선을 통과해서 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외로운 경기가 되겠지만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리라.


  날씨는 더욱 뜨거워져 등짝이 바싹바싹 갈라지는 느낌이다. 오늘은 상호 불가침 조약에 따라 경기에 임하는 선수에겐 어떤 누구도 공격이 불가하다.비록 날씨는 무덥지만 이렇게 목숨을 걱정하지 않고 산과 들을 걸어본 적이 한번이라도 주어졌던가? 항상 쫓기듯 걸었던 풍경이 눈에 또렷하게 들어온다. 살짝궁 불어오는 여름 바람은 이 와중에 희망을 준다. 조직을 위해, 가족을 위해 묵묵히 걸어본다.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앞만 보고 걷는다. 그러다 보면 언제 가는 도착 하겠지라는 마음으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느낌이다. 그간 태어나서 걸어본 거리를 모두 합치고 합쳐도 지금 이 경기만큼은 되지 않을 것이라 단언할 수 있다. 이제 뇌가 정지된 채 다리만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저 멀리 결승선이 보인다. 토끼는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진작에 통과해서 집으로 돌아갔나 보다. 결승선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용궁 수뇌부 얼굴들도 이제 보인다. 그런데 표정이 이상하다. 이건 마치 내가 이기면 안된다는 곤혹스러운 얼굴이다. 몇몇은 멈추라는 수신호도 보낸다. 이상해서 뒤를 보니 100미터쯤 뒤에 토끼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여우에게서 살아남았다는 소문이 거짓이 아니었나 보다. 내 얼굴도 곤혹스러워진다. 하지만, 먼 훗날 인생을 돌이켜볼 때 후회 없는 선택을 하는 걸까? 거북이는 다시 단호한 얼굴로 피멍이 들어 보라색이 된 발걸음을 힘차게 옮겨본다. 결승선이 보인다. 드디어 통과했다. 당혹스러워하는 대회 관계자들의 얼굴이 잠시 스친다. 눈이 풀린다. 그대로 쓰러진다.


  거북이가 토끼와 재대결하면 다시 이길 수 있을까? 아마도 불가능할 것이다. 지난 경기의 패배 확률이 90% 라면, 재대결은 99.9%로 패배할 것이다. 토끼는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한 채 지난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압도적인,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이 100%라는 확률은 존재하지 않기에, 그 토끼가 대회를 하루 앞두고 독수리에게 혹은 늑대나 여우로 인해 육지에서 사라질 수도 있기에 우리는 작은 확률에도 마지막 한방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  


  애당초 나는 토끼가 아니라 거북이다. 항상 불리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때론 고압적인 고객사의 공정하지 못한 요구에도, 패배가 확실한 경쟁 비딩에도, 불합리한 직장 상사의 요청에도 전략적인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대부분 우리는 불공정한 시스템 안에서 가족을 위해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패배를 항상 염두해 두고 경기장에 매일같이 오르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예상했던 바와 같이 거북이가 졌더라도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과 불리한 여건에서도 전략적인 상황을 만들어 최선을 다한 거북이를 단순한 패배자로 취급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땅에 거북이들에게 커뮤니케이션 코치로 내 역할을 수행해보고 싶다.     


 나를 포함해 이 땅에 살고있는 많은 거북이들에게 희망을.


패배한 토끼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클릭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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