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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청 Oct 23. 2022

자가격리 기록 - epilogue

2022.10.15. 국내 확진자 발생 1,000일

여담이지만 확실히 나는 선발투수 체질인 것 같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한 주제로 글을 쭉 썼는데 마무리 글을 작성하는데 한 달이라는 시간이나 걸렸다. 물론 회사 업무가 너무 바빠서 별도의 시간을 내어 모니터 앞에 또 앉는 것이 싫어 게으름을 피웠기는 했지만.. 하여튼,


글을 마무리하는 일자는 2022.10.23.(일). 2022.09.25.(일) 자정을 기해 공식적으로 격리가 해제되었기 때문에 이미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길다고, 짧다고 해도 될 격리 1주일 동안 왜 사는지에 대한 나름 깊은 성찰을 했다. 1인 가구 특성상 대화를 주고받을 사람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사라졌다. 전화를 할 수는 있지만 전화로 하는 대화와 사람을 앞에 두고 하는 대화는 그 수준과 품질이 다르다.

그렇게 말이 줄어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많아졌다. 이 생각이 건설적으로 발전하면 참 좋았겠다. 처음에는 별 시답지 않은 공상, 망상을 하다 격리 말미에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 이유는,


지금 내 삶에는 별다른 목적이 없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그냥 눈 뜨면 출근하고, 일 하다가, 업무 마치면 퇴근하는.. 그런 재미없고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특히 지금 직장으로 이직을 하고 난 다음에는 업무가 많다 보니 주말에도 비슷한 루틴을 이어가고 있더라. 물론 일을 하며 느끼는 보람과 나의 업무 역량에 대한 성장은 매우 뿌듯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이 쌓였더라도 토, 일 중 하루라도 온전히 쉬거나 개인적인 일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바쁘다. 그렇게 억지로라도 쉬지 않으면 경상도 말로 소위 '퍼질' 것 같아서.


그러다 보니 삶이 참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단지 한 달 먹고 살 금전적인 비용을 메꾸기 위해서? 그러면 그거 벌어서 나는 무엇을 하는가?


그냥 착실하게 적금 넣고 저축하면서 통장에 잔고가 올라가는 거 보고 있으면 행복하나? 나는 바보 같이 돈을 쓰는 것도 잘 못해서 뭘 하나 사려고 할 때에는 온갖 사지 않아야 하는 이유가 머릿속에 가득 해진다. 즉, 적절한 소비를 하는 방법도 잘 모른다. 그렇다고 통장에 몇억씩 잔고가 있나? 그것도 아니고..


대화할 사람이 없는 1인 가구의 1주일 자가격리는 매우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말이 없으니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한 생각은 좋은 방향으로 가기가 어렵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감옥을 묘사할 때 그렇게 죄수들이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아직 만으로 따지면 40살도 되지 않은 나이. 그래서 '인생'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참 어색하지만 뭐랄까.. 당장 죽어도 남들 다 가는 장가를 못 가봤고, 연애를 그렇게 많이 해보지 못한 것 빼고는 크게 후회가 되지 않는 인생. 만일 내가 죽는다면 감사하게도 슬퍼해 줄 누군가에게는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미안하지만..


아, 뭐 그렇다고 죽고 싶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 어설픈 글은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한풀이이다. 현재 내가 스스로에 대해서 느끼는 것처럼 '목표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어떤 유의미한 의미가 있는가? 그냥 숨 쉴 때마다 탄소만 내뱉고, 식량이나 축내는 지구 스케일로 봤을 때 벌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 삶이 과연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다시 한번 반복하게 된다. 명상이나 사색을 하는 사람이 아닌 경우, 말을 할 일이 없는 1주일의 격리는 매우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Image from Pixabay https://pixabay.com/images/id-593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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