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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효진 Oct 10. 2023

여성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커뮤니티에서 돌봄 고민하기


요즘 나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한다. "많이 바쁘죠?" 바빠도 바쁘다고 말하지 말자, 스스로 바쁘다고 느낄 정도로 뭔가를 하지 말자, 바빠서 시간 없다고 말하지 말자는 게 평소 신념이지만 최근에는 저 질문에 "음.... 좀 그런 것 같긴 해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9월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학교라는 곳에 가서 수업을 받아본 게 10년도 더 전의 일인 것 같아서 진학을 결정하기까지 망설이는 시간이 길었다. 막연하게 예전부터 공부를 더 한다면 여성학을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 왔다. 여성주의적 관점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있는데 정작 이론적 바탕은 전혀 없다는 부끄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전공은 여성학이 되었다. 최종 합격 발표가 나고 처음으로 부모님께 이 사실을 알렸다. 엄마는 말했다. "근데 공부까지 꼭 여성학을 해야 하니? 너 혹시 여성 운동가 뭐 그런 거 될 거니?" 운동가는 아무나 하는 건 줄 아냐고, 운동이 그렇게 쉬운 줄 아냐고 한마디를 하려다 그냥 웃고 말았다.


시간이 있었는데요, 없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는 총 4학기 동안 총 24학점을 이수하면 된다. (물론 논문이라는 아주 큰 산이 있다.) 한 과목당 학점은 3점, 그러니까 총 8과목을 수강하면 되는 것이고 학기당 2과목이면 충분하다는 계산이 쉽게 나온다. 개강 직전, 수강 신청을 앞두고 이 계산을 두드려 본 후 나는 안심했다. 한 학기에 2과목? 왜 못해? 2과목이니까 수업은 일주일에 이틀만 들으면 되고, 그건 곧 일에도 크게 지장 받지 않으면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 계산에 엄청난 착오가 있었다는 건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알았다. 수업은 일주일에 이틀이지만, 그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반드시 더 들여야 했다. 수업에서 사용하는 책이나 논문을 읽고, 내용을 파악하고, 때로는(실은 자주) 파악한 내용을 발제문으로 정리하고, 또 때로는 나름의 내 생각을 담아 논평문을 써야 한다. 일주일 동안 이걸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강의계획서에 '참고 자료'라고 언급된 것들은 읽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예전에 한 동료가 '대학원에서 공부를 한다는 건, 내가 뭘 모르는지 파악해 가는 과정'이자 '입학 전 구상했던 연구 주제를 (내 역량으론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좁히고 좁히고 좁혀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해 준 적이 있다. 그 말을 들어둬서 정말 다행이었다. 교수님이 질문을 던져도 대답하지 못하는 나, 분명 책을 다 읽었는데도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너무 실망하지 않을 수 있다. 원래 내가 구상했던 논문 주제는 '일터에서 발휘하는 여성의 소프트 스킬'에 관한 것이었는데, 수업을 들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저 주제로 (내가) 논문을 쓰는 건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떠오른다. 괜찮다. 어떻게든 바꾸면 되니까. 되겠지... 아마도...


날씨가 무척 좋았던 날, 학교 풍경. 수업 시작 전에 찍은 사진인데 이대로 영원히 수업이 시작되지 않았으면 했다....


커뮤니티를 돌봄의 눈으로 본다면 


최근에는 돌봄 노동과 민주주의에 관해 배웠다. 돌봄을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그리고 육아와 가사, 간병뿐 아니라 타인과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에게 관심을 갖고 보살피는 행위로 확장할 때, 돌봄을 우리 삶의 중심에 놓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지 이론을 바탕으로 상상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돌봄이 너무 좁은 범위에서 논의되고 있었으며, 여성들의 몫으로 떠넘겨져 왔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중요한 건 인간은 모두 타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존재라는 것. 모두가 평생 동안 돌봄을 하고, 돌봄을 받는다는 것. <돌봄 민주주의>​라는 책을 통해 이런 이야기들을 읽는데 뉴그라운드 커뮤니티가 떠올랐다. 커뮤니티를 만들고 꾸려나가고 거기에 참여한다는 건 어쩌면 돌봄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커뮤니티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이 각각 어떤 상황인지 자세히 살피고,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거나 받기도 하고, '우리'가 커뮤니티 안의 우리에만 머물지 않으려면 바깥으로 시선을 어떻게 확장해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고 공부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에는 시간과 감정과 에너지와 (때로는) 비용이 들어가고, 기대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 보는 게 돌봄이 아니면 무엇일까.


뉴그라운드에서 경험하고 목격한 돌봄의 장면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 떠올려 본다. 그것을 어째서 돌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그게 내 기억에 특히 남아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잘 써보고 싶다. 그러려면 공부와 고민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으니, 이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 이어가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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