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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아픈 주말

장염아 고마워

by 그레이
아이가 아픈 주말, 우리는 오랜만에 긴 시간을 집 안에서 머물렀다.
아픈 아이를 안고, 함께 웃고 부비며 하루하루를 보낸 그 짧은 며칠 동안 아이는 또 자라고, 우리는 조금 더 애틋해졌다.

아이와 함께한 오늘은 다시 오지 않을 시간임을 새삼 느낀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두고 싶다.


어느 주말 내내 아이가 장염에 걸려 우리 가족은 거의 집에만 있었다.


보통 평일에는 하원하고 집에 들어와 저녁 먹으면 잠시 후에 자야 하는 터라 주말에는 가능한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바이러스성 장염이다 보니 나가기도 어려웠다.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외식하기도 어렵고, 아이들이 있는 실내에 가기도 꺼려졌다.

어쩔 수 없이 이틀 동안 잠시 산책으로 바람 쐬러 나간 것 외에 집에만 있었다.


신생아 시절 이후 오랜만에 세 식구가 이틀 동안 부대끼며 보냈다.

처음에는 너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더 애틋해지고 가까워졌다.


장염이긴 하지만 컨디션이 괜찮았던 아이 덕분에 하루 종일 안고,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 보고 부비고, 웃고, 장난치며 보냈다. 아이와 보낸 시간의 결과로 나와 와이프도 결국 장염 증상을 보였지만, 그래도 최근에 이렇게 집에서만 보낸 시간은 없었던 터라 내심 좋았다.


그럼에도 뭔가를 먹고 나서 분수토를 하는 아이가 안쓰러워 그랬는지,

평소에는 더 못 먹어서 항상 아쉬워했던 아이가 좀처럼 먹으려 하지 않는 모습이 안타까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자꾸만 더 안아주고 싶고 괜히 품 안에 오래 두고 싶었다.



'언제 이렇게 컸지, 언제 이렇게 어린이가 된 거지.'


안타까운 마음에 아이를 쓰다듬다 문득, 아이가 그새 많이 큰 것 같았다.

아직도 두 돌이 갓 지났지만, 불과 엊그제 한 손에 잡힐 만큼 한 줌의 아기였다. 그런데 언제 이렇게 커서 아랫집 할머니 놀라시게 쿵쿵 뛰어다니는지.

언제 이렇게 자라서 방방도 타고, 어디서 배웠는지 에스파 노래에 몸을 흔드는 경지에 이르렀는지.



2년이란 시간이 육아의 세계에서는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똑같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쉬던 2년 전 하루가 오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육아를 시작한 후 2년은 세상이 달라것 같다.


아이는 눈도 잘 못 뜨던 핏덩이에서 어느새 안으면 악어 새끼마냥 묵직한 아이가 되었고, 모유와 분유를 요구르트만큼 먹던 신생아에서 어느덧 엄마 아빠와 같이 삼겹살을 먹는 아이로 자랐다.


똑같은 직장에서 비슷한 업무를 했던 내 회사생활은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데, 아이는 세상을 인식하지도 못했던 존재에서 유튜브 만화를 한 번만 보고 자기로 약속하는 협상의 인격체로 컸다.



아이가 통잠 자기 전인 신생아 초기일 때, 두 돌이 지난 아이를 키우던 육아 선배들이 참 부러웠다.


그때가 되면 그래도 육체적으로 조금 나아진다는 말에 빨리 두 돌이 되길 바랐다. 길고 길던 2년이 지난 지금, 되돌아보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싶다. 아이가 아침에 먼저 일어나 "엄마, 아빠 잘잤어요!" 부르며 배시시 웃을 때, 기분 좋게 아이 얼굴을 쓰다듬으면서도 새삼 놀란다.


'우리 조그맣던 아기가 언제 이렇게 커서 모닝콜을 해주나.'


뭉클하고, 기특하면서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오늘의 아이는 다시 오지 않을 텐데 이렇게 빨리 커버리다니.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아쉬움을 넘어, 야속하고 서글픈 마음까지 든다.



함께 부대꼈던 주말 동안 우리 식구는 비록 장염으로 고생했지만, 문득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와 사랑하는 와이프와 한 공간에서 살을 부비며 웃고, 떠드는 시간.

지금의 순간을 붙잡고 싶었다. 시간도 공간이라면 영원히 머물고 싶었다.


아이는 금세 두 돌의 아기가 된 것처럼 점점 더 빨리 자라, 언젠가 청년이 되고, 성인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나겠지.

한 명의 독립체로 또 다른 가정을 꾸리고, 아이의 아이를 낳아 주말 동안 내가 느낀 것들을 똑같이 느끼겠지.

그리고 그제서야, 비로소 부모가 되어서야 엄마와 아빠의 오늘을 생각하겠지.


아이를 키울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아이와의 헤어짐을 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잠시 우리에게 찾아왔다 가는 손님처럼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생각에, 아이와 함께한 오늘은 결코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마음에,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간절하다.

예정된 이별이 있기에 아이는 더욱 귀하고, 사랑스럽다.


아이가 아팠던 주말, 아이는 조금 힘들었을테지만, 장염은 우리 가족을 어제 보다 더 애틋하게 만들어주었다.


#아빠육아 #육아에세이 #아이가아픈날

KakaoTalk_20250612_012120499.jpg 장염에 걸린 어느 주말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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