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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의 이별 연습

어린이집 등원을 하며

by 그레이
등원에서 가장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아이를 두고 돌아설 때 그 얼굴이다. 웃으며 “안녕!” 하는 날엔 출근길 발걸음이 가볍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까꿍!’이라는 작은 마법에 겨우 웃음을 찾아낸 아이를 두고 돌아서는 순간, 내 오른손은 아이를 슬며시 떠밀었고, 왼손은 그 등을 끝까지 놓지 못했다. 이 짧고 잔인한 작별을 반복하면서 나는 문득 생각했다.

혹시 지금 우리는, 언젠가 진짜 이별을 견디기 위한 ‘연습’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린이집 등원에서 가장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건, 아이를 두고 떠나는 그 순간의 표정이다.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는지, 아니면 불안한 듯 울먹이는 표정인지, 눈물을 주룩 흘리고 있는지. 어떤 표정으로 아이를 두고 떠나느냐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달라진다.


웬일인지 기분이 좋아 아빠를 꼭 안고 웃으며 선생님께 달려가는 날은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길에 오른다. 하지만 반대라면 하루 종일 찝찝한 마음이다. 전날 잠을 잘 못 자서인지, 새 학기에 낯선 환경 때문인지, 혹은 어린이집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서인지 가끔은 금세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대부분 도착하자마자 쑥스러워서 쭈빗쭈빗거리다가 친구들이 간식 먹고 있는 모습을 보거나, 선생님이 새로운 장난감을 큰 목소리로 소개하면 '오잉' 궁금해하는 표정을 지으며 들어갔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잠도 잘 자고 컨디션도 괜찮았는데 이상하게 교실 문 앞 실랑이가 길어졌다.


"마지막으로 아빠 꼭 안고 들어가자."


선생님의 말씀이 무색하게 벌써 다섯 번 넘게 마지막 포옹을 했다. 이산가족 짧은 만남뒤 헤어짐의 만 분의 일이나 될까. 마지막 안녕의 의식 속에서 알 수 없는 아이의 슬픔에 아빠 마음은 찢긴다.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이 있는 것도, 기발한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저 전 보다 조금 더 꼭 안아준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아. 엄마가 이따 데리러 오실 거야."


라고 말하며 은근슬쩍 아이 등을 선생님 쪽으로 미는 순간 아이를 보내는 오른손이 어찌나 민망하고 미안한지. 왼손은 아이의 어깨를 다독이며 안쓰러워 쓰다듬지만 눈치 없는, 아니 눈치 빠른 오른손은 출근 시간을 핑계로 아이를 슬며시 밀어냈다.


그럼에도 주저앉으며 저항하는 아이를 보며, 결국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아빠랑 까꿍놀이하자!"


교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선생님 품에 안긴 아이에게 교실 밖에서 숨었다가 나타났다 까꿍 인사를 해주는 게 전부이지만 까꿍놀이를 하면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배시시 웃는다. 강제로 선생님 품에 안겨 들어간 아이는 두세 번 까꿍 인사를 하고서야 비로소 웃었다. 조금 전까지 들어가기 싫다고 울던 아이는 아빠의 얄팍한 작전에 넘어가 결국 썩소 같은 미소를 아빠에게 허락해버리고 말았다.


1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반복하는 등원이지만 마지막 헤어짐은 아직도 익숙지가 않다. 알 수 없는 이별을 견뎌야 하는 아이의 마음이 안쓰러운 아빠와 그럼에도 출근은 제시간에 해야 하는 직장인 사이 어디쯤에 서 있던 나는 얼른 어린이집 복도를 뛰듯 빠져나왔다. 길지 않은 출근길 버스 속 쨍한 햇살이 깃든 창가에 아이의 울던 얼굴이 비친다.


'하,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순간 밀려오는 현타감에 와이프에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웬일인지 아기가 울면서 들어갔다고. 다행히 마지막 까꿍놀이로 아이는 웃으면 들어갔으니 마음이 조금은 덜 불편했다는 말도 함께.


그래도 오늘의 등원은 쉽지 않았지만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꽤나 잘 적응하는 것 같다. 특별히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친구들과 지내는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린이집에 특별히 가기 싫어하지도 않는다. 선생님들의 피드백도 대부분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이니 어쩌면 가끔의 등원 거부는 큰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 거다.


그럼에도 매일 겪는 아이와의 헤어짐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기계처럼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과정에서 미안함과 걱정, 잘 지낸다는 안심과 대견함이 뒤섞인 감정이 밀려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아이가 커갈수록 몸은 덜 힘든데 아침의 잔인한 이별은 마음을 어렵게 한다. 그래서 가끔은 이별에 의미부여를 해보기도 한다.


어쩌면 나중에 아이가 커서 진짜 이별을 해야 할 때를 미리 연습하고 있는 건 아닐까라고. 언젠가 아이가 성인이 되고 부모를 떠나 독립할때, 진짜 떠나보내야 하는 그때를 지금부터 미리 연습하는 거라고. 매일의 슬픈 이별에 조금이라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면 마음만 힘들어질 테니.


이별 연습을 하기엔 세 살배기에겐 너무 빠른 게 아닐까 생각이 들면서도 그 이상의 의미를 생각해내지 못한 아빠는 오늘도 아이가 잘 지낼 거라는 믿음과 희망을 품고 출근길에 오른다.


가끔은 즐거운 등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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