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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연말파티

by 스캇아빠

무슨 일이 있었든, 무슨 고민을 하고 있던지,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흘러, 다시 또 연말이 되었다. 올해 시작할 때, 벌써 2025년도야 라고 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리고 분명 그때도 엊그제 2024년 시작이었던 것 같았는데라고 말했는데), 분명 그랬던 것 같은데, 다시 또 올해도 끝나가고 있다.


동네에서 가장 먼저 꽃봉오리가 올라왔던 우리 집 앞마당 나무는 눈이 가지가지 매달려 눈이 버거워 뒤뚱거리고 있고, 가을에 미쳐 치우지 못했던 낙엽은 눈에 파묻혀 나의 게으름을 숨길 수 있었다. 놀이터에서 몸을 던지던 우리 집 강아지는 이제 딱딱하게 굳은 놀이터 바닥에 몸을 던지기를 주저한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오피스 파티를 한다. 작년에 3일간 진행했던 파티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올해는 낮에도 이것저것 하고, 밤에도 이것저것 하기로 해서 밴쿠버에서 1주일간 진행하기로 한다.


처음 캐나다에 와서, 경험했던 오피스 "파티"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어색"했다. 잔을 들고, 여기저기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누구는 데려온 플러스 원을 소개하고, 어떤 이는 분명 처음 본 얼굴인데, 나를 아는 듯 인사를 하고, 배는 고픈데 밥 될만한 건 없고, 누군가의 수다가 재미있어 보여도, 자리를 옮기기도 뻘쭘하고, 회사에서 부른 밴드의 연주를 들으면서 누구는 어깨춤을 추고, 앞에 있는 사람과 무슨 말을 해야 하는 건지, 잠시 대화가 끊기면 그냥 있어야 하는 건지, 다른 데로 옮겨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영어를 알아듣지도 못하겠고, 배는 고픈데, 그나마 아는 밥이 될만한 음식은 새우 밖에 없는 것 같다. 술은 뭐가 뭔지 몰라서, 앞에 사람 시킨 거 "세임띵"만 시키다가, 그나마 밥이 될 것 같아 보이는 "블러드메리"를 밥대신 마신다. 그렇게 어색함에 토마토 주스맛 술을 마시다가 이내 술에 취한다.


목소리는 커지고, 술에 취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할 말이 많다. 내가 영어실력이 는 건지, 동료들이 한국말을 하게 된 건지,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그냥 서로 알아서 듣고 싶은 말을 들은 건지, 우리는 서로의 대화를 듣고, 같이 웃고, 같이 화를 낸다. 비어퐁 게임을 아무리 봐도, 탁구공을 던져서 넣으면 먹는 건지, 못 넣으면 먹는 건지, 상대방이 넣으면 내가 먹는 건지, 나는 10년째 룰을 모르고, 또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다시는 술 먹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는 건, 한국이나 캐나다나 똑같구나 싶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전날의 기억이 창피한데 완전한 기억은 아니다. 누군가 나한테 F 뭐라고 했던 거 같은데, 왜 그런지 모른다. 다음 해에도 같은 회사에 있으면 알게 되겠지. 아 그게 이번해지, 이번에는 술을 조금만 마셔야겠다. 적어도 테킬라는 먹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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