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지역에 눈이 왔었다. 낙엽이 다 지지도 않았는데, 눈부터 쌓였다. 우물쭈물하다가, 준비를 안 하다가 겨울이 오면 이런저런 문제가 생길 거다라고 경고를 하고, 눈은 다시 녹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생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낙엽을 치웠다. 그리고 그런 경고를 나만 받은 건 아니었는지, 동네에 낙엽더미들이 여기저기 쌓였다.
그리고, 나는 이제 11월이 1주일 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올해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흐른다. 그렇게 올해가 끝나고, 내년이 오면, 나의 소중한 첫째도 집을 떠나겠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5살이었던 첫째를 보며, 7년이 지나 첫째가 12살이 되면, 나는 저녁에 아이들 밥 차려주고, 나가서 저녁에는 펍에 가서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첫째가 12살이 됐을 때,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고 생각한 건지, 코로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그리고 내년 여름,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나는 입버릇처럼, 아이를 독립시키겠다고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진짜 할 수 있을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우리 집 여기저기에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렸던 그림들이 걸려있다. 걸려있기도 하고, 벽난로 위에 걸쳐있기도 해서, 누가 보면 그림을 가져다 놓은 건지, 치우다 만 건지 헷갈려 할 수 있다.
당연하겠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있어 보인다. 누구는 사진으로 순간을 기억하고, 누구는 물건으로 과거를 추억하는데, 나는 그림으로 아이들과 있었던 시간들을 추억한다. 아이들이 어렸을대,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아이들과 노는 법을 잘 몰랐고, 가능하면, 무엇이든 같이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했다. 그리고 그중에 아이들과 같이 그린 그림들이 있다. 그래서 벽난로 가운데 놓여있는, 둘째가 그린 그림에는 쓰레기통이 한가운데 가장 크게 그려져 그리고, 주변에 식구들을 그렸다. 그림에 첫째는 코가 없고, 나는 손이 없다.
나도 안다. 언제나 과거를 붙잡고 아이들을 볼 수 있지 않다. 과거의 일로 언제나 변명을 할 수는 없다. 과거의 부족함이 현재의 나태함에 언제까지나 이유가 될 수 없다. 지금 당장에 해야 할 일이 있고, 부족하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잠시만, 아주 잠시만 멈춰있고 싶을 때가 있다.
2000년도부터 시작했던 직장생활은 올해가 지나면 25년을 채우고, 내년에는 26년 차가 된다. TV 드라마의 김 부장은 25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직했다고 한다. 25년간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 후 소파에 가만히 앉아 있는 김 부장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본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고, 해야 할 일이 많다. 하지만, 가끔은 나도 뒤를 보며 추억을 하고 싶다. 그게 어쩌면 핑크빛 배경에 파란색 쓰레기통 그림이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