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역시나 요란한 가을이 왔다. 날씨가 추워져서 이거나, 낙엽 치우느라 요란해서가 아니다. 내게 가을이 요란한 이유는 가을은 지긋지긋한 우울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와이프가 이유를 물어오지만, 이유를 잘 모르겠다. 몇 년 사이 턱수염에 흰색수염이 뽑을 수 없을 만큼 늘어나서인지, 이직에 계속해서 실패해서인지,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시작한 첫째 딸 덕분에 받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이유들을 하나씩 생각하다 보면, 결국 이유를 생각하느라 우울함에 더 빠져든다.
코미디를 봐도 웃기지 않고, 맛있는 밥을 먹으도 맛있지 않다. (이거 나한테는 심각한 거다) 액션영화는 왜 이렇게 요란한지, 잠깐 졸았다가 깨도, 여전히 주인공은 싸우고 도망가고 싸우고 도망간다. 드라마를 보면 온통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고, 뭘 해도 우울하고 , 뭘 해도 슬프다. 스캇이 나를 핥아줘도 나이 든 스캇을 보면서 슬프고, 스캇이랑 산책을 해도, 개똥 치우는 내 모습이 슬프다. (단, 냄새는 슬픔보다 화가 난다. 저놈의 개)
운동이 도움이 될까 싶어 오랫동안 지켜만 보던 로잉을 다시 시작한다. 가볍게 시작을 했는데, 단번에, 손바닥 물집이 잡힌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숨이 차는데, 우울증에 죽던지, 숨차서 죽던지 둘 중 하나에 죽겠다 싶다.
우울감을 이기는 건 역시나 쇼핑이라고, 아마존에서 블랙프라이데이에 뭐 살게 없나 이것저것 둘러본다. 아마존 이북리더인, 킨들 페이퍼화이트가 2개가 있지만, 이번에 킨들 칼라소프트가 무려 7만원 할인을 한다, 전자책을 칼라로 보면 우울감이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엑스박스 게임스토어에서는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 얼마 안 남았다고 경고한다. "엄선된 XBOX 게임 최대 50% 할인"이라는데, 하나만 사면 우울증이 사라질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 레이싱 게임을 하면 운전연습도 된다는데...
나도 안다. 감사할 일이 훨씬 더 많은 복 받은 생활이란 것을. 슬픈 이야기가 있고, 기쁜 일이 있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소소한 즐거움에 웃을 수 있다는 것을. 삶은 계속되고, 웃고, 즐거워하고, 감사하며, 아끼고, 아껴주며, 사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래서 당분간은 안 그래도, 그런 척하면서 있어보려 한다. (Xbox 게임을 사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