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보금자리인,
"나눔의 집" 밖에 계시는 할머니들 중에서..
<낮은 목소리1>에서는,
중국에 사시는 3분의 할머니들이 등장한다면..
<낮은 목소리2> 에서는,
울산에 홀로 사시는 윤두리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윤두리 할머니의 일상은,
또 다른 '슬픔'과 '강인함'이 배어 있었다.
故 윤두리 할머니 (1928~2009)
1928년에 부산에서 태어나신, 윤두리 할머니는..
15세가 되던 해에,
부산진역 파출소 앞을 지나다가 강제 연행되어-
부산 영도의 위안소에서 ‘위안부’ 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다고 한다.
그야 말로, 집을 지척에 두고도-
위안소에 갇혀야만 했던!! 비극을 당한 것이다.
(위안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도 존재했었다. ㅠㅠ)
부산 영도의 "제1위안소"가 있던 건물은,
과거에 조선 사람이 여관을 했던 자리를
일본 사람들이 빼앗은 곳으로..
위치는, 중구에서 영도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지점이었고..
일대에는,
‘히바리마치’ 라는 유곽 거리가 있었으며..
그 유곽촌을 지나 더 들어가면,
2층짜리 건물의 1층과 2층에-
방이 각각 11개와 12개가 있었는데..
방의 크기는 다다미 두장반 정도였다고-
윤두리 할머니는 증언 하셨다.
해방 후, 차마 빈손으로는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던 윤두리 할머니는,
식당에서 일 년여를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갔지만..
위안소 생활로 인한 심적, 육체적 고통과
어려운 형편 등으로 인해-
또 다시 힘든 나날을 보내시다가..
결국, 부산을 떠나, 서울을 거쳐-
울산에서 정착하신 후, 내내 살아오셨는데..
“내 고향이 부산이지만, 그곳은-
위안부 시절이 생각나서, 절대! 가지 않는다.”
“내가 당했던 일은, 죽어서도 못 잊는다.”
말씀하셨던 윤두리 할머니는,
일생을 망쳐놓고 발뺌하는 일본을 향해 분노하셨고!
일본 정부의 기만적인 ‘국민 기금’을 거부하시고,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원한다고 외치셨는데..
끝내, 사죄와 배상은 받지 못한 채로-
2009년 5월 28일. 영면에 드셨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