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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n 16. 2022

벌레

열아홉 번째 시

시계가 도망친다. 한 마리의 벌레로 교실로 들어선다. 형광등 주위의 불빛이 나를 유혹한다. 목을 세게 조이려고. 나를 보며 환히 웃는다. 날카로운 가시로 나를 찌르려고. 교탁 위에도 벌레가 있다. 안경 쓰고 양복을 차려입은 말 많은 벌레. 50여 분 동안 지 얘기만 한다. 듣는 값을 거하게 치른 벌레가 술을 마신다. 모란꽃, 할미꽃, 장미꽃 꿀 빨듯 술을 마시며 다른 벌레를 욕한다. 벌레는 벌레답게 욕먹고 배불러 죽고, 다른 벌레는 벌레답게 술 먹고 배 터져 죽고, 우리가 죽으면 세상이 뒤집히겠지. 아니, 너 벌레잖아. 온몸을 휴지로 감싸 11시 43분. 사망하셨습니다. 말과 함께 불타는 쓰레기통에 처넣는다. 우리는 벌레라서 소리 하나 못 내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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