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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n 21. 2022

비와 당신

마흔한 번째 시

내가 작은 나무였을 적, 열병에 앓는 나를 일으켜 세운 당신은 내 등을 세게 치면서 절대자에게 절박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때 당신의 그 절규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다섯 살배기 여동생과 나에게 그라목손을 탄 요구르트를 갖다 주며, 먼저 마시고 가면 바로 뒤따라가겠다던 당신을. 그리고 그때 당신의 나이가 서른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삼만 팔천 오백 원짜리 청바지는 사십여 분 동안 흥정하면서, 결국 당신이 청바지 대신 들고 온 내 티셔츠 두 장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구깃구깃한 천 원짜리들을 손에 쥐여주고 택시 타고 오라며 비 오는 길을 우산 없이 홀로 걸어가던 당신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졸업식 날, 당신은 아프다며 오지 못한다고 말했지만 철없는 마음은 그것을 이해할 리 없었다. 결국 어린 짐승의 승질을 병마보다 이기기 힘들었던 당신은 지하철을 타고 내게로 오던 중이었다. 친구들은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모자를 던졌고, 당신의 이어지는 부재에 나는 절망과 분노를 반복했다. 결국 밤이 내리고 친구들이 하나 둘 모두 떠났지만 당신은 기어이 오지 않았다. 홀로 눈물을 훔치며 돌아가는 길은 유난히 달빛이 아름다웠지만 나는 그것을 눈치챌 리 없었다. 밤새 울리는 전화를 피하는 동안 당신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뒤늦게 전력을 다해 뛰어갔지만. 구름처럼 날다시피 달려갔지만. 기어이 당신 머리 위까지 덮은 천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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