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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만복 Jul 05. 2022

나무와 갈대

백열 번째 시

아들아

나무는 필요 없는 가지를 잘라야 더 크게 자란단다

많은 가지를 안고 살수록 크게 자랄 수 없고

태풍이 불 때는 오히려 가지들 때문에

밑동이 뽑힐 수도 있단다


아들아

갈대는 갈대들끼리 모여 산단다

네가 나중에 외로이 길을 걸을 때 알 거란다

숨을 고르려 주위를 둘러보면

그때야 넓게 펼쳐진 갈대들이 보일 거란다


갈대는 자를 것 하나 없이 모여 산단다

나무보다 가볍지만 그 안에서 거미가 집을 짓고

그 안에서 작은 벌레 식구들이 잠을 잔단다

아무리 바람이 거세게 불어도 반갑다 손짓하면서

또 잘 가라고 손짓하면서 갈대는 그렇게 산단다


아들아

나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자랄수록 고목이 되어가고

몇십 년 몇 백 년 흐르고 나서

모두의 쉼터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갈대처럼 살 걸 그랬다

누구라도 미워하지 않는 갈대처럼

누구라도 업신여기지 않는 갈대처럼

그저 모두를 껴안고 사는 보금자리처럼


갈대처럼 살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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