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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ㄱ 숲해설가 황승현 Jun 08. 2024

숲에서 온 종달새 편지(옹달샘 숲 이야기)

존엄한 은행나무와 평범한 느티나무 / 홀로 된 아버지와 소녀 이야기

episode


아버님 돌아가신지 1년여가 채 되지않아

그리움이 사무치는데

시골집에 오면 더욱 그렇습니다.


어머니와

아버님과 함께 점심식사 외식하던 곳을 찾지요.

"네 아버지와 왔을 때보다 맛이 덜 하다"시는 어머니

그리고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앉으셔 아버님을 추억하십니다.


지난해 가을 아버님 돌아가시고 홀로 계시는 어머니 집, 그리고 외가댁 선영
80중반의 어머니, 텃밭 일구시는 것이 운동이며 낙이라고...
혼자 사시는 어머니, 쓰레기 분리도 철저하게 하시지요


5월 어느 이름있는 날, 물가의 전망좋은 카페에서 어머니와 돈까스를...
아버님과 함께 오셨던 그 카페
아버님과 함께 오셨던 지난 시절을 추억하시는 어머니


상추 첫수확하시는 어머니
아버님께서 사용하시던 낫들과 숫돌, 이제 제가 낫을 갈아야 하네요


꽃을 좋아하시는 어머니, 텃밭 소나무 아래 장미를 꺾어 오셔서 화병에서 다시 태어나게 하시고



storytelling


600여년을 살아온 신령스런 은행나무

그 거대한 은행나무 옆에는 200여년을 함께 살고 있는 느티나무가 있었습니다.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골의 당산목으로 마을 사람들의 보살핌이 엄중하였고 소원을 들어주는 신령함으로 존엄의 나무 그 자체였지요.

은행나무는 늘 마을 사람들의 존중의 대상이었고 경외의 나무였지만

아래로 처져서 자라는 느티나무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고 심지어 은행나무의 자람과 위엄에 해가 된다고 하여

늘 시련을 당하고 있었에도

은행나무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엄있게 우뚝 자리하여 사람들이 우러러 바라보는 것에

가까이서 함께 살아가는 보람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은행나무가 늘 자랑스러웠으니까요.


한편

이 은행나무골에는 홀아비를  모시고 사는 효성스런 딸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장날이면 나땔감을 해서 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삶이었지만

어려운 살림에도 딸 예쁘게 커가는 모습에 보람있어 했지요.


딸은

늦은 밤 먼 장에서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동구밖으로 가는 길에 거대한 은행나무 앞을 지나며

공손하게 두손을 모으며 고개를 숙여 기원하곤 하였습니다.

'홀로되신 아버지의 건강을 지켜주세요!'


600여년 전 마을 초입에 심겨졌던 은행나무, 수호신 처럼 서 있습니다


어느 추운 한겨울

장에서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발에 동상이 걸려 다리를 절룩거리는 모습에 가슴아파하며

가마솥에 물을 긇여 아버지의 언 발을 씻겨드리고 주물러 드리며 눈물을 흘렸지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곤한 잠에 드셨을 때

조용히 부엌에서 창칼을 들고 나가 은행나무 당산목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전처럼 손하게 두손모아 고개를 숙여 절하고는

가져간 창칼로 은행나무에 둘러쳐진 하얀 광목천을 잘라내는 것이었지요.

 

다음날

이른 아침 조반을 일찍 드시고 다른 장으로 나서시는 아버지께

두툼한 버선을 내놓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오늘은 더 추워요. 이 버선 덧신고 가셔요!"


아버지께 무사히 장에 다녀오신 그날밤

소녀는 꿈을 꾸었지요.

"나의 귀한 광목천을 원래 모습대로 갔다 놓거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소중한 것을  앗아갈 것이다!"


그 이상한 꿈이후로

소녀의 눈이 흐려지기  시작하더니

한달째 되던 날은 아예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하던 습관대로 느리고 어설프지만 아버지를 정성드려 봉양했던 것이지요.


한겨울의 은행나무, 오른쪽 옆으로 자라는 나무가 200여년 된 느티나무


그날도 몹시 추운 밤

아버지의 귀가가 늦어져 지팡이에 의지해 동구밖으로 아버지를 맞이하러 나가다

무엇에 홀렸는지 길을 엇갈려 한없이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

딸이 없는 것을 알고 찾아나섰을 때

늦은밤 벌판에서 눈에 쌓여 하얀 주검으로 변한 딸을 찾아내고 오열을 했던 것이지요.

'내가 너를 죽였구나!'


딸의 주검을 엎고 은행나무 앞을 지나오면서 눈물만 뚝뚝 흘릴 뿐

고개숙여 기원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내게서 더 뺏어갈 것이 무엇이 더 있습니까?'


은행나무 옆의 느티나무는 너무도 가슴이 아팠지요.

그리고

은행나무와 나무들의 정령에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저 느티나무의 모든 것을 내놓을 테니 저 소녀를 살려주셔요!'


아버지는 소녀의 시신을 방안 따뜻한 아랫몫에 누여놓고 깜빡 잠이 들었

새벽녘이 되어 눈을 떳을 때

부엌에서 아침 짓는 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보니 소녀가 있었던 것이지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봄이 되었습니다.

은행나무는 연초록 잎을 틔워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지만

느티나무만 잎을 틔우지 못하고 기력을 잃어버린 모습이었지요.

은행나무가 말을 걸었습니다.

"이보게! 봄인데 뭐하는가?"

"소중한 것과 바꿨더니 기운이 없네요. 제 몫까지 살아주셔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은행나무는 어찌할 바를 몰랐지요.

'나만이 존엄한지만 알았지. 다른 소중한 것이 있는 지는 몰랐구나!'


은행나무는

깊고 오래된 뿌리를 통해 느티나무의 뿌리에게 영양분을 공급해주었

날이 밝았을 때

기력을 회복한 느나무가 작은 잎사귀를 틔워 연초록의 장관을 연출하여

지나가는 사람들이 감탄하며 올려다 보았던 것입니다.


옆으로 의연함을 잃지 않고 연초록 잎을 틔운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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