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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와 진달래의 애뜻한 이야기를 아시나요?

배타적인 소나무가 어떻게 진달래와 맥문동을 품게 되었나

episode


똘레랑스(tolerance)


프랑스 사회를 '똘레랑스의 사회'라고 하지요.

'tolerance'의 프랑스식 표현

'관용과 포용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똘레랑스는 관용(寬容)의 정신을 말하며

정치, 종교, 도덕, 학문, 사상, 양심 등의 영역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이념지요.

자신과 다른 타인과의 차이를 자연스레 인정하여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

종교에 대한 자유 개념에서 시작되었답니다.


종교계에 관련된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있는 진리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자기와는 다른 종료를 거부하거나 배격하기 쉬운데

칼빈,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타종교에 대한 관용정신이 생겨나게 되었다지요.


이후 이어진 시민혁명에 의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으로 자리잡게 되었는데

피부 색깔, 신체, 종교, 사상, 성 등 여러 차이에 대해서 차별이나 무관심이 아닌

서로 다른 점으로 받아들이는 정시을 말하게 되었답니다.


식물 세계에서도

관용과 포용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4군자 하면

매난국죽(梅蘭菊竹)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군자로 칭하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나무인 소나무는 왜 4군자에 들지 못했을까요?


수형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4계절 푸르른 절개로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왔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고단한 삶을 살아내는 모습에서 많은 감동을 주는 소나무


솔밭의 맥문동 군락


100%이 선(善)도 없고

100%의 악(惡)도 없듯이


소나무에게도

인간이 말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소나무는

뿌리며 줄기, 잎에서 벤젠 성분이 강한 방향물질을 뿜어내기 때문에

주변에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게 하지요.

다른 식물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라 할 수 있는 것

자기들끼리는 군락을 이뤄 잘 자라지만

다른 식물들과는 함께 자라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시각으로 볼 때

군자로서의 덕이 부족한 것이지요.

포용과 관용을 갖추지 못한


그래서

4군자에 들지 못한 듯 하지만

소나무와 잘 어울려 자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맥문동이지요.

4계절 푸르다는 것도 소나무와 같은데

맥문동이 소나무의 그 배타적인 물질을 어떻게 이겨내는지 궁금하고

분명한 것은 소나무의 힘겨운 그늘에서도 잘 자란다는 것입니다.


한여름

비온 다음날

이른 새벽

안개가 자욱한 푸르른 솔밭

그 아래 보라색 꽃을 피우는 맥문동 군락

환상적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을 아시나요?


난초 잎을 닮은 맥문동, 보라색 꽃을 피우고, 땅속 실뿌리에 달린 덩이뿌리는 귀한 한약재



storytelling


먼 옛날

전쟁터에 나가 몸을 크게 다친 장수가 저 세상에 앞서간 아내를 대신해

어린 딸과 아들을 데리고 숲으로 들어와 살고 있었습니다.

몸의 상처보다 세상 인심에 마음의 상처가 깊어 어린 딸의 정성스런 보살핌에도 아랑곳없이 아버지는 숨을 거두었지요.

"험한 세상, 강직하게만 살아오다 보니 '내가 나를 삼켜버려' 몸과 마음에 상처가 깊어

어린 너희들을 두고 저 세상 엄마 곁으로 가게 되어 발걸음이 무겁고 미안하구나.

사랑하는 딸아! 몸이 성치않은 막내를 잘 부탁한다."


아버지의 주검을 가마니에 얹어 힘겹게 끌고가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지요.

생전에 앞산을 바라보시며 '저 솔밭의 소나무들이 갑옷을 입은 장수같구나'하셔서

앞산 양지바른 곳에 아버지를 묻어드렸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다리가 불편하고 허약한 동생을 업고

어린 딸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먼 마을을 오가며 남의 일을 돕고, 삭바느질로 연명을 하고 있었지요.


그래도 남동생이 총명하여 말동무도 되

일을 마치고 어두운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무섭지 않았던 것입니다.


솔밭에 진달래는 아버지와 딸의 모습 같기도...



어느 초여름날 늦은 저녁

둥근 달빛 아래 동생을 업고 힘겹게 산길을 오르는데

저 앞 고개마루에 커다란 몸둥이를 어깨에 걸친 시커먼 물체가 보여서 남매는 크게 놀랐지요.

"누나! 누나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해결할테니..."


앞에 나타난 물체는 밉지고 예쁘지고 않은 도깨비였습니다.

"어디를 힘겹게 가시나?"

"예~ 우리는 마을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인데, 제 누님이 저를 이렇게 매일 업고 다녀서 매일 매일 예뻐지는군요."

"그래~ 마침 잘 됐군. 우리도 예뻐지고 싶은데..."하며

누나와 막내를 업고 집으로 가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마을 오가는 길을 남매를 업고 다

여러날이 지났을 때

"그래~ 우리가 좀 예뻐졌느냐?"

"그럼요! 머리위 뿔이 더욱 품격이 있어지고 방망이도 윤기가 나서 멋져보입니다."

"그래~ 너희 남매가 우리 도깨비에게 좋은 일을 했으니 작은 소원 있으면 말해 보거라!"

"마을 오가는 것도, 아쉬운 말 하는 것도 힘들어,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조금 나아졌으면 합니다."


그날 이후로도 남매는 더욱 정겹게 서로 도우며 살아, 넘치지는 않도 조금은 여유로운 삶이 되었지요.


세월이 흘러 몸이 성치않던 남동생이 먼저 세상을 떠나며 도깨비에게 말했지요.

"저희가 죽으면 아버지가 묻혀 계신 앞산 솔밭이 아니고 개울가에 묻어주셔요."

누나는 의아해했으나 동생의 마지막 말을 믿었습니다.


이듬해 누나마져 외로운 삶에 지쳐 주검을 맞이 하자,

도깨비들은 남동생처럼 물가가 아닌 아버지가 묻혀계신 솔밭에 나란히 묻어 주었던 것이지요.

'도깨비들은 사람들의 심각한 소원을 반대로 들어주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남동생은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해가 지나고 봄이 되었을 때

우람한 소나무외에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던 솔밭에 파란 싹이 올라오고, 작은 나무 새싹이 움터 자라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이듬해 봄

작은 나무로 자란 나무는 고운 연분홍빛 꽃을 피워 진달래라 부르게 되었고

소나무 곁에 파란싹은 난초러럼 자라 분홍빛 꽃을 피우는 맥문동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황량했던 솔밭에는 맥문동과 진달래가 풍성하게 자라 조화로운 숲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안개낀 이른 아침마다 그 아름다운 솔숲을 도깨비들이 산책한다고 하니

예쁜 도깨비들을 만나보려면 이른 아침 맥문동과 진달래가 자라는 솔숲으로 가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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