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감나무와 벙어리 산비둘기

오래된 나무는 땅위 나무 줄기가 죽어도 땅속 뿌리가 살아 움이 싹트고

episode


[숲, 다시 보기를 권함(Der Wald)] 피터 볼라벤 지음

- 모든 우듬지 아래에는 영원한 안식이 있다


episode 1

"정말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날을 경험하는 게."

그리고 그해 가을 노부부는 유골함이 되어 다시 우리를 찾았고,

그들이 선택한 너도밤나무 아래에 안치되었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만 제외한다면 수목장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은 소중한 사람을 잃었거나 큰 병을 앓고 있다.

2004년의 어느 뜨거웠던 여름날, 우리 숲을 찾아온 한 노령의 부부가 그랬다.

그 부부는 이곳을 방문하기 전 우리 숲에 전화를 걸어 마지막 안식처를 찾고 있다며 여직원에게 수목장을 문의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걸음이 불편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노부부가 타고 있는 소형차가 자갈로 깔린 수목장림의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지프차에서 내렸다.

다가가서 인사를 건네자 부인은 유리 창문을 서둘러 내리며 미소 띤 얼굴로 악수를 건넸다.

그녀는 자신이 10m도 걷지 못한다며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전했다.

나는 노부부를 내 지프차에 모시고 수목장까지 이동해 안내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우리는 함께 늙은 너도밤나무 숲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너도밤나무 서식구역의 보전을 위한 것이라는 수목장의 조성 목적을 설명했고,

노부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띄게 굵은 줄기를 가진 한 너도밤나무에게 마음을 빼앗꼈다.

길가에 서 있던 터라 차에서 내리지 않고도 줄기를 만져 볼 수 있었다.

노부부는 미소 띤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다.

"이 나무로 할게요!"

내가 번호를 적자, 부인이 말했다.

"우리는 둘 다 말기 암이에요. 살 날이 겨우 몇 주밖에 남지 않아서

우리 두 사람이 같이 묻힐 자연 속의 장지를 끝내 찾지 못할까 걱정이 많았답니다."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날을 경험하는 게."

그리고 그해 가을 노부부는 유골함이 되어 다시 우리를 찾았고,

그들이 선택한 너도밤나무 아래에 안치되었다.



episode 2

약의 부작용으로 퉁퉁 부어 있던 한 젊은 여성도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

그녀는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한 어린 너도밤나무에게 다가갔다.

늙고 거대한 나무들 아래에 서 있는, 키가 작고 고작 8m밖에 되지 않는 어린나무였다.

"이 나무는 제가 혼자 쓸 거에요."

그녀는 나무를 선택했다.

이 나무 아래에서 안식을 누릴 것을 생각하니 인생과의 이별이 조금은 수월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 역시 지금은 늙은 너도밤나무숲에 묻혀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서 안식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현실의 고통이 조금은 덜어진다는 방문객들의 고백은 감정적인 동요를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들이 자신이 꿈꾸던 묘지를 더 이상 물질의 경쟁이 지배하지 않는 자연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수목장에는 기본적으로 꽃을 두는 일이 금지되어 있다.

숲을 최대한 자연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유족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고인을 찾아올 때 무언가를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리라.




episode 3

이런 추모객도 있었다.

여름만 되면 수목장에서 얼음 덩어리가 발견되곤 했는데, 그때마다 대체 어디에서 생긴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겨울이라고 해도 얼음 덩어리가 나온다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수목장에는 물이 얼어붙을 만한 웅덩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이 수수께끼의 답을 찾았다.

고인이 된 아내가 묻힌 나무를 찾은 한 노인이 직접 얼린 하트 모양의 얼음을 가져다 놓았던 것이다.

하트는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서서히 녹아 땅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감동을 받았다.

숲을 해치지도 않는 데다 가게에서 사온 꽃다발보다 훨씬 정성이 들어간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storytelling


어머니께서 몇해전 장에서 사다 심은 감나무, 추운 겨울지나며 얼어 죽었는지 싹을 안티우더니
한달전, 창문에 부딪혀 죽은 산비둘기를 묻어 주셨는데, 그곳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났습니다



'구구구'


죽은 어린 감나무 묘목 아래

죽은 비둘기 묻어준 어머니


어느날

죽었던 감나무 가지 사이

연두빛 새싹 움터나오니

때맞춰 앞산에서 '구구구' 소리 들린다


몇해전 홀로되신 내 어머니

그 앞산에 누워 계신 아버지 향해

밤마다 '구구구' 하실 때

내 아버지 답은 하시는지?


이 감나무에 정성을 다하시는 어머니



산자락 집 옆에 있는 늙은 감나무와 산비둘기는 서로 잘 어울려 살았습니다.

감나무는 오래 되어 여기저기 깊은 상처가 많고 기력이 없어 감도 작은 것이 많이 열리지도 않으니

홀로 계신 할머니는 '나도 늙어 볼품없는데 저 나무도 그러니 보기가 그렇네! 베어 버려야겠구나!' 하셨지요.

혼자말 하시는 할머니 말씀을 듣고 감나무는 더욱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늙은 감나무에 함께 살고 있는 산비둘기도 그 이야기를 듣고 속상한 마음이었지만 어찌할 수 없었지요.

사실 산비둘기는 울지못하는 벙어리였는데 늙은 감나무가 거둬어 줘서 함께 의지하며 지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느날

할머니 집에 찾아온 이장이 톱으로 잠깐만에 늙은 감나무를 베어 버렸고 베어낸 감나무 몸통과 가지를 다듬어 타고온 차 화물칸에 실으며 "말려놨다가 땔감으로 쓸게요!"하였지요.

산비둘기는 늙은 감나무가 베어지고 토막나는 모습을 앞산에서 바라보며 가슴아파하며

'저 늙은 감나무에 의지해 봄에는 향긋한 감꽃을 먹었고 가을이면 달달한 홍시를 먹으며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베어지는 모습을 이렇게 바라만 봐야하니 슬프구나! 이제 누구에 의지해 살아가나!'하였습니다


산비둘기는 이곳저곳 기거할 곳을 기웃거렸으나 벙어리인 자신을 누구도 반겨주는 나무가 없었지요.

'구구구~ 구구구~노래도 못하는 산비둘기 뭐에 소용이 있담!'하면서


산비둘기는 노숙을 하였습니다.

양지바른 무덤가나 들녁의 마른 가지에 은거하며 설움을 삼키며 죽어간 늙은 감나무를 그리워 하였지요.


그리고 어느날 저녁

할머니는 홀로 저녁밥으로 찬밥 물에 말아 먹고 있는데 유리창에 뭐가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지만

별거 아니다싶어 밥한술 뜨고 문밖을 나가보니 비둘기가 창문에 부딪혀 죽어있었습니다.

'감나무 밑에 묻어 줘야겠구나'하시며 호미와 죽은 산비둘기를 집어 들고

지난해 장에서 사다심은 작은 감나무가 겨울 추위에 얼어 죽었는데 아쉬운 마음에 그 죽은 감나무 가지사이에 묻어 주었지요.


그리고 한달여가 지난 어느날

얼어 죽었던 작은 감나무 사이에서 싹이 올라와 자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기하구나! 분명 얼어죽었는데, 싹이 움터나오다니..."

그 감나무 새로운 싹은

베어져 버린 늙은 감나무 긴 뿌리가 새로 심은 감나무 뿌리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고,

벙어리 산비둘기의 살신성인이 보태져,

기적적으로 움이 터 올라 자라고 있었던 것이지요


할머니는 이 새로 자라나는 감나무에 정성을 다하였고

무럭무럭 자라난 감나무는 감꽃을 흐드러지게 피우고, 가을이 되니 붉은 단풍과 함께 탐스런 감들을 주렁주렁 열어

바라보는 할머니를 기쁘게 하였던 것이지요.

할머니는 생각했습니다.

'베어버린 늙은 감나무, 그리고 얼어죽은 감나무에 묻어준 죽은 산비둘기를...'


죽은 늙은 감나무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나 무럭무럭 자라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