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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쌤 Mar 12. 2021

시린 겨울이 생각나는 책.

Feat. 호르몬이 그랬어.

박서련 작가의 <호르몬이 그랬어>는 3편의 단편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 그리고 해설로 이루어진 책이다. 수록된 소설 3편 다 시리도록 추운 겨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작가의 소개 첫 줄이 "철원에서 태어났다"라고 적혀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작가와 추위의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 역시도 이 책을 추운 겨울에 읽었고,  이 책을 읽을 때면 왠지 모르게 차가운 단어들의 향연에 한없이 따뜻했던 내 방이 순식간에 추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춥다"라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는데, 첫째, 소설이 잔인하게 아픈 현실을 꼬집을 때, 둘째, 소설이라는 명목 하에 비현실 같은 현실의 잔혹함을, 부조리함을 가감 없이 드러낼 때,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언의 이유로 내 마음을 후벼 팔 때 그렇다. 


책을 읽는 내내 시린 겨울이 자연스레 떠올려질 만큼 세편의 소설 다 내 마음을 후벼 파는 장면들과 주옥같은 문장들이 넘쳐났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소설은 <총塚> (주인이 없는 빈 무덤이라는 뜻)이다. 



<총塚>은 애인의 유골함을 훔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세상에 둘만 있으면 다 될 것 같았던 커플이 한순간에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서 <남은 자>가 겪는 애환을 생생하게 담았다.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동시에 "너"라고 대답할 정도로 서로가 서로였단 그들에게, 한 사람이 더 이상 이승의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이 장면이다:


"이상하지 않아?"

"뭐가?"

"살아 있는 우리보다 죽은 사람들이 지구 상에서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는 거."

나는 안쓰러운 너를 더 세게 안으며 내 무덤은 너야 라고 말해주었다. 가장 아름답고 가장 크며 유일한 나의. 

P.89


주인공 커플은 아직 20대 초반의 앳된 청년들이다. 쉼터를 전전긍긍하며 평생을 살아왔고, 돈이 없어서 늘 가난과 배고픔에 허덕였다. 그런 그들이기에 서로가 더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너무나도 춥고 배고프고 살기 힘든 곳이었기 때문이리라. 


그런 그들이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에, 

얼마나 사는 게 힘들었으면 저런 생각을 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추운 겨울이 그들에게는 살을 에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연탄가스 태우는 냄새가 났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긴 것일까, 하는 물음이 계속 떠올랐다.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겠지만, 알고 싶지 않은 그런 물음표가 내 머릿속을 헤집는다.


-


매년 겨울 냄새가 큼큼하게 날 때쯤, 이 책을 꺼내어 볼 것 같다. 

새어 나오는 물음표가 온점으로 바뀔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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