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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슬쌤 Feb 04. 2020

세상에서 주차가 가장 어려웠어요.

주차 트라우마 극복기.


나는 차를 정말 좋아한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차를 몇 대씩 사고 싶을 정도로 차가 좋다. 부산에 살 때는 가끔 한가한 주말에 마린시티의 카페에 가서 멋진 슈퍼카들을 구경하러 가곤 했었다.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 10분이 멀다 하고 슈퍼카들이 웅웅-소리를 내며 달리는데, 진짜 장관이다.


하지만 차 사랑이 유별난 내게도 유독 예민한 스폿이 있다. 바로 주차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막 학년 때 면허를 따서 지금까지 났던 사고가 모두 '주차장'에서 일어난 사고이기 때문이다.


첫 사고는 우리 집 아파트 주차장에서 일어났다.

새 차를 뽑은 지 정확히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뒷좌석에 동생과 동생 친구를 태우고 나가려던 참에 내 차 옆면을 기둥에다가 갖다가 비벼(?) 버렸다. 그래서 한 면이 전체가 흉하게 스크래치가 났고, 고치려니 생각보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한국에 올 때까지 그렇게 타고 다녔다. 새 차를 뽑은 지 이틀 만에 차 한 면을 긁어 버렸을 때의 심정이란.... 아무리 슬픈 일이 있어도 우울함이 2시간이 채 못 가는 내가, 내 인생에서 최고 우울한 하루를 보냈던 것 같다. 진짜 차를 긁은 심정은 말로 표현 못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너무 쓰라리다.)


두 번째 사고는 멕시칸 레스토랑 앞에서였다.

타코를 먹으려고 간 곳에서 앞차와 살짝 부딪혔다. 그것도 물론 내가 갖다 박았다. 근데 진짜 부딪힌 게 아니고 스치는(?) 정도여서 아저씨가 쿨하게 그냥 가라고 해서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하고 타코를 맛있게 먹었다. 쓰다 보니 타코가 메인같이 보이는데 아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곳이 아닌, 차들이 멈춰있는 "주차장"에서 사고가 났다는 게 포인트다.


세 번째 사고는 2012년, 한국에서.


이 사고는 진짜 잊을 수 없는 사고다.

그날, 나는 늦게 퇴근을 했고, 주차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때 마침 명당이 눈에 보였고, 주차를 하려다 멀쩡하게 세워져 있는 차를 갖다 박았다. 이 사고는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인 게, 미국은 주차를 백 파킹을 하지 않고 머리부터 들어가는 주차고, 한국은 머리부터 들어가는 주차를 잘 안 하는 편인데, 나는 그날 백 파킹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고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머리부터 들어가는 주차를 시도하다가 그 차를 박았다. 아니, 백 파킹 하다가 박았으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다고 둘러라도 댈 수 있는데, 진짜 머리부터 넣는 걸 못하고 멀쩡한 차를 갖다가 박다니. 더 충격적인 건 내가 박은 차가 그랜져였는데 내가 박은 그 날 출고된 차였다. 진짜 레알 20km 달린 차였는데 진짜 그때 차주 아저씨한테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죄송해서 눈도 못 마주치고 진짜 계속 죄송하다고만 했다. 아저씨가 나에게 쌍욕을 하셨어도 나는 할 말이 없었을 상황이니까. 근데 마음씨 좋은 아저씨께서 괜찮다고 하셨는데, 얼마나 죄송하던지. 8년이 지난 지금도 그분만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다. 입장 바꿔 생각했을 때, 갓 출고한 차를, 그것도 멀쩡히 세워져 있는 차를 누가 갖다 박았다고 생각하면.. (험한 말, 심한 말)


네 번째 사고는 2017년,
JTBC 방송국 주차장에서 일어났다.


이 사고도 진짜 (하) 잊을 수 없는 사고다.

JTBC 방송국에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지하주차장 입구가 한 곳 밖에 없다. 그래서 그곳으로 차가 올라가고 내려가는데, 그 경계가 되게 애매모호하고 좁아서 (낮은 턱 하나 없다), 걸핏하면 사고 나겠구나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평소에도 굉장히 조심히 다녔었다. 사고가 난 그 날, 나는 주차비를 정산하고 지하주차장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위에서 차가 내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안 올라가고 기다리고 있는데, 지상에서 내려오는 차가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내 차를 "내리"박았다. 그때 당시에 내가 타던 차가 Audi A6였는데 내가 정말 아끼고 아끼고 아끼고 사랑하고 정말 사랑하던 차였다. 내 드림카였고 그 차를 탈 때마다, 내 꿈이 실현되는 순간 그 자체였으니까. 그런데 범퍼가 박살이 나고 폐차를 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내려올 때 그 차가 얼마나 세게 달렸으면. 체감상 70km는 넘은 듯.) 다행히 나는 많이 안 다쳤었지만 나는 그 차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이 진짜 너무 슬프고 서러워서 엉엉 울었다.




이런 일들을 하도 겪다 보니, 주차에 대한 트라우마는 곧 강박으로 이어졌고, 누군가를 만나거나 장소를 정할 때 발레파킹이 있는지, 주차장이 있는지, 주차장이 있어도 공간이 '협소'하진 않는지, 이런 것들을 따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주차를 할 수가 없다고 판단이 되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아예 자리에 나가는 것을 포기하기도 했다. 어딜 가도 발렛이 있는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는 발레파킹이 거의 강남 일대 외에는 없었고, 백화점도 VIP가 아니면 돈을 지불하겠다고 해도 발렛이 안됐다. 그리고 원체 좁은 골목들이 많은데, 좁은 골목들 마저 불법주차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안 그래도 주차가 두려운 내게, 사방은 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주차 때문에 사람을 안 만나고, 새로운 곳에 가기를 꺼려하기엔 내가 만나야 할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새로운 길을 개척해보고, 주차장이 없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마인드로 도전하기 시작했다.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곳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나는 어디를 가기 전, 네이버 지도로 그곳의 주차 환경을 알아보고, 오르막 내리막이 심하게 경사가 지지는 않았는지, 차를 몇 대를 수용하는지, 이런 것들을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내가 눈으로 직접 보고 어떤 곳인지 머릿속에 그렸더니 갖고 있던 불안감이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난 주차에 대한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 나의 주차 트라우마가 완벽하게 사라졌다면 거짓말이다. 지금도 주차는 무섭고, 오늘 눈이 온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게, "주차장이 미끄러워서 사고가 나면 어쩌지?" 였으니까. 이 트라우마와 맞서 싸우기 위해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야 할 곳의 주차장 상황을 최대한 알아보고 도전하는 길 밖에는 없지만,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해서 찾아낼 것이다.  반드시 이겨낼 것이다.


PS. 주차 잘하시는 분들 꿀팁 공유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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