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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28. 2022

고여사 일기

외출은 싫어

4월26일 –외출이 싫어     

  “켁, 켁” 엄마가 날카로운 기침을 한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기침이 아니라 억지로 하는 기침이다. 뭔가 목구멍에 걸린 것 같단다. 가래라고 하는데 가래 덩어리가 나오는 것은 보지 못했다. 가끔 끈적한 가래를 뱉기도 하지만 저토록 애끓는 기침소리를 낼만한 것은 아니었다.

  병원에 가자는 말에는 손사래를 친다. 절대 가지 않겠단다. 약이나 사오란다. 병원 진료를 받지 않고는 약을 구할 수 없다고 했다. 물론 처방전이 필요 없는 약은 살 수 있지만 의사처방 없이 투약하는 일은 아흔이 넘은 노인에게는 위험하다는 생각에서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그냥 죽겠단다. 병원까지 가는 일도 귀찮고 힘든데 휠체어에 앉아 하염없이(대충 한 시간)기다리는 게 더 싫단다. 엄마는 한 걸음도 걷지 않는데 뭐가 힘들다고. 나 혼자 퉁퉁거린다.

  처음에는 외출을 싫어하는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바다도 보고, 산이나 들도 보고, 꽃도 보고 바람도 느끼는 것이 얼마나 좋을까 싶어 드라이브를 권했다. 걸음을 걷지 못하니 자동차에서라도 바람을 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엄마는 단박에 거절했다. 귀찮고 싫단다. ‘왜?’ 이유는 없다 그저 싫을 뿐이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유를 짐작한다. 일단 외출하면 눕지 못한다. 자동차 시트에 누워도 되지만 편치 않다. 게다가 수시로 느끼는 요의에 대처하지 못한다. 기저귀를 차면서까지 외출을 하고 싶지 않다. 그건 나도 그럴 것 같다. 엄마를 업고, 또는 휠체어를 밀고 하는 딸의 모습이 안쓰럽다? 그럴 수도 있겠다. 같은 상황인데도 나가고 싶어 하는 시어머니를 볼 때면 꼭 그 이유만은 아닌 것도 같았다.

  몇 년 전, 엄마가 다리를 아주 못쓰지 않았을 때 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고향집이라도 먼발치에서 볼 수 있게 하려는 딸들의 마음에서였다. 관광을 마치고 마지막 일정으로 엄마의 고향마을을 향했다. 작은 시골 마을.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 딸들에게 엄마는 역정을 냈다.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반응에 딸들이 더 당황했다. 엄마는 고향마을에 발을 내딛기는커녕 창밖으로 시선도 돌리지 않았다. 

  두어 달이 지나서야 넌지시 그 이유를 물었다. 

“꽃 같은 처녀 적에 나와서 걸음도 걷지 못하는 할망이 되어 고향엘 왜 가.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보면 그 노릇을 어째.”

다음 해에 딸 셋만 외가 마을을 다시 찾았다. 엄마를 기억하는 사람을 둘 만났고 엄마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기억 속에서 엄마는 반짝반짝 빛났다. 훤칠한 키, 보기 드문 미모, 활달한 성격 등 그들은 멋진 신여성인 엄마를 떠올렸다. 우리는 알 수 없었던 엄마의 과거. 젊은 날의 모습과 행적에 대해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한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만날 수 있었다.

  엄마가 외출을 꺼리는 것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게 싫었던 것 같다. 그저 조용히 침대에 누워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싶은 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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