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진실을 받아들이는 방법
연인 사이에 불신의 주제는 꽤 다양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테마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죠. 과연 저 사람이 나를 사랑할까? 혹시 다른 여자를 사랑하지는 않을까? 는 연애를 하면서 늘 하는 고민입니다. 그러다가 조금 더 근본적인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과연 저 사람의 모습이 진짜일까? 혹시 나에게 잠시 잘 보이기 위해 거짓을 보이는 건 아닐까?
사랑을 하고 안 하고 믿음 보다도 과연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정말 진짜일까?라는 물음은 꽤 중요합니다. 상대방이 잠시 나를 이용할 목적으로 거짓된 연애를 했다면 지금까지 내가 한 사랑 또한 거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슬픈 이유는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은 참된 진실이지만 그 사랑의 대상이 거짓이라면 사랑의 행위 자체도 거짓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내가 거짓을 사랑했다면 내 사랑 또한 거짓이 되는 것이죠.
우리는 가끔씩 묻습니다. "너 진짜 나를 사랑해?"가 아니라 "이게 너의 진짜 모습이야?"라고요. 그럼 상대방은 십중팔구 이렇게 말합니다.
"난 너에게 내 모습을 전부 보여줬어. 나를 믿어줘"
물론 이 말이 거짓일 수도 있지만 일단 상대방이 100% 진심으로 말했다고 가정해보죠. 우리는 이 말을 듣고 안심해야 할까요? 일단 그전에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는 건 어떨까요?
난 과연 저 사람에게 내 모습을 온전히 전부 보여줬는가?
이 질문을 던진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내 모습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보여주지 않았다면 거기에 반응하는 상대방 또한 아직 보이지 않은 모습이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를 살인했다면 이것에 반응하는 연인은 모습은 어떨까요? 지금까지 자기는 비 살인자를 사랑한 것이지 살인자를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그 연인이 살인자라는 새 모습이 나타났다면 그 사람을 대하는 상대방의 태도는 180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진실이 무엇에서부터 출발하냐는 질문과 연결됩니다. 우리는 늘 상대방에게 진실을 강요합니다. 하지만 진실이 꽤 유동적인 사실을 안다면 진실을 묻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죠. 지금까지 자신은 살인자를 사랑한 것이 아닌데, 어느 순간 그 사람이 분노조절 장애의 살인자가 되었다면 이제 상대방은 달라진 진실로 그 사람을 대할 것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난 너에게 100% 진짜 내 모습을 전부 보여줬어"라고 말한다면 전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아니, 넌 아직 100% 진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어. 난 아직 너에게 보여주지 않은 내 모습이 많거든. 나의 또 다른 모습이 드러나면 넌 지금과 또 다른 네가 될 거기 때문이야."
상대방을 단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사랑하고 싶다면 과연 난 얼마나 온전하게 상대방에게 오픈했는지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나'라는 것이 고정된 채 정박되지 않고 늘 변하는 존재라면 그 상대방 또한 늘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고정된 진실을 강요하기보다 변화되는 진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게 연애를 할 때 필요한 최소한의 태도인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