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 I 꽃피는 아몬드 나무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많이 지치는 날들이 하염없이 길어지는 때.
나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일들, 그 속에서 한 달 정도를 헤매었다.
그러고 나니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만큼 내 몸에 숙련되지 않아서이겠지 하면서도 하루하루 참 속상했다.
그렇게 보내던 시간 속 내 마음에 들어온 그림.
빈센트 반 고흐의 '꽃피는 아몬드 나무'였다.
파란 하늘에 하얀 아몬드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고흐의 동생 테오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조카의 탄생을 축복하기 위해 그린 그림이다.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
37세의 짧은 생을 산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목사인 아버지와 아마추어 화가인 어머니 그리고 네 살 터울 남동생 테오와 네 명의 동생이 있었다.
고흐가 태어나기 1년 전 같은 날, 형인 빈센트가 태어났으나 곧 사망하고 그는 죽은 형의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성경을 든 목사가 아닌 붓을 든 화가가 된 반 고흐는 동생 테오의 지지를 받으며 어렵게 그림을 그렸다.
테오가 구필화랑에 취직하게 되면서 고흐와 서신 교류가 시작되었는데, 두 형제는 죽을 때까지 18년 동안 총 668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편지에는 고흐의 그림에 대한 생각과 감정들 그리고 스케치들이 담겨있다.
‘희망’을 품고 피어나는 아몬드 나무 꽃
다른 나무들에 비해 조금 빠르게 1월 말에서 2월 사이에 꽃이 피는, 그래서 생명의 상징이기도 한 아몬드 나무.
이런 아몬드 나무 꽃의 꽃말은 '희망'이다.
파리에 머물던 반 고흐는 풍부한 빛의 색감을 찾아 프랑스 남부 아를로 떠난다.
고흐가 아를로 간 1888년 2월, 아직 추운 겨울이었지만 아몬드 나무 가지에서는 벌써 하얀 꽃송이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고흐에게 희망과 설렘으로 다가왔고 고흐는 그 과정을 그림으로 그리며 기쁨을 찾고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조카의 탄생을 축복하는 그림
사실 고흐가 조카를 위해 이 그림을 그린 시기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두운 시기였다.
그가 머물던 아를의 노란 집에서 폴 고갱과의 미술 공동체를 꿈꾸었지만 둘 사이의 불화로 무산되고 그로 인해 많이 힘들어하던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자르게 된다.
그 뒤 고흐는 스스로 1890년 2월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고, 그곳에 머물던 중 테오에게 조카가 태어났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테오는 자신의 아이에게 형의 이름을 붙여줄 정도로 형을 사랑했다.
"아이 이름은 형 이름을 따서 지었어. 그 아이가 형처럼 단호하고 용감할 수 있도록 소원도 빌었어."
자신의 조카가 태어난다는 기쁨에 가슴이 벅차올랐을 반 고흐, 하지만 테오의 지원으로 모든 활동을 하던 빈센트에게 동생 테오의 아들이 태어난 일은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살던 그에게 불안함도 주었을 것도 같아 마음이 아프다.
고흐는 어머니에게 조카 탄생의 기쁨이 담긴 편지를 보낸다.
아기가 태어나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저는 당장 아기를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테오 가족의 침실에 걸어둘 그림을요.
하얀 아몬드 꽃이 푸른 하늘을 향해 자라나는 모습을 그리고 있어요.
그리고 테오에게도 편지를 쓴다.
작업은 제대로 이루어졌단다.
최근에 그린 꽃 핀 나뭇가지는 아마도 내 그림 가운데 가장 공들여 그린 그림일 거야.
아주 차분한 상태에서 그 어느 때보다 확고한 터치로 그린 그림이야. 그런데 다음날 난 완전히 눕고 말았지.
이런 일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슬프게도 현실이 그렇단다.
아기 빈센트를 향한 축복의 마음과 새 생명의 앞길에 행복을 기원하는 이 그림은 그 당시 암흑과 같은 고통스러운 날들 속 빈센트에게도 밝은 긍정과 희망의 마음을 심어 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가슴에 품어야 할 ‘희망’이라는 단어
몸과 마음이 힘든 날들을 보내면서 처음 코로나가 시작되었던 작년 이맘때를 생각했다.
그때도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많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조금씩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다독였던 것 같다.
지금도 난 그림을 그리며 복잡한 마음을 다독인다. 책을 읽으며 화가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삶을 배우며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나의 그 여정이 다른 이들에게도 작은 위안과 희망을 가져다줄 수 있기를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소망한다.
코로나로 추운 바람이 계속 부는 어려운 한 해였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 자리 잡은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서 볼 용기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먼저 꽃을 피우는 아몬드 나무처럼,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이지만 각자의 가슴에 '희망'을 품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곧 맞이하는 새해에는 그 ‘희망’과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