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로랑생 I 코코 샤넬
따뜻한 물이 끓고 나는 차를 준비한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 차를 마실 여유 없이 시간이 흐르곤 하지만, 시작하기 전 마음가짐처럼 늘 준비하는 차 한잔이다.
오늘의 그림은 마리 로랑생이 그린 ‘코코 샤넬’의 초상화이다.
블루와 초록, 그리고 회색빛의 조화가 마음을 차분하고 평온하게 해주는 그림.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림만이 영원토록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다.
프랑스의 여성 화가 마리 로랑생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녀만의 부드럽고 몽환적인 색채의 그림은 한번 보면 ‘이건 그녀의 그림이다’하고 마음에 남는다.
내가 너무나 애정 하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한번 본 영화를 다시 찾아보지 않는 나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과 집에만 있던 날들 속 나에게 이 영화는 비타민이 되어주었다.
어느새 그리운 파리의 거리를 함께 걷고 있었고, 사랑하는 예술가들을 만나는 남자 주인공의 짜릿함이 고스란히 내 마음에 전해졌다.
잠이 안 오는 날이면 영화를 보며 잠을 청하기도 했고, 머릿속 복잡한 생각과 어지러운 마음을 잠시 내려놓게 해 준 고마운 ‘벨 에포크_아름다운 시절’ 이야기.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인 스타인 살롱은 미술 수집가이자 작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이 마티스, 세잔, 마네, 헤밍웨이 등 수많은 예술가들과 교류를 하던 곳이다.
영화에 마리 로랑생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예술을 나누었다.
부드럽고 우아한 그녀의 그림과는 달리 조금은 암울한 어린 시절을 보낸 마리.
그녀는 유부남 국회의원 아버지와 가정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야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반대에도 데생을 배우기 시작한 그녀는 윔베르 아카데미에서 입체파의 대표 화가인 조르주 브라크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브라크는 '바토 라부아르(세탁선)'라 불리던 아뜰리에의 동료들에게 그녀의 그림을 보여주고 그녀는 그곳을 드나드는 유일한 여성 화가가 된다.
바토 라부아르는 몽마르트르에 있는 건물 이름인데 낮은 임대료 때문에 그곳에 피카소, 앙리 루소, 모딜리아니 등 젊은 화가들이 모여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이렇게 세기의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의지하며 교류했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가슴이 설렜다.
그곳에서 그녀는 시인 아폴리네르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둘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서로의 예술 세계를 넓혀주는 정신적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아폴리네르가 다 빈치의 모나리자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둘 사이는 멀어지게 되고 누명은 벗었지만 결국 둘은 헤어지게 된다.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마리를 사랑했던 그는 그녀와 헤어진 뒤 그들이 함께 거닐던 <미라보 다리> 시를 만든다.
미라보 다리_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우리 사랑을 나는 다시
되새겨야만 하는가
기쁨은 늘 괴로움 뒤에 왔었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손에 손 잡고 얼굴 오래 바라보자
우리들의 팔로 엮은
다리 밑으로
끝없는 시선에 지친 물결이야 흐르건 말건
밤은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가 버린다 흐르는 이 물처럼
사랑은 가 버린다
이처럼 삶은 느린 것이며
이처럼 희망은 난폭한 것인가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나날이 지나가고 주일이 지나가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는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밤이 와도 종이 울려도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세계 시인선 19 중]
아폴리네르와 헤어진 마리 로랑생은 독일인 남작과 결혼하였지만 2차 세계대전과 남편과의 불화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헤어짐 뒤에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던 솔메이트 아폴리네르의 사망 소식을 듣고 힘든 시기를 보낸다.
잊혀진 여인(진정제)_마리 로랑생
지루하다고 하기보다 슬퍼요.
슬프다기보다
불행해요.
불행하기보다
병들었어요.
병들었다기보다
버림받았어요.
버림받았다기보다
나 홀로.
나 홀로라기보다
쫓겨났어요.
쫓겨났다기보다
죽어 있어요.
죽었다기보다
잊혀졌어요.
이후 파리로 돌아온 그녀는 특유의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색채로 파리 사교계 여인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이때 동갑내기였던 코코 샤넬의 초상화도 의뢰받게 되는데, 샤넬은 이 초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인수하지 않았다고 한다.
샤넬은 야망 넘치고 진취적인, 성공한 여자로 그려주기를 바랐으나 그녀가 그린 그림 속 샤넬은 화려함보다는 여성 예술가가 드물던 시기에 그 자리에 올라서기까지의 역경과 좌절을 인내하고 견뎌낸 조금은 고단하고 외로운 여성의 모습이 느껴진다.
샤넬은 이 초상화가 그려질 당시, 리틀 블랙 드레스처럼 단순하고 기능적인 정장을 만들어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을 때였다고 하니 ‘샤넬의 마음에는 안 들었을 수도..’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샤넬의 가게에서 늘 곧바로 대금을 지불하는데 그녀는 나보고 그림을 다시 그려달라고 말해.
샤넬은 좋은 사람이야. 하지만 오벨뉴 지방의 시골 출신 여자라서 어차피 파리의 예술은 알지 못해.
나는 절대 다시 그리지 않을 거야.
이렇게 둘 사이는 끝이 나지만 이 작품은 샤넬을 대표하는 그림이 된다.
이 초상화는 그녀가 소장하다 죽은 뒤 다른 그림들과 함께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부드럽고 온화한 색조와 몽환적인 분위기, 그렇게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녀만의 길을 걸었던 마리 로랑생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으로 남는다.
내게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그녀의 시집이자 에세이 [밤의 수첩]에 남긴 이 말은,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삶에 얼마나 큰 열정과 사랑이 가득했는지를 느끼게 해 준다.
마지막까지 붓을 놓지 않았던 그녀는 1956년 심장발작으로 사망하게 된다.
자신의 유언대로 하얀 드레스에 장미 한 송이를 손에 쥔 채, 평생을 간직한 아폴리네르의 편지들을 가슴에 품고..
아름답고도 슬픈 둘의 사랑이야기를 알게 되고 그녀의 그림을 바라보니 애환이 담긴 그녀의 그림이 더욱 아련하게 다가온다.
여성으로 예술가가 되기까지 그녀가 겪어냈을 수많은 역경들,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녀를 지탱해준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사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고 평생 그 그림과 함께 한 마리 로랑생.
생각해 본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은 자신만의 색을 담은 삶을 위해 움직이고 있고, 나 또한 나의 색이 담긴 삶을 찾아가는 여정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