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디에도 나의 자리는 없다.
파주에 이사하고 어느 화창한 주말. 집에만 있기 갑갑해 바깥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왠만하면 주말에 외출해서 소비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날도 덥고 집에만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게 되어 이게 더 피로감을 불러일으키는 듯 했다. 점심을 일찍이 챙겨먹고 부지런히 준비해 바깥을 나섰다. 바깥 기온은 33도. 날씨가 덥지만 시원한 도서관에서 작업을 할 생각에 마치 멋진 도시인이 된듯했다.
그렇게 대차게 준비해서 도착한 도서관은 어찌 5층짜리 건물에 주차장은 이렇게 작은거지. 주차할 곳이 없어 근처를 4바퀴정도 돌다 혹시 그 사이 다시 자리가 났을까 다시 도서관을 향했다. 정말 운이 좋게 자리가 났다. 내 차를 세워둘 자리 하나 찾기가 너무 어렵다. 여기는 오히려 차를 가지고 다니지 않는게 더 나은 곳인것 같다.
그렇게 겨우 주차를 하고 올라가보니 시설도 좋고 책도 많다. 지방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면 공부를 더 잘했을까?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을 할 수 있게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아이들도 많았지만 어르신들도 많았다.
1층에 자리가 없어 2층을 향했다. 2층에 자리가 없어 3층을 둘러봤다. 3층에 자리가 없어 4층에 카페를 가봤다. 아이들이 카페 한켠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자리가 없다. 다들 언제부터 온건지 좋은 창가자리는 어르신들이 일찍이부터 앉아 독서를 시작하고 계셨고, 노트북을 켜야할 자리에는 10대로 보이는 아이들의 아이패드와 사이사이 취준생들이 보인다. 그리고 어디에도 내 자리는 없다. 내가 너무 늦게 온걸까. 이 공간이 더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처음 와보는 동네라 길도 모르고 주차도 겨우 했는데 내가 앉을 자리 하나가 없다. 지방에서 서울로 오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사람이 정~말 많다는 이야기라던데 맞는 이야기 같다. 강릉에서 이런 일이 있으려면 큰 행사가 있지 않는한 도서관에 자리가 없다는건 말이 안된다.
결국 그렇게 자리를 잡지 못한 나는 다시 차를 끌고 동네를 돌다 주차를 하고 가장 많은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아, 주말 스타벅스 또한 마찬가지다. 자리가 없다. 자리를 찾으려고 나의 눈치를 보며 서있는 사람들이 몇몇 보인다. 젠장. 여기도 자리가 없다.
바깥으로 나와 무작정 길을 걸었다. 걷다 보면 어디든 갈 곳이 있지 않을까 그래도 오랜만에 바깥으로 나온김에 프랜차이즈 카페 말고 공간 분위기도 괜찮고 커피도 맛있게 내려줄 그런 곳에 가고 싶은데 어디가 어딘지, 어느 카페가 그런지 알 수가 없었다. 기온은 33도 난생처음 와보는 길 한가운데 선 나는 이방인이다. 나 빼고 다들 여유로워 보인다. 나만 어디로 갈지 길을 모른 채 서 있는 이방인이다.
도서관에도, 카페에도 어디에도 내 자리가 없는 것 같이 느껴진다. 여기서 나는 이방인이라 느껴진다. 나는 그저 잠깐의 쉼과 리프레시를 줄 공간을 찾고 싶었을 뿐인데 어디 하나 나에게 쉴 공간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결국 프랜차이즈 카페 한 곳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서글프면서 기대했던 하루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아직까지도 난 어딜가든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네비게이션 없이는 움직일 수 없고, 검색해봐야지만 찾아갈 수 있으며 유명하고 편안한 곳엔 내가 앉을 자리는 없다. 나는 이방인 언제쯤 이곳에 적응할지 잘 모르겠다. 괜히 집밖으로 나왔다. 아늑한 집에서 나오지말걸 괜히 서글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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