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의 과정이 이보다 건설적이려면, 우리가 듣지 못했던 것, 배우지 못했던 것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말해야 한다. 좀더 솔직하고 좀더 적나라하며 저마다 다른 기록들이 필요하다.
-전유진, <돌봄과 작업> 130쪽
지금 쓰는 글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낙태죄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많은 사람들이 태아를 곧 생명으로 간주해 인공 임신 중절 수술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설령 평소 별생각이 없었던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아이를 지우고 싶었다는 임산부의 고백을 누가 좋게 받아들일까.
또한 이 글이 임신이 간절한 누군가에게 기만이 될 수도, 미래의 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소한 것도 무지 신경 쓰인다. 내 브런치가 유명한 것도 아닌데. 자의식 과잉인가..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우울증 환자의 특징 중 하나다. 그렇다. 나는 산전우울증을 겪고 있다..)
사설이 길었지만 결론은 정해져 있다. 그래도 솔직하고 싶다. 욕을 먹을지언정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다. 임신과 출산은 축복의 꽃밭이며 모성애는 여성의 무조건적인 본능이라는 세상에선 특히 더 솔직하고 싶다. 왜냐하면 나 같은 사람이 분명히 또 있을 거니까. 그 사람한테는 이 글이 위로가 될 테니까. 그러려면 차라리 날 것 100%로 솔직한 게 낫다. 그래서 지금부터 한 겹의 포장도 없이 적나라하게 글을 쓸 심산이다.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난소 나이 검사를 하러 가서 아기집을 발견한 그 기막힌 순간에 나는 바로 낙태를 떠올렸다. 너무 정신이 없어서 '임신중절'이라는 대체 용어가 생각도 안 났다. 냅다 낙태 수술 하시냐고 여쭤봤다. 그런데 그 병원은 (집에서 가장 가깝고 시설이 좋아서 간 건데 하필) 난임 전문 산부인과였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본인이 난임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그런 수술은 하지 않는다며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하늘의 뜻이니 받아들이라는 말을 덧붙이시며..
그리고 남편을 만나 곧장 두 번째 병원으로 갔다. 대형 산부인과의 여자 원장님이셨다. 역시나 빼도 박도 못하게 임신이라는 진단을 듣고 이번에는 제법 차분하게 임신중절 수술이 가능하냐고 여쭤봤다.
"아니요. 저는 안 해요. 수술 과정을 설명해 드리고 싶지도 않고요. 저도 의사이기 전에 사람이잖아요. 저에게도 거부할 권리가 있으니 양해해 주세요."
그 말은 거절을 넘어 간곡한 부탁처럼 느껴졌다. 말도 꺼내지 말아 달라는. 내가 괜한 얘기를 한 건지, 원래 수술을 잘 안 해주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모로 멋쩍어졌다. 요새 자연임신이 얼마나 힘든지 아냐며 (앞선 병원과 정확히 같은 표현인) '하늘의 뜻'이라는 선생님 말씀이 한 귀로 들어가 한 귀로 나갔다. 이 와중에 남편은 옆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얄미운 사람 같으니라고.
집에 와서 찾아보니 수술하는 병원이 있긴 있었다. 가장 먼저 서울 서초구 인근의 어떤 병원이 나왔고 홈페이지엔 의사가 여자인 점과 수술 과정이 쉽고 편리하다는 게 강조되어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비슷한 병원이 있어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 임신중절수술 커뮤니티까지 발견했고 그곳엔 병원 위치부터 비용, 수술 후기 등 각종 정보가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이틀 정도였나. 커뮤니티 최근 글을 빠짐없이 읽고 나니 어느덧 임신중절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아졌다. 결혼한 부부도 중절을 선택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수술할 때 손발을 묶인 채 마취가 된다, 생리통과 비슷한 후유증이 올 수 있다 등등..
사실 낙태를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대학생 때는 한창 페미니즘이 붐이었고 낙태법 이슈가 화제였다. 특히 나는 여성 인권에 관심이 많았고 임신 초기 태아가 몇 mm인지, 출산 정책에 따라 낙태를 바라보는 관점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유럽의 선진국에선 어떤 방식으로 여성의 권리를 보호하는지 등을 해박하게 알고 있었다. 낙태 합법화 시위에서 미프진(임신중지약)의 도입을 주장하며 기자들 앞에서 다 같이 모조 알약을 먹는 퍼포먼스까지 직접 참여했었다. 강의 중 낙태에 관해 함부로 말한 교수님한테 화가 나서 시험지 마지막 장에 길게 반박 편지를 적어 제출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임신한 채로, 동시간 대에 실제로 수술한 당사자의 글을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지식과 나름 탄탄했던 입장이 한순간에 무색해졌다.
“태아의 생명권보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더 중요하다. 임신 초기 태아는 생명이라 보기 어렵다. 선진국에서처럼 우리나라도 임신중절이 합법화 되어야 하며 여성은 원치 않는 임신을 했을 때 그것을 언제든 중지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생 때 줄창 떠들었던 간단한 명제가 현실로 오니 너무 복잡하고 어려웠다. 임신중절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커뮤니티 글에서 내 눈에 띈 건 어떤 정보도 아닌 한 줄짜리 고민과 감상이었다.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한 여성, 그들의 다양한 감정을 보니 자연스레 나는 어떨지 상상하게 됐다.
나는 어떤 기분일까. 수술이 끝나고 나면.
내 권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낙태가 죄가 아닌 거 너무 잘 아는데. 시위도 하고 교수님이랑도 싸웠으면서. 낙태를 금지하는 종교와 문화를 그렇게 비판했었잖아. 원치 않는데 애 낳아서 힘들게 키우는 여자들 솔직히 불쌍하다고 생각했잖아. 나는 절대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그럼에도 도저히 못 할 것 같았다. 나 자신이 이해가 안 갔지만 어쩐지 수술을 상상하면 할수록 불쾌했다. 죄책감도 슬픔도 아닌 불쾌함. 그 외에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안 됐다. 이상한 일이었다. 여성의 선택과 권리. 다 맞는 말이지만 그거 하나로는 설명되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모성애는 아니고, 찝찝함에 가까웠다.
그럼 낳을 거니? 낳을 수 있기는 해? 키울 수는 있어?
이것도 아니었다.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자신 없었다. 다 하기 싫었다. 이미 임신은 해버렸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지옥에 빠진 느낌이었다. 지울 수도 낳을 수도 없어 매일 눈물이 났다. 어느 날은 임신 중절 후기를 읽다가, 어느 날은 노래를 듣다가, 또 어느 날은 유튜브 알고리즘에 뜬 육아 영상을 보다가 울었다. 이쯤 되니 지운 여성도 낳은 여성도 다 대단해 보였다. 모두의 선택이 이해되고 어떤 삶이든 존경스러웠다. 누구든 나보단 나은 것 같았다. 이 와중에 하필 입덧이 시작됐고 정신적 고통은 육체적 괴로움으로 번져 여기저기 만신창이가 됐다. 좌절과 혼란 속에 5주 차가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