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 - 난소나이 검사하러 가서 아기집을 발견하다

by 화랑

좋아하는 작가님의 블로그에 어느날부터 임신 얘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미니멀리즘 / 나다운 삶을 추구하는 분인데 신혼집을 매수하는 대신 부부가 함께 세계여행을 하거나 사계절 옷을 전부 옷장 한 칸에 보관해 단정하게 사는 모습이 인상 깊어 오랫동안 블로그를 챙겨봤다. 아이 없이 오랜 기간 사이 좋은 신혼부부로 지내는 것도 좋아보였는데 최근 문득 난소나이가 궁금하다고 정부 지원 가임력 검사를 받은 후기를 남기셨다.


정보성으로 시작한 글은 점차 심각해졌다. 실제 나이 30대에 비해 난소 나이 만 50세에 준하는 수치가 나왔다며. 임신 생각이 없었음에도 갑작스러운 난임소식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항상 긍정적인 분인데도 한동안 슬픈 글만 올라와서 일면식이 없는 나까지 마음이 아팠다. 이런 저런 고생 끝에 자연임신에 성공하셔서 결국 해피엔딩이 되었지만 일련의 과정을 눈으로 따라간 나는 (당장 임신하고 싶지 않더라도) 하루라도 젊을 때 난소 나이 검사를 받아야 겠다는 교훈.. 을 얻었다.


그렇게 보건소에 국가 지원 필수 가임력 검사를 신청했고 집에서 가장 가깝고 시설 좋은 산부인과를 골라 찾아갔다.


검사 전 질문지부터 작성했다.

마지막 생리일 한달 전

임신 가능성 ( X )

임신 준비 ( X )

검사 이유: 미리 알아보려고 (대충 적었다)


그 다음 진료실에 들어가 간단한 문진을 받았다. 왜 오셨냐는 의사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지금은 아이 생각이 없고 적어도 3년 쯤 후에 고민을 시작하려 하는데.. 혹시 난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라고 대답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지금도 3년 뒤에도 생물학적인 나이로 임신하기 아주 좋은 시기라며, 아이를 여럿 낳을 생각이 없다면 여유를 가져도 괜찮다고 하셨다. 초음파와 혈액 검사 중 초음파 먼저 보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았다. 무념무상으로 천장을 보는 내게 의사 선생님께서는 소름 돋는 한 마디를 하셨다.

"아기집이 보이는데?"

그 순간 공포 영화 한 장면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닌데요? 그럴 수가 없는데요?"

"명백한 임신인데.. 이게 아기집이에요."

"네? 진짜요? 말이 안되는데요?"

"나는 눈으로 보이는 걸 말하는 것 뿐이에요. 이건 임신이에요."

기겁을 하는 나와 달리 의사 선생님은 덤덤하셨고 그와중에 열심히 화면을 캡쳐해 초음파 사진까지 뽑아주셨다. 임신 5주차였다.

"3년 뒤에 임신 준비 어쩌고 하시더니. 다 무용지물이네? 이런 경우는 제가 의사 하면서 딱 두번째예요. 일단 오늘 가임력 검사하러 오신 거니까 혈액 검사도 하긴 할게요."


영혼이 나간 채 진료실을 나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창 일하는 중이라 연결이 안되는데도 계속 걸었다. 지금 바쁜 게 문제가 아니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임신했다고, 당장 집으로 오라고 다그쳤다.


패닉에 빠진 나와 달리 남편은 차분했다. 외려 은근 좋아하는 눈치였다. 그렇지. 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구나.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자신 없는데.


그렇게 방황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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