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나는 출산과 육아에 회의적이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 몸이 변화하고 고통받는데, 어떻게 얼마나 아플지 예측할 수 없다. 다른 질병에 비해 임신과 출산은 유독 사람마다 경우가 다양해서 내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른다. 또 아플 때조차 뱃속의 아기를 고려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편이다. 따라서 고통스러워도 그것의 치료나 통제가 어렵다. (실제로 임신 12주 차인 현재, 여기저기 아픈데 병원에선 “흔한 임신 증상이에요 / 약은 안 먹는 게 좋아요 / 따로 치료 방법은 없어요” 라고만 함..)
원래도 에고가 센 편인데, 그동안은 효녀+모범생+공무원으로 살면서 많이 눌러왔다. 그러다 서이초 사건 이후로 뭔가가 크게 바뀌어서 '내 멋대로 살기'가 좌우명이 되어버림.. (이건 나중에 기회가 생기면 자세히 풀어보고 싶다) 작년에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걸 배우러 다니고 독립 출판도 하면서 늦게나마 자아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자아라는 건 내 안의 식물과 같아서 꾸준히 가꿔야 단단하고 건강하게 피어오른다는 것도 깨달았다. 뒤늦게 온 사춘기, 어렵게 찾은 자아. 이걸 잃는 건 너무나 아까운 일이다..
무엇보다 나는 '00맘', '00엄마'로 불리고 싶지 않다. 유경험자의 말에 따르면 자아가 없어지면서 누군가를 위해 내 전부를 바칠 정도로 변하는 게 숭고한 행복이라고 한다. 00엄마가 되는 것도 기꺼이 즐겁게 맞이하게 된다고. 근데 나는 .. 정말 .. 싫다..
나름 교육학과를 전공해 초등교사로 n년간 일했다. 그렇다면 내 애도 잘 키울까? 아니요.. 전혀..
물론 이론적으로 어린이의 발달 단계나 효과적인 교수법에 관해선 빠삭하게 안다. 다양한 사례를 통해 어떻게 키워야 애가 잘 자라고, 어떤 결핍이 애를 망치는지도 얼추 깨달았다. 직접 애를 키워본 적은 없어도 한 아이를 키우는 데에 얼마나 많은 정서적, 물리적 노력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못 키우겠다. 어설프게 보고 들은 게 너무 많다. 왠지 이왕 낳으면 오은영 조선미처럼 키워야 할 것 같다. 애하고 교감도 하고, 마음 읽어주기도 행동 통제하기도 완벽하게 하면서, 미디어는 보여주지 않고, 학교에 절대 피해주지 않고(중요)..
그동안 교사로서 쌓은 내 경험과 판단, '저렇게 키우면 안되는구나' 혹은 ‘이렇게 키워야겠다' '학부모가 이러면 학교가 정말 힘들구나' 등등이 막상 내가 엄마가 되려 하니 부메랑처럼 돌아와 족쇄가 된다.
초등교사로서 수많은 아이와 가정을 만나며 육아가 정말 큰 책임이 필요한 일임을 몸소 체감했다. 부모의 무책임이 본인 자녀뿐만 아니라 주변 사회에 큰 피해를 주는 걸 몇 번이나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뭔가를 책임지고 희생할 준비가 안 됐다.
작년 한 동료 선생님께서 악성 민원 때문에 심하게 고생하실 때 내가 잠시 쉬시는 걸 권하자
“애 학원비 벌어야 해서 못 쉬어."
라고 대답하신 적이 있다. 그뿐이랴. 다른 선생님은 아이 성장 주사 맞춘다고 월에 200만 원씩 쓰고 계셨고, 어떤 부장님은 고3 딸 입시 때문에 매일 새벽 라이딩을 마치고 출근하셨다. 어린 후배 앞에서 괜히 하는 푸념이고 속사정은 또 다르겠지만 어쩐지 내 눈엔 다들 피로해 보였다.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럽고 예쁜 존재가 있다고 한들, 나는 그렇게 희생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남자면 좀 다를까? 적어도 신체적인 희생은 안 해도 되니까. 근데 남편이 입덧하는 나를 위해 해주는 걸 보면 난 그것도 못 하겠다. 애초에 희생정신이랄 게 없는 인간이다..)
나는 진심으로 인류가 곧 멸망할 거라 믿는다. 공룡이 없어졌듯 당장 어떻게 되진 않겠지만 폭염과 혹한을 오가며 서서히 말라죽을 것이다. 멸망까진 아니더라도 점차 살기 힘들어질 게 뻔하다. (일단 최근 몇 년 너무 습하고 덥잖아요..) 내가 극단적인 망상론자라서가 아니다. 과학자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는데 이걸 심각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나요..?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한국이 아이 키우기에 좋은 나라 같지 않다. 나도 그렇지만 다들 화가 너무 많고.. 경쟁 속에 제정신으로 살기 어렵고.. (이 부분은 객관적이지 않음을 인정합니다 제가 좀 부정적이네요 허허) 또 저출생이 날이 갈수록 심각해져 미래 세대가 어른이 됐을 땐 노인 부양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한다.
이런 기후 위기 시대 / 고령화 시대에 아이를 낳는 게 진정으로 아이를 위한 길일까? 태어난 아이가 고마워할까? 나는 이런 문제를 뒤로 하고 냅다 출산부터 장려하는 사회가 이해되지 않는다. 고령층이 아이를 낳으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어떤 면에선 굉장히 자기중심적인 것 같다. 태어날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살지 고려하지 않고, 단지 시스템 유지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건 잘못됐다. 아이들이 살 세상이 희망적이냐고! 그걸 먼저 생각해야지! (이럴 땐 또 갑자기 아동 인권 지킴이가 되어버리는..)
그래서 더더욱 단순한 이유-나와 배우자의 미니미를 보고 싶다거나 우리 가족의 관계를 확장하고 싶다는-로 아이를 낳고 싶지는 않았다. 낳게 된다면 그건 나와 남편을 위해서가 아닌 아이를 위한 선택이어야 했다.
사실 더 많은데.. 이쯤에서 그만하겠다. 왜냐하면 결국엔 뱃속의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몇 차례 심리 상담을 받고, 정신과 병원도 가고, 주변에 애 없는 극T 커리어우먼 두 명과, 실제로 육아 중인 엄마 두 명을 만나 조언을 들은 결과 나는 아이를 낳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위의 어떤 생각은 바뀌었고, 어떤 건 여전하다. 그건 다음 화에 설명하겠다. 다음 주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