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에서 만난 딸과 아들
태아성별: y염색체검출
띠링- 울리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니프티 검사를 한 지 8일째. 결과는 문자로 알려준다고 했으니 슬슬 때가 됐다. 이번에도 스팸 메시지는 아니겠지. 설마 하며 휴대폰을 열자 두문장이 보였다.
니프티 결과 저위험군입니다.
태아성별: y염색체 검출
60만원의 검사비가 무색하게 결과 통보는 무척 간단했다. 기형아 검사는 통과했으니 됐고, 내 눈엔 딱 한 글자만 꽂혔다. Y.
XY염색체 할 때 그 Y. 아들이었다.
사실 복선이 여기저기 깔려있었다. 친구가 꾼 태몽에 청개구리가 나왔는데 찾아보니 대표적인 아들 꿈이었다. 남편은 맘카페에서 유행하는 각도법을 배워와 아들이라 진단했다. 초음파 사진상 아기의 옆모습 각도가 남자라나 뭐라나. 또 딸을 임신하면 과일, 아들을 임신하면 고기가 먹고 싶다는 속설이 있는데 입덧 초기 복숭아만 먹던 내가 얼마 전부터 이상하게 돼지고기를 찾았다. LA갈비를 야무지게 뜯고 삼겹살을 미친 사람처럼 먹으면서도 나는 이 모든 징조를 부정했다. 태몽도, 각도법도, 입맛도 다 미신일 뿐이니까.
대신 나는 동양철학과 인도철학 그리고 통계학의 힘을 빌렸다. 챗GPT와 함께 사주와 인도 점성술에 매진했다. 두 가지에 의하면 뱃속의 아이는 딸이 분명했다. 한국과 인도의 오래된 과학이 내 자식은 예민하고 감성적인 딸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크로스체크까지 완벽했다.
문자를 받고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뻔한 상식을 굳이 검색해 봤다. 여성이 XY 염색체 인가?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었을 수도.. 그럴 리가 없었다. 명백한 아들이었다. 내 애는 남자다..
비혼 비출산으로 살려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게 됐다. 아이는 하나쯤 있어야 하나 싶다가도 도저히 엄두가 안 났다. 1학년 담임을 맡아보니 얘네를 집에서도 만나는 게 상상이 안 갔고, 출산도 육아도 다 자신이 없어졌다. 자아실현하면서 아이 없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다 뜻하지 않게 임신했고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다짐했다. 그래, 딱 한 명만 키워보자. 그리고 그 한 명은 딸이길 바랐다.
딸이 순해서? 말을 잘 들어서? 친구처럼 지낼 수 있어서? 나중에 효도를 잘하니까?
전혀 아니었다. 나는 이 중 어떤 것도 원하지 않았다. 평생 착한 딸로 살아온 나는 엄마의 고민을 들어주는 게, 엄마 아빠 사이에서 눈치 보는 게, 부모님이 원하는 직업을 갖고 기대에 맞춰 사는 게 얼마나 고된지 잘 알았다. 주위 남자들은 경제적 부담은 질지언정 감정 노동을 하진 않았고 부모도 아들에겐 공감이나 효도에 대한 기대가 낮은 듯했다. 나는 딸이든 아들이든 내 아이가 자기 뜻대로 살길 바랐다. 남한테 피해만 안 준다면 꼭 순할 필요도 없었다. 아이가 커도 효도를 요구하고 싶지 않았다. 다 큰 새가 둥지를 떠나듯 자식은 온전히 독립하고 남편과 나는 우리대로 즐겁게 늙으면 그만이었다.
그보다 딸을 바란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초등교사 6년, 교생실습과 과외/학원 강사까지 합치면 10년. 그간 수많은 학생을 만나면서 성별, 장애, 부모님에 상관없이 어떤 학생이든 편견 없이 대해왔다. 특히 처음 담임이 됐을 때는 성별로 학생을 구분 짓는 게 싫어서 최대한 성평등 교실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번호나 자리 배치, 이름표 색깔 등 사소한 부분에도 신경 썼고 남녀 구분 없이 다 같이 어울리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런데 경력이 쌓이며 어떠한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됐고 어쩔 수 없이 각 성별의 특징이 보이기 시작했다. 편견이라기보다 경험의 축적이랄까..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학생, 학부모를 상담하자 큰 도움이 되었다. 대략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물론 항상 예외는 있다. 오해 마시길...)
남학생
-대체로 단순해서 편함. 가끔 진짜 편하고 웃긴 애들이 있는데, 얘네 덕분에 학교 다닐 맛이 남. 힘자랑 하는 거 좋아해서 왠지 든든한 구석이 있음. 운동 좋아함. 공놀이 좋아함. 축구/야구 얘기해 주면 환장함..
-스트레스 받으면 공격적으로 변함. 1년 내내 몸싸움은 절대 하지 말라고 주의 줘야 함. 서열 다툼, 묘한 기싸움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이게 힘들었음.. 평등한 교실을 원하는 교사라면, 남학생들이 서로 무시하고 찍어 누르지 않도록 늘 지켜봐야 함.
-섬세한 남학생은 무리에서 힘들어하는 게 보여서 신경 쓰임.. 상처받는데 말도 못 하는 것 같아서.
-문제 행동을 하는 남학생은 반 전체를 뒤흔들곤 함. 그래서 주로 각 반에서 제일 힘든 애=남학생인 경우가 많음.. 이들은 특히 교과전담 시간이나 선생님이 만만해보일 때 활개를 침.(강약약강이라..) 대놓고 수업을 방해하거나, 혼내도 들은 체도 안 함.
여학생
-애교가 많고 표현을 잘함. 뭐만 하면 사랑한다 그러고 편지 써주고 그림 그려줌(나도 사랑해..). 고학년 되면 아이돌 좋아함.(반면 남학생들은 아이돌 잘 모름) 포토카드 같은 거 모으고 자기들끼리 꽁냥 대며 노는 모습이 귀여움. 교사 기분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조금만 눈치 줘도 금방 정신 차림.
-스트레스 받으면 뒷담화 하거나, 무리를 나눔. 간접적으로 은밀하게 상대를 불편하게 함. 남학생이 "우아악" 하면서 교실을 뒤집는다면, 여학생은 아무도 모르게 은근히 헤집어놓는 식. 그래서 학기 초엔 티가 안 나고 학기말이 될수록 판도라의 상자가 열림. 이거 해결하려면 복잡해서 머리 빠짐.
-울고불고 싸우고 험담하고 SNS로 저격하고 난리를 치는데.. 요약하면 결국 "너는 왜 쟤를 더 좋아해? 나도 좋아해 줘." 이거임. 누가 누구랑 더 친한지, 누굴 더 좋아하는지에 되게 예민함.
내가 사랑했던 제자 중에는 남학생, 여학생이 고루 섞여있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를 힘들게 한 제자 중에도 남학생, 여학생이 있다. 교사로서는 누가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 똑같이 좋고 똑같이 힘들 뿐이다.
그런데 내가 키운다고 상상하면.. 아들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 두 가지 때문이다. 첫째, 여자들 간 험담이나 무리 나누기는 나도 지겹도록 겪었으니 엄마로서 해줄 말이 있다. 어떻게 처신하고 극복하는지 눈높이에 맞게 조언해 줄 자신이 있다. 실제로 고학년 여학생을 상담해 줄 때마다 다들 만족하고 고마워했다. 그런데 남자들 간의 서열 다툼이라든지 몸싸움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그저 "사람 때리지 마라", "약자를 존중하라" 식의 말밖엔 못 하겠다.
둘째, 남자아이는 분명하게 지시해야 하는데 그게 어렵다. 말이 ‘분명한 지시'이지 실제로는 호랑이의 기세가 필요하다. 남학생들에게 "그만하자." "뒤에 나가 서 있으렴." "선생님은 00때문에 속상하네."라고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 진짜 이해를 못 한다. 문제 행동을 하는 남학생 중에는 교사가 대놓고 불러내 싸늘한 표정으로 지적해도 웃으며 장난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천사같은 학생들은 조금만 분위기가 바뀌어도 이를 감지한다. 내 아들이 그러면 얼마나 좋을꼬..)
툭하면 아동학대의 빌미가 되고 교사의 카리스마, 아이 마음 읽어주기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하는 요즘 교육 현장에서 나는 아직도 문제 행동을 하는 남학생을 지도할 적절한 방법을 못 찾았다. 몇 해 전 4학년 여덟 반에 영어 교과 전담으로 들어갔을 땐 각반에 한 명씩 수업을 방해하는 남학생이 있었다. 숫자 세기, 뒤에 서 있기, 반성문 쓰기 등이 전부 안 통했다. 진심으로 사랑을 주면, 민주적으로 규칙을 정립하면 나아질 거란 나의 교육관이 철저하게 무너졌고 좌절에 빠진 나는 ‘아들 교육'을 한창 찾아봤다. 공부하다 보니 어떻게 하라는 건지 대충 이해는 갔다. 단호하고 명료하게, 승부욕을 자극하고,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그러나 이런 방향이 감성적이고 섬세한 내 성향과는 여러모로 안 맞았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은 딸 키우기가 더 수월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R0DM-iC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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