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남성이 어렵다 / 신이시여 제게 왜 아들을 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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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에 이어서-!
앞서 언급했듯 내 인생에 남자라고는 아빠, 남편, 사촌 오빠뿐이다. 이중에 아빠는 세대가 한참 달라서 그런지 그저 아빠로 느껴진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빠가 TV 속 숏컷 개그우먼을 보고 머리가 왜 저러냐고 투덜대거나 결혼해서 아이는 꼭 낳아야지 안 그럼 삶이 무슨 행복이냐고 열변을 토해도 나는 아무렇지 않다. 아빠가 살아온 삶의 배경과 스토리를 이해하면 그 세대 남성이 그런 생각을 갖는 건 당연해 보이고 오히려 가끔은 아빠가 내 예상보다 깨어있어서(?) 놀라곤 한다. 마찬가지로 택시 기사나 아파트 통장님과의 대화도 쉽고 편하다. 이전 학교의 나이 지긋한 교무부장님께서도 날 참 예뻐하셨다. 시골에서 와서(강남 사람이라 대전을 시골이라 칭하셨다) 털털하고 성격이 참 좋다며.. 지금도 종종 전화가 오셔서 뜬금없이 지인의 아들을 소개받으라고 하신다.(이미 결혼해서 애까지 가졌습니다만..)
이처럼 아저씨나 할아버지를 대할 땐 아무렇지 않은 반면 동년배 남성은 언제나 어렵다. 우선 남사친은커녕 남자 지인도 없거니와 연애도 별로 안 해봐서 그런가 어색하다. 어렸을 적 여자중학교에 입학한 뒤로 길에서 남자 애들을 만나면 아는 체를 못 했다. 분명 초등학교 내내 친하게 지냈고 싸이월드에선 여전히 일촌인데도 멋쩍고 민망해서 길을 돌아갔다. 그러면서도 혼자 의식은 엄청 해서 괜히 앞머리를 매만지거나 눈을 또렷하게 치켜떴다. 성인이 되어 먹고 산다고 혹독한 사회화를 거친 결과 누구든 만나면 상냥하고 싹싹하게 대할 수 있는 스킬이 생겼지만 여전히 내 안에는 사춘기 여중생이 남아있다. 뭐랄까, 또래 남성 앞에선 자연스럽지 않다. 학창 시절에 이어 직장도 여초니 이건 뭐 어쩔 수 없는 팔자려나. 가끔 연애 프로그램에 내가 나가면 어떨까 상상해 보는데 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것도 못해서 통편집되거나, 괴짜 빌런으로 우스워지거나.
이러니 나에게 2030 남성을 만날 창구는 두 가지뿐이다. 뉴스와 인터넷 커뮤니티. 그런데 이를 통해 보는 그들은 나와 너무도 다르다. 그래서 더 어렵다. 솔직히 전엔 내가 맞고 그들이 틀리다 생각했는데, 이젠 아니다. 나이 들며 세상 대부분의 문제는 딱 부러지는 기왓장이 아닌 찐득찐득한 떡에 더 가깝다는 걸 이해하게 됐고, 뭐든지 양날의 검이고 인생 만사는 새옹지마라 이쪽도 저쪽도 확실히 서기 어려워졌으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나 또한 시시각각 판단이 바뀌어 어느덧 애매모호한 회색 인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그럼에도 성매매나 성폭력 등 몇몇 의제 앞에선 전과 같이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설 수 없을 만큼 완고하다. 그렇다 해도 옳고 그름을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기 시작하면 피곤해지는 건 결국 나 자신이기에 되도록 둥글어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옳고 그름을 떠나서, 최대한 판단을 미루고 둥글게 봐도, 인터넷과 뉴스 속 2030 남성의 가치관, 정치 성향, 관심사 등은 나랑 상극이다. 그리고 다들 페미니스트의 ‘페'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며 싫어하니까 일부러 현실에서 또래 남자들과 굳이 부딪히지 않는 것도 있다. 알아갈수록 서로 기겁할까 봐..
나도 안다. 그게 전부가 아님을. 일반화하면 안 되고 그렇지 않은 남성도 있겠지만 그래도 통계가, 수치가, 인터뷰가 보여주는 그들의 입장이 나와 매우 달라서 내 아들이 그렇게 크면 도대체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모르겠다. 특히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하는 방식으로 표심을 모으는, TV토론회에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망언을 뱉어놓곤 ‘심심한’ 사과로 상황을 수습하는 어떤 정치인을 보면 나는 기가 막히는데, 그의 뻔뻔함과 자신감의 밑바탕에 2030 남성의 탄탄한 지지율이 있음을 확인할 때마다 내 뱃속에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다. 내 자식이라고 내 뜻대로 자랄 리 없고, 그러길 바라서도 안되며, 가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회와 또래가 주는 영향이 크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무교지만 임신하고 부쩍 '신이 있다면'이란 구절로 문장을 시작하는 날이 많아졌다. 신이 있다면 왜 나에게 아이를 주셨을까. 신이 있다면 입덧은 왜 만드신 걸까. 신이 있다면 지금 나의 아픔을 보고 계실까. 신이 있다면 이 고통은 끝나야 할 텐데. 신이 있다면 나는 언제쯤 편안해질까.
그런 상상을 자주 하다 보니 마음속으로 종종 신과 대화하기도 했다. 아들인 걸 알게 된 후 우리는 조금 긴 대담을 나눴다.
(무교인데 평소 성경도 읽고 법륜스님도 자주 본다.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섞였다. 삼신할미와 임성한 작가도 합쳐져 나의 신은 묘한 혼종이 되어버렸다. 신성모독할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어떤 임산부의 N적 상상이라 봐주시길..)
나: 왜 저에게 아이를 주셨나요? 아이를 간절히 바라는 다른 부부들이 많아요. 그들에 비해서 저는 자격이 부족하잖아요. 의지도 없고, 태교도 안 하는 불량 엄마인데.
신: ...
나: 게다가 하필.. 아시잖아요. 저 몇 년 전만 해도 성추행한 도지사 무죄 판결 규탄한다고 시위도 갔었잖아요. 인사동 한 바퀴 행진하고 광화문에서 혼자 뼈해장국 먹으면서 울고 불고.. 말도 못 하죠. 왜 아들이에요?
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나: 네?
신: 첫 번째는, 좀 당해보라고. 네 삶엔 너무 여자들밖에 없어. 그러니까 남자를 이해 못 하고 싫어하는 거야. 그리고 너 네가 기혼 유자녀 여성으로 살게 될 줄 몰랐지? 너는 다르게 살 거라고 호언장담 했잖아. 특히나 아들맘들을 어떻게 봤니? 넌 너만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그리고 지나치게 옳고 그름에 치중해. 그게 오히려 너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거야. 이참에 아들 키우면서 삶의 지평을 넓혀봐. 처음엔 힘들어도 나중에 편안해질 거다. 내가 약속할게.
나: ... 두 번째는요?
신: 너 니 아들이 어떻게 크길 바라니?
나: 남한테 피해 안 주고, 자기가 가진 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약자를 도와주고, 혐오하거나 차별하지 않길 바라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말도 바르게 하면 좋겠네요. 특히 '네 엄마' 어쩌고 이런 욕하면 호적에서 파 버릴 거예요. 그리고 요즘 10대들은 미디어에 여과 없이 노출되니까 자기도 모르게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포르노를 찾다가 N번방에 들어가고 딥페이크나 불법 촬영 영상을 보잖아요. 저는 제 아들이 제발 안 그랬음 좋겠거든요? 그래서 사춘기가 오면 차라리 제가 먼저 성교육을 해주고 싶어요. 너무 많네요. 정리하자면 힘의 논리로 세상을 보기보다 더불어 사는 어른이 되면 좋겠어요.
신: 그래. 그런 아들이 필요해. 그래서 내가 너한테 아들을 점지해 준 거야. 네가 키우는 아들이 세상에 있으면 좋겠으니까.
이렇게 한참 상상 마당을 열고 나면 지금의 내 상황이 어느 정도 납득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온다. 아이가 부모 뜻대로 크진 않지만, 그렇게 되길 바라서도 안되지만, 그래도 열심히 키워야겠다. 나의 과거가, 지금 이 시간이 헛되지 않게.
*이런 걸 제시하면 ‘일반화하지 마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지 마라'라고 한다. 그럼 수치와 통계를 무시해야 하나..? 범죄자 대부분이 남자라는 걸 우리 모두 인정해야 그다음 논의로 발전하지 않을까. 일단 나는 아들 엄마가 되었으니 이런 사실을 더더욱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긍정회로를 돌려보자.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 일단 아들인 것만으로도 벌써 글이 세 편이나 써졌다. 너무 솔직한 나머지 망신살이 제대로 뻗쳐버렸지만 작가지망생으로서 글감이 많은 건 긍정적인 신호다. 그리고 원래 부모 자식 간에 공감대가 많기는 어려운 법. 오붓한 시간을 충분히 가지다 보면 거기서 우리만의 벽돌이 쌓이고 마당이 생기고 집이 완성되지 않을까. 무엇보다 항상 남편이 함께할 테다. 남편은 나보다 좋은 사람이라 아들에게 훌륭한 아빠이자 바람직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징징대기만 하는 글로 남을까 봐 애써 희망차게 마무리해 본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내가 가르쳤던 남학생들도, 뉴스에 나오는 2030 남성도 이해하고 싶다. 어려워도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그게 나의 책임이자 숙제 같다.
잘해보자 아들아. 엄마는 이런 사람이야. 부디 네가 따뜻한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바라는 건 그뿐이야.
남성을 이해해 보려는 나의 노력.. 꽤나 본격적이다.
https://youtu.be/8CZg9naevV4?si=EMdCbhj-I0jypTGQ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31115460000107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51372.html
노력.. 중이다..
끝으로 아들 희망 편을 올려보겠습니다.
이런 걸 보면 부모의 선한 마음, 성실한 태도가 자식에게 그대로 가는 것 같다. 나는 급식 대가님이나 안유성 셰프님처럼 살 자신은 없지만..
우리 가족도 주말보다는 뭐? 화목이길. 아들이 세상 유혹에 혹하다가도 내 얼굴보다 더 닮은 심장이 '얘야 거기까지만'이라 말해주면 좋겠다. (갑자기 드러나는 힙찔이 자아)
내 아이도 지가 하고 싶은 걸 하면 좋겠다. 그게 뭐든. 싫은데 부모가 시키는 걸 억지로 하면 결국 나중에 보상 심리로 표출된다. 나는 공부 열심히 했으니까 공부 안 한 사람들보다 잘 살아야 해. 나는 정규직인데 저 사람은 청소부니까 엘리베이터 타면 안 되지. 내가 노력해서 돈이 많은 건데 그걸 왜 나눠. 이런 식으로.. 개인적으로 명문대생이 청소노동자를 고소했던 사건을 보며.. 내 자식은 절대 저렇게 자라지 않길 바랐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고민하게 됐다.
이런 사람을 보면 이제
사귀고 싶다(X), 결혼하고 싶다(X)
내 아들이면 좋겠다(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