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루틴: 소설 쓰는 하루 / 김중혁 외 6인 / 앤드 / 2023
<작가의 루틴: 시 쓰는 하루>가 좋았어서 소설가 버전도 읽어 보았다.
산책은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라 왜 하는지 의식하거나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걷다 보면 많은 일들이 괜찮아진다는 것이다. 걷다 보면 괜찮아진다. 괜찮아지고 어떨 때는 멀리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빠르게 옮겨 갈 수도 있다. 혹은 옮겨질 수도 있다고 해야 할까.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과 골목과 가로수가 바뀌는 계절과 바람이 나를 들었다 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을 써야 하는데 도무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그럴 때 늘 산책의 도움을 받는다. 나는 편한 신발을 신고 가방에 지갑과 핸드폰, 생수 한 통만 넣고 3시간을 걷는다. 3시간을 걷는 동안 소설은 무조건 시작되어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길을 나서면 늘 어느샌가 무언가 시작되어 있다. (...) 그럴 때가 아니더라도 산책은 도움이 된다. 적당한 정도의 휴식과 기분 좋은 흥분을 주고 지금까지 썼던 것을 다른 방식으로 보게 해 준다. 그런 면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와 좀 전까지 쓰던 것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글을 쓰는데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과정 같다. (63-64쪽)
-책에 나오는 여러 작가들이 걷기, 산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산책을 좋아하는 1인으로서 반가웠다. 역시 산책이 최고라니까!
특히 혼자 취한 날, 나는 다시 너무도 쉽게 자비 없는 혹독한 혼잣말의 세계에 입장하려 한다. 후회의 혼잣말은 긴 슬픔이라는 터널을 통과하며 죄책감으로 응축된다. 내 마음속 텅 빈 신전에는 시시때때로 나를 단죄하는 재판이 열리고 나는 탄원도 항소도 포기한 채 매번 주눅 든 얼굴로 피고석에 앉아 있곤 하는데, 사실 그 재판은 구름으로 만든 듯 아무런 실체가 없다는 것을, 물론 나는 잘 알고 있다. (151-152쪽)
-헝.. 대단한 문장이다. 이렇게 써야 일기가 아닌 에세이가 되는구나. 작가의 글은 역시 다름을 체감하는,,
부모님 차를 타고 근교로 나갈 때면 나는 뒷자석에 앉아 창문을 반 틈 열어 놓고 산을 노려보았다. (173쪽)
-산속 호랑이를 상상하던 어린 시절로 에세이를 시작하는 게 좋았다. 천선란 작가님은 어린 시절부터 습관적으로 캐릭터나 이야기를 상상했다고 한다. 음악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라 보아의 '아틀란티스 소녀'와 유아 '숲의 아이'를 듣고 쓴 소설이 있다고..! 당연한 줄 알았는데 모두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자 놀랐단다. 이런 사람이 소설가가 되는 건 정말 자연스러운 일 같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혼잣말을 했는데 어떤 스토리를 상상한 건 아니고 대충 친구와 대화 중이라거나 tv 출연자가 됐다고 가정했다. 지금도 틈날 때마다 내가 라디오 진행자인 것처럼, 유퀴즈 게스트인 것처럼 혼자 떠든다. 엄마랑 남편이 너는 왜 이렇게 혼자 중얼대냐 해서 이젠 마음속으로 떠들긴 하지만,, 택시에서 밖을 쳐다볼 때나 샤워할 때 나는 끊임없이 혼자 얘기한다. 그게 아이들 가르칠 때나 팟캐스트할 때, 지금은 글 쓸 때 반영되는 것 같다. (놀랍게도 친언니에게도 같은 버릇이 있다.)
내게 음악과 걷기는 창작의 동력원이나 다름없다. 문예창작과 선배들로부터 소설은 엉덩이 힘으로 쓰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 힘은 다리다. 나는 그날 걷는 횟수만큼 문장을 떠올린다. 걸으며 머릿속으로 캐릭터와 플롯을 구성하고 첫 문장을 떠올리고 포인트가 되는 대사를 떠올린다. 예전에는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잊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기억력이 떨어진 것인지 잊는 것이 많아서 확정된 내용이나 대사들을 핸드폰 메모장에 걷다가 멈춰 전부 적어 둔다. 얼마나 걷느냐고? 고민하는 지점이 풀릴 때까지 걷는다(이쯤에서 말하자면 내 핸드폰 건강 앱의 평균 걸음 횟수는 만 5천 보 정도다). (178-179쪽)
-천선란 작가님도 걷기의 중요성을..! 갑자기 궁금해져서 나의 하루 평균 걸음 수도 확인해 봤는데 6,000보 정도 ㅎㅋ
꼭 해야 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오전 6시에 일어나면 씻는 것을 먼저 하고, 오전 7시에 일어나면 직접 만든 요거트에 시리얼부터 먹는다. (...) 그때 든든히 먹어 두어야 점심 전까지 군것질을 하지 않고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 순서가 어찌 되었든 식사와 씻기를 마치면 집 환기를 하고 이불 정리를 하고 청소기를 돌린다. 가끔 전날 널어 둔 빨래를 갠다. 이 모든 게 끝나면 딱 8시 30분 정도가 된다. 카페에 앉으면 9시. 첫 커피를 마시는 시간. 이 아침 루틴을 깨트리지 않는 한, 나는 어떤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다. (179-180쪽)
집에서 나와 근처 카페를 가거나 작업실로 가기까지 대략 5천 보에서 7천 보. 그 시간에는 오늘 해야 하는 작업을 복기하고, 그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놓는다. (...) 그리고 자리에 앉으면 걸으며 내내 생각했던 그날의 첫 문장을 쓴다. (180-181쪽)
내가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세웠던 철칙 두 개가 있다. 하나, 바쁘다고 식사 거르지 말 것. 둘, 바쁘다고 잠 줄이지 말 것. (...) 석 달을 유지하자 다짐했던 것이 어느덧 햇수로 4년이 되었다. 4년 동안 철칙을 어긴 적이 없다. 나는 이제 이 생활이 익숙하고, 내가 일을 하고자 마음먹은 시간 안에 능률을 최대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182-183쪽)
내가 말하는 12시간의 일은 대개 역방향 뽀모도로 공부법에 가깝다. 25분 동안 책을 읽고, 서치를 하고, 바깥을 바라보다가 5분을 쓴다. 그리고 또다시 반복. (...) 내게 12시간 일이란, 노트북 근처를 크게 떠나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상태가 맞겠다. (184-185쪽)
-부끄럽게도 아직까지 천선란 작가님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다른 작가 작품이 섞인 소설집에서 한두 번 본 적은 있겠지만..) 그런데 이 에세이 때문에 천선란 작가의 소설을 꼭 찾아 읽어야겠단 결심이 섰다. 멋지고 성실한 사람 같다.
내가 리뷰를 대하는 방식은 놀이기구 안전 요원 같다. 그러니까 내가 직접 만든 놀이기구에 사람들을 입장시키고 퇴장시키는 역할까지 하는 직원인 셈이다. (...)
사람마다 각자가 느끼는 재미와 공포의 역치가 다르다. 내게는 심심한 놀이기구가 누군가에게는 적당한 재미로, 누군가에게는 공포로 느껴질 수 있고 어떤 이는 그런 심심한 맛에 놀이기구를 탈 수도 있다. 기준이 전부 다르므로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따뜻했다는 평도, 유치했다는 평도, 짜릿했다는 평도, 허무했다는 평도 각자의 역치가 다른 것이지 내가 상처받을 일이 아니다. 나는 그저 놀이기구가 잘 작동했는지, 피해는 없었는지만 살필 뿐이다. 없다면 안도를 느낀다. 그리고 또 다른 놀이기구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린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내가 정말 나만의 테마파크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187-188쪽)
-정말 멋진 말이다.. 놀이기구를 만든다, 각자의 평이 다르겠지만 내가 상처받을 일이 아니다. 그리고 또 다른 놀이기구를 만든다! 마침 오늘 아침 임신 일기에 악플이 달렸다. 마음이 좀 상하긴 했지만 괜찮다. 때마침 이 문단을 읽은 직후라서 다행이다.
편집자님과 PD님은 이야기가 세상으로 나가기 전 내 이야기를 접하는 첫 번째 독자이자, 놀이기구의 탑승객이며 동시에 안전관리 요원 같다. 창작은 고독한 것이라던데, 물론 쓰는 행위 자체는 혼자 앉아서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 작가가 되어 보니 외롭다기보다 즐겁고 설레는 일이 훨씬 많다. 무엇보다 옆에 바짝 붙어 응원해 주는 편집자님, PD님을 만난다는 건 대단히 든든한 조력자를 만나게 되는 것과 같다. 나는 행운처럼 느낀다. (191쪽)
-프로작가들이 부러운 이유. 돈과 명예보다도 옆에 편집자가 있다는 것, 동료 작가가 있다는 것. 나도 누군가와 같이 글을 쓰고 싶다.
가끔은 나 스스로가 현실 도피자라 느껴질 때가 있다. 예전에는 그것이 현실 부적응처럼 느껴졌는데, 요즘에는 오히려 지치고 단조로운 현실에서 색다른 일을 떠올리는 내가, 그리고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는 내가 꽤 만족스럽다. (193쪽)
-결핍과 단점은 그걸 어떻게 써먹느냐에 따라 나를 빛내주는, 어쩌면 나를 살려주는 구원이 된다. 나는 계속 내가 예민하고 부정적인 게 싫었는데 언젠가부터 그걸 글이든 그림이든 발산하기 시작했고 그러니까 나 자신이 만족스러워졌다. 지금도 가끔은 내가 맘에 안 들고 그저 단순하고 해맑은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그럴수록 글을 더 열심히 쓰자고 생각한다.
외부 행사가 있거나 약속 때문에 외출하는 날을 제외하고 나의 일상은 거의 동일한 움직임과 속도로 흘러간다. 하루에 마시는 커피의 양과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비슷할 만큼. 그런 날들을 약 15년간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199쪽)
-그니까 삶이 지루하고 단순하다고 불평할 필요가 없다니까.. 15년이라니.. (반성)
집이 부유하지도 않고 베스트셀러를 쓰지도 못했는데 나는 어떻게 전업 작가로 살아왔을까? (...) 나는 나에게 있는 만큼만 쓰고 없을 때는 쓰지 않았다. 삼십 대 중반 넘어서까지 매일 돈 걱정을 했지만...... 출간한 책이 쌓이면서 어느 날부터는 조금씩 인세가 들어왔다. 원고 청탁도 차차 늘어 갔다. 과거의 내가 꾸준히 해 놓은 일이 현재의 나를 살리는 느낌이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란 개념이 있고, 무슨 일이든 10년만 꾸준히 하면 결과가 나타난다고들 하고, 요즘은'존버'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대체로 그런 주장에 수긍하는 편이다. (200쪽)
-창작자로 살려면 이게 진짜 중요한 것 같다.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에서 영화지망생들도 같은 얘기를 한다. 돈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이 끝까지 예술을 한다고.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유행하는 거 다 사고 싶으면 돈을 벌어야지 예술을 하면 안 된다. 돈 대신 자아실현을 택했으면 포기할 건 포기하자(라고 나에게 하는 말,,)
첫 단편소설을 발표한 후 원고 청탁은 없었다. 투고를 했지만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 글을 썼다. 그때는 퇴근 후에, 밤 열한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글을 썼다. (...) 지금은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깜짝 놀라곤 한다. 계약도 청탁도 독자도 없이, 스물여섯 살의 나는 무슨 동기나 목적이 있어 밤마다 글을 썼을까? 어째서 그 시간에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공부나 토익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스물여섯 살의 내가 '글 쓰는 밤'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글쓰기 말고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가능성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 (201-202쪽)
-정말 위로가 된다,,, 투고했지만 연락을 받지 못했고 그래도 새벽에 글을 썼다는 얘기. 원래라면 자격증이나 토익 공부를 해서 다른 일을 했어야 하지만 그 가능성은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나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스스로 어리석고 한심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지만, 글을 쓰고 책을 읽는 나는 좋아한다. 책과 가까운 존재여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순간이 살아갈수록 많아진다. 하지만 스물여섯 살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쓰기가 좋아서 밤마다 썼다기보다는 글을 쓰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썼을 것이다. 글 속에서 나는 분노하고 폭로하고 처벌했다. 만나고 믿고 사랑했다. (202-203쪽)
-글쓰기가 좋다기보단 글을 쓰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말에 백번 공감한다. 부모님 몰래 3년 동안 장편소설을 써서 응모했고, 현재의 루틴 대부분이 그 3년 사이에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진짜 위로가 됐다. 유명해지기 전에 만들어놨던 습관이 유명해진 후에도 유용하다는 것이..
그런 사소한 행동을 지속하는 힘으로 일상은 굴러가고, 그것들을 미루지 않고 제대로 해내야만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지킬 수 있다. 저기 내가 처리해야 하는 쓰레기가 있고, 빨래가 있고, 설거짓거리가 있다. (...) 나는 매일 닦아 내야 한다. 나는 내가 치워야 한다. (208-209쪽)
-친한 친구가 순수 미술 작가인데 정말 성실히 산다. 매일 새벽 수영 가고, 작업실 출근하고, 삼시세끼 건강하게 차려 먹는다. 살림도 잘해서 집도 작업실도 세상 쾌적하다. 그런 부지런함과 깔끔함이 그 친구의 작가 활동을 지탱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계속 그 친구가 떠올랐다.
요즘은 오후 한 시부터 글을 쓴다. 커피 잔에 새로 커피를 채우고, 서버의 남은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서 나의 방으로 출근한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전원을 켠다. 한글 창을 열기 전에 시 서너 편이나 에세이 한 꼭지 또는 단편소설 한 편을 읽는다. 타인의 글을 읽으며 감탄하고, 배우고, 부러워하다 보면 나의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에도 서서히 불이 들어온다. 계속 읽고 싶은 마음을 차곡차곡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한글 창을 연다. 나의 글을 쓰기 시작한다. (210-211쪽)
-쓰기를 하려면 읽기가 필요하다! 요즘 계속 느끼는 점
나의 글을 쓴다는 것은...... 잘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나는 왜 이렇게밖에 못 쓰나 자책하는 것.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로 계속 백스페이스키를 누르고 한 문장도 완성하지 못한 상태로 연거푸 엔터키를 누른다. 자료조사나 단어의 뜻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 창을 열었다가 쓰고 있는 글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재미있으니까 계속 보고 싶은 게시판의 글이나 동영상을 홀린 듯 찾아다닌다. 그렇게 딴짓에 빠져 있다가 시간을 보고 깜짝 놀란다. 다시 한글 창으로 돌아온다. 몇 문장 써 본다. 백스페이스키를 길게 누른다. 의자에서 일어나 주위를 환기하는 강아지처럼 방을 맴돈다. 어떤 문장이 떠오른다.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문장을 쓴다. 이어서 쓴다. 커피를 마신다. 다시 쓴다. (...) 그런 과정을 반복하며 자유와 한계를 동시에 느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아무리 거듭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 (211-212쪽)
-최진영 작가님도 똑같구나.. 아니 이런 대작가도,, 다행이다..
글쓰기 습관을 몇 가지 적어본다면, 일단 퇴고로 글쓰기를 시작한다. 어제 쓴 글을 퇴고하면서 오늘 쓸 내용을 궁리하는 편이다. 그래서 새로운 글을 시작할 때 가장 난감하다. 글을 쓸 때는 삼십 분 정도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 같다 (...) 글이 잘 써진다고 느끼는 때는 거의 없다. 잘 써진다고 느낀다면 분명 뭔가가 잘못되는 중이라고 의심하는 편이다. (212-213쪽)
-나도 하루를 퇴고로 시작하는데! 글이 잘 써진다고 느끼는 때가 거의 없는 것도 공감!
해가 긴 여름에는 저녁 여섯 시, 해가 짧은 겨울에는 저녁 다섯 시에 퇴근한다. (...) 문장을 더 이어 쓰고 싶더라도 일단 자리에서 일어난다. 산책을 해야만 하니까. 산책은 나에게 글쓰기만큼 중요한 일이다. (...)
책상 앞에 앉아서 일을 할 때는 글을 제대로 쓰거나 쓰지 못하는 상태에만 집중하게 된다. 시야는 좁아지고 생각은 편협해져서, 내가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마치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산책을 하면서 깨닫는다. 방에서 내가 느낀 위기감이나 조급증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우스운 감정이었는지. 세상은 나의 일에 관심이 없다. (...) 글을 쓰는 동안 품었던 착각과 과대망상을 오려 내는 것. 부풀어 오른 부담감의 바람을 빼고 글쓰기를 원래의 자리에 내려놓는 것. 글 쓰는 나와 일상의 나를 분리하는 것. 저녁 산책을 할 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217-218쪽)
-또 산책. 다들 영감과 환기의 효과를 강조한다.
이제는 글을 쓰지 못할 날을 상상하면 두렵다. 글쓰기는 완전한 나의 일이 되어 버렸고, 그것을 잃으면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 것만 같다. 나의 글을 읽어 주는 사람이 단 열 명이라도 존재한다면, 그리고 나에게 쓰고 싶은 문장이 남아있다면, 고요하고 적당한 어둠 속에서 꾸준히 쓰고 싶다. (222쪽)
-감동,,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천선란, 최진영 작가님 글 때문에 사고 싶다. 나랑 비슷한 부분에선 위로를, 다른 부분에선 자극을 받았다. 어쨌든 나도 꾸준히 건강하게 오랫동안 글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