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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쌤 Mar 19. 2021

정목이와 이동필

괴물이 되는 순간

  *갑자기 떠오른 장면 하나를 이야기로 만든 초초초 짧은 소설입니다.

소설 공부한 적 없어서 마음대로 썼어요:)





   “저 모기 새끼, 이 똥파리 새끼. 빨리 튀어 안 오냐!”

   '씨발, 오늘은 좀 가만 놔두지.'

   나는 속으로 온갖 욕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상철 쪽으로 얼굴을 돌릴 때 미소를 띠는 건 잊지 않았다.

   “난 저 모기 새끼 비굴한 웃음 저게 참 맘에 들어. 행동은 얼마나 빨라. 내 목소리 듣고 바로 일어나는 것 좀 봐라. 우리 집 해피도 저렇지는 않거든. 곤충 주제에 포유류보다 말을 잘 듣는다니까.”

   상철의 말에 반 아이들 전체가 와하하 따라 웃는다. 저게 그리 웃긴 말인가. 나는 상철이 보다 따라 웃는 아이들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내 편을 들어줄 이가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딱 한 명 있다. 맨 앞자리에서 허둥지둥 걸어오고 있는 ‘이동필’. 편을 들어준다기보다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사이라 부르는 게 더 어울리겠다.

   “이 똥파리 새끼는 항상 느려 터져가지고 부르는 맛이 없잖아. 그렇게 느려서 똥이나 처먹겠냐! 빨리 안 와!”

   동필은 상철의 호통에 깜짝 놀라다가, 상철의 웃음기 띤 표정을 보고 그새 안심이 됐는지 헤헤 웃으며 뒤통수를 긁어대기 시작한다.    

 

   내 이름은 목이다. 성은 정. 붙여서 정목이. 빠르게 부르다 보면 결국 ‘저 모기’가 되어버리는 이름. 엄마가 어릴 적 읽은 동화책 주인공인 ‘목이’. 죽은 나무에서도 스스로의 힘으로 자라나는 목이버섯처럼 강하게 살아가라고 지어주신 이름이다. 부모님께서 정성을 다해 지어주신 이름이 내 인생을 망가뜨리고 있다. 목이버섯이 나무와 함께 죽어가는 꼴이다. 게다가 점점 외모까지 모기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비죽하게 키가 자라기 시작했다. 살은 점점 빠져서 비쩍 마르고 길쭉한 체형이 되었다. 쭉 찢어진 눈매와 얇은 입술이 내가 봐도 야비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부턴가 나를 “목이야.”라고 불러주는 친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모기야!”, “모기!”하고 부르더니 이제는 그 뒤에 꼭 ‘새끼’를 붙인다. 나는 ‘저기 저 모기 새끼’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동필이가 전학 오기 전엔 사정이 괜찮았다. 돈 좀 갖다 바치고 비위만 잘 맞추면 맞지는 않았다. 동필이 오면서 모든 게 변했다. 나와 동필을 한 묶음으로 놀리고 괴롭히는 게 더 재미있다는 것을 상철이 발견했기 때문이다. 뚱뚱하고 여드름투성이에다 항상 땀내를 풍기고 더러운 교복을 입고 다니는 동필에게 ‘똥파리’라는 별명은 내가 봐도 지나치게 잘 어울렸다. 동필은 아마 태어날 때부터 똥파리로 살아온 것 같았다. 전학 올 때 자기소개로 “이름은 이동필이고, 전에 학교 친구들은 날 ‘똥파리’라고 불렀어.” 하며 배시시 웃던 모습이 떠오른다. 동필의 소개를 들으며 ‘병신 같은 게. 찌질이 취급 받고 싶어 안달이 났네.’하며 속으로 비웃었다. 설마 동필이와 나의 운명이 같은 길을 걷게 될지 그땐 몰랐다.     

   “똥파리는 내 어깨 좀 주무르고, 모기 새끼는 빨랑 매점 가서 빵이랑 우유 좀 사와라. 아침 운동했더니 배 더럽게 고프네.”

   나는 밝은 표정으로 교실을 나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어깨 주무르라는 건 곧 맞게 된다는 뜻이다. 아마 아침 운동 때 상철이 얼차려를 받은 모양이다. 상철은 유도부다. 특기생으로 학교에 들어왔고, 청소년 대회에서는 이미 유명한 존재다. 미래의 국가대표라고 학교에서도 상철을 떠받들어주니 무서울 게 없는 새끼다. 내년에 선배들이 졸업하면 진짜 상철이 세상이다. 그 말은 이 지옥이 아직 1년 넘게 남았다는 소리다.   


   종류별로 빵과 우유를 사 들고 교실로 들어서니 역시나 동필이 맞고 있다. 교실 앞에서는 아이들이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교실 뒤에서는 학살이 일어나고 있다. 두 공간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막이 쳐 있는지도 모른다. 피가 튀고, 욕설이 난무하는데 아무도 이곳을 보는 사람이 없다. 각자의 공간 속에서 최소한의 방어막을 치고 사태를 파악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진짜 우리를 곤충, 아니 벌레로 여기는지도 모른다. 파리, 모기 몇 마리쯤 아무 죄책감 없이 죽이지 않는가.

   “이 새끼야. 마사지 받다가 냄새로 돌아가시겠다. 내가 좀 씻고 다니라고 했지. 어째 이리 말을 못 알아 처먹니. 집에 물 없어? 아님 집이 없냐? 니 애미는 너한테 냄새 난다 안 그래? 아, 니 애미도 똥파린가? 그래, 똥파리면 똥냄새 맨날 풍기고 다녀야 하지. 그래도 좀 정도껏 해라. 음식 쓰레기 썩은 내가 나잖아.”

   연신 동필의 배를 차대면서 상철은 웃고 있다. 마지막 발차기 한 방에 결국 동필은 토를 하고 말았다. 

   “우웩 더러워. 이 새끼 내 자리에다가 결국 음식 쓰레기를 뱉어내네.”

   상철은 코를 싸잡고 자리를 피하다가 날 보더니 빵과 우유를 가로챘다.

   “야, 모기 새끼. 나 올 때까지 저거 깨끗이 다 치워놔. 냄새 조금이라도 나면 너도 저 꼴 날 줄 알아.”

   잔뜩 으르렁거리더니 똘마니들과 나간다. 담배 피우러 가나 보다. 동필은 여전히 몸을 웅크리고 끙끙대고 있다. 나는 말없이 옆으로 가 휴지로 토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미안해. 목아.......”

   살짝 고개를 들고 나를 보며 우그러진 미소를 짓는 동필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동필의 모습에 내 얼굴이 겹쳐지면서 끔찍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휘저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   


   상철이 대회 준비로 바쁠 때 나와 동필은 잠시 휴가를 즐길 수 있다. 연습으로 수업에 거의 들어오지 못할 뿐 아니라, 와도 잠만 자다 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까지 쓸 에너지가 없는 거다. 그래도 조심하지 않으면 연습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와장창 쏟아질 수 있으니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 눈이라도 마주치는 날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바늘처럼 예민한 감각을 가진 나는 뒤로 돌아보지 않고도 상철의 상황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동필은 그렇지 않다. 감기에 걸렸는지 연신 코를 훌쩍이던 동필은 시끄럽다는 짝의 핀잔에 휴지를 들고 교실 뒤 구석으로 걸어가 코를 팽 풀었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반 아이들이 다 뒤를 돌아볼 정도였다. 눈치도 없는 동필은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뇌까지 뽑아낼 것처럼 코를 풀어댔다. 그 소리에 상철이 깨어났다. 

   “뭐야, 뭔 소리야. 천둥 치냐, 똥파리 너 미쳤냐. 나 자고 있는 거 안 보여!”

   책상을 치며 벌떡 일어난 상철은 동필에게 의자를 집어 던졌다. 그때야 상황을 파악한 동필은 얼른 코를 훔치고 입을 달싹거렸다.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상철은 사과를 받고자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이왕 잠이 깼으니 동필을 때리며 몸을 풀고 싶은 것뿐이다. 

   “어, 코 풀고 있었구나. 그래 내가 코를 시원하게 해줄게. 이리 와.”

   상철은 동필의 머리카락을 쥐고 코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잽 잽 잽. 짧은 펀치 세 번에 동필의 코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내게 불똥이 튀지 않기만을 빌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리 운이 좋은 편이 아니다. 

   “야 모기 새끼, 너 똥파리 관리 안 하고 뭐 하냐. 너도 이리 튀어 와.”

   ‘모기’라는 말이 상철에 입에서 나오자마자 난 일어나 상철에게 가고 있었다. 그때 누가 “담임 온다.”라고 소리치지 않았다면 아마 나도 동필처럼 쌍코피를 흘렸을지 모른다. 동필이 얼른 코를 막고 자리로 돌아가자 상철이 으르렁거렸다.

   “너희 둘 다 저녁 시간에 창고 앞으로 와.”


   차라리 쌍코피 터지는 게 나았다.     

   무릎을 꿇고 한참 뺨을 맞았다. 뺨이 부어올라 눈을 짓누를 때쯤 더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동필은 이미 양쪽으로 50대 씩, 100대를 맞고 내 옆에 서 있었다. 동필이 맞는 수를 세고 있었는데, 이 새끼가 계속 숫자를 놓쳤다. 그럴 때마다 상철을 낄낄 웃으며 처음부터 다시 때렸다. 왼쪽 뺨은 79대에 겨우 끝났고, 지금 오른 쪽은 83대를 넘어가고 있다. 여기서 또 동필이 숫자를 잊었다.

   “야, 팔 아파서 이제 못 때리겠다. 내 손바닥이 다 부었어. 이 새끼 진짜 꼴통이네. 고등학생이 숫자도 못 세냐.”

   상철은 동필의 이마에 꿀밤을 먹이고 벤치에 걸터앉았다. 

   “이제 때리는 것도 재미없네. 기분이 안 풀려. 요새 감독이랑 코치 새끼들이 미친개처럼 갈궈대서 스트레스 장난 아니거든. 뭐 재미난 거 없냐?”

   옆에 있던 녀석이 담배에 불을 붙여 상철에게 건넨다. 조폭 영화 좀 봤나 보다. 진짜 조폭이 나타나면 쪽도 못 쓸 것들이라고 속으로 비웃어 준다. 

   “모기 새끼 표정 왜 이래. 기분 나쁘냐? 그럼 기분 좋게 해드려야지. 넌 모기 새끼니까 빠는 거 좋아하고, 똥파리 새끼는 핥는 거 좋아하지? 자 이리 와서 한 번 빨고 핥아 봐.”

   상철은 두 발을 우리를 향해 들어 올렸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지금 우리에게 뭘 하라고? 나는 동필을 바라봤다. 동필은 이미 초점이 나간 눈으로 상철의 운동화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비가 온 직후라 진흙이 잔뜩 묻은 운동화 바닥이 마치 똥을 밟은 것 같았다. 상철의 명령에 머뭇거린 적 없던 나지만, 이번에는 모기처럼 쌩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 하냐? 모기 새끼. 빨리 안 움직여! 똥파리 새끼는 여전히 느리네.”

   주변에 있던 아이들이 나와 동필을 끌고 가 상철 앞에 꿇어앉히고, 우리 얼굴을 상철의 발바닥에 문대기 시작했다. 

   “빨리 안 해? 바지 벗고 할래? 팬티까지 벗겨 줘?”

   갑자기 동필이 상철의 다리를 거칠게 잡더니 운동화 밑창을 핥아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보다 빠르게. 그렇게 빠른 동작을 하는 동필을 본 적이 없다. 동필은 정말 파리 같았다. 맛있는 똥을 본 파리처럼 상철의 운동화를 핥고 있는 동필을 보자 나는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두 손을 파리처럼 비벼대며 상철에게 사정했다. 잘못했다고, 기분 나쁜 거 아니라고. 용서해달라고. 하지만 내 얼굴은 계속 운동화 바닥에 붙어있었고, 눈물과 진흙이 섞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상철의 웃음소리만 귓가에 쟁쟁 울렸다. 나는 정말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   


    상철이 부상을 당했다. 대학을 결정짓는 거나 마찬가지인 중요한 경기였다고 한다. 각 대학별로 감독과 코치들이 그 경기를 보러 왔기 때문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고 한다. 상철은 무릎이 부서졌다. 팔도 꺾였다고 한다. 당연히 유도는 쉬어야 하고, 성공적으로 재활해도 국가대표까지는 어려울지 모른다는 얘기가 아이들 사이에 떠돌았다. 

    상철이 학교를 나오지 않는 동안은 천국이었다. 난 여전히 모기 새끼고, 동필도 똥파리인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를 때리는 사람은 사라졌다. 그러나 내 마음은 지옥이었다. 운동화 사건이 있고 난 뒤 나는 동필과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동필과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동필이 진흙을 핥던 그 기억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매일 악몽에 시달렸다. 꿈에서도 나와 동필은 상철이 주는 온갖 오물을 핥아먹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동필의 몸이 조금씩 변한다. 팔과 다리가 가늘어지고 마디가 생긴다. 등을 찢고 얇은 날개가 솟아 나온다. 머리카락 사이로 더듬이가 나오고, 입이 뾰족해지고 대롱이 생긴다. 동필의 커다란 눈은 과학 교과서에서 본 곤충의 겹눈처럼 여러 개의 화면으로 나뉜다. 그 속을 들여다보니 수많은 모기의 얼굴이 보인다. 내 얼굴이다.

   벌레가 되는 악몽에 평생 시달리며 살 수 없다. 나는 상철이 다친 지금, 상철의 곁에 아무도 없는 지금이야말로 악몽을 떨칠 기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기억을 없애지 않는 이상 나는 인간으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동필을 찾아가 함께 복수하자고 말했다. 언제까지 벌레 취급받으며 살 거냐고. 우리는 죄가 없다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상철이야 말로 버러지라고. 버러지 중에서도 남에게 피해만 주는 해충이라고 소리쳤다. 동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밤비가 내린다. 아침부터 내린 비라 바닥이 충분히 젖었다. 바닥이 질척질척한 게 딱 그날이 떠오른다. 오늘 상철이 외출한다는 걸 알아내고 하루 종일 마음의 준비를 했다. 동필과 나는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낀 채, 상철의 집 근처 가로등이 꺼진 골목 구석에서 상철을 기다렸다. 11시가 넘어서야 상철이 나타났다. 목발을 하고 팔에 깁스를 한 채 비를 맞으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비를 맞으면서까지 밖에 돌아다니는 녀석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나에겐 고마운 일이다. 상철이 우리가 있는 골목을 지나치자마자 달려 나가 덮쳤다. 나는 상철의 얼굴을 바닥에 문대기 시작했다. 동필은 상철이 저항하지 못하게 온 몸으로 누르고 있었다. 상철은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듣지 않고 계속 얼굴을 문댔다. 상철이 입을 벌리고 말을 하려 할 때마다 바닥의 진흙이 입에 들어갔고, 그 모습을 보는 나의 가슴 밑바닥에서 시원한 폭풍이 일었다. 우리가 누군지 모르게 하려면 말을 하면 안 됐지만,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떠냐? 진흙 맛있냐? 너도 한 번 핥아봐! 너도 당해봐! 기분이 어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세찬 빗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동필이 다가와 나를 밀치더니 돌로 상철의 머리를 내리쳤다.

   퍽 퍽 퍽.

   순식간이었다. 나는 말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바닥에 주저앉아 동필의 행동을 바라만 봤다. 빗물에 상철의 피가 섞여 바닥에 흐르는 걸 멍하니 보고 있는데 앞집에 불이 켜졌다. 동시에 정신이 든 나는 벌떡 일어나 무작정 뛰었다.     

   놀이터까지 한참을 뛰었다. 숨이 막혀 더는 뛸 수 없어 벤치에 주저앉았다. 잠시 숨을 돌리고 있는데 동필이 뛰어 왔다. 나는 동필의 팔을 부여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야, 너 무슨 짓이야. 상철이를 죽일 셈이었어?”

   “.......”

   “그냥 겁만 줄 생각이었잖아. 왜 갑자기 그런 거야! 말 좀 해 봐.”

   “.......”

   “이럴 거면 너 혼자 하지. 왜 나까지 곤란하게 만드는 거야! 도대체 왜!”

   “인간이 되자며. 벌레쯤은 죽일 수 있어야 인간이지. 우리는 인간이야. 그 새끼는 버러지고.”

   나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동필의 팔을 놓고 다시 주저앉았다.

   “해충은 박멸해야지. 난 네가 원하는 대로 했을 뿐이야. 잘했지? 너도 만족하지? 우린 이제 인간인거지? 우린 똑같은 처지잖아. 우리 친구 맞지?”

   동필의 끊임없는 물음에 머리가 복잡해진 나는 짜증이 치밀어 와 소리쳤다.

   “똥파리 새끼 주제에 누가 니 친구야! 너 나까지 끌어들이지 마라. 너 혼자 한 거야. 난 아무 죄 없어! 우리라니! 경찰서 가서 그렇게 말하기만 해 봐!”

   “니가 갑자기 말을 했잖아. 상철이가 니 목소릴 알아챘을 거야. 그래서 그런 건데. 니가 걸릴까 봐. 니가 곤란할까 봐 그런 거라고.”

   동필은 낮게 웅얼거렸다.

   “그렇다고 죽이면 어떡해. 죽었으면 어쩌지. 얼마나 때린 거야? 어쨌든 난 상관없어. 걔가 죽든 살든 무조건 니가 한 짓이야. 알겠지? 난 가만 놔둬. 니가 다 책임지라고! 이 미친 똥파리 새끼야!”

   이성을 잃고 소리치다 동필의 눈빛이 변하는 걸 보고서야, 알아챘다. 동필의 손에 아직 그 돌이 들려있다는 것을. 동필의 손이 천천히 올라간다. 마치 그 꿈속처럼 화면이 여러 개로 갈라진다. 내 눈이 모기의 겹눈으로 변한 것이다. 수십 개의 돌이 내 눈 앞으로 쏟아진다. 내가 이번엔 진짜 벌레가 되어버렸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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