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ing

by 화유

<사건 당일>


김 반장이 사무실로 향하는 것을 본 해주는 근무 조건 등을 묻기 위해 뒤로 따라붙었다. 문이 닫히려던 찰나 함께 사무실로 들어간다.

“근무 시간이랑 시급이랑…. 그런 게 궁금해서요. 여쭤보려고요.”

“아, 내 지금 바로 나가야 하는데. 시간은 5시부터 12시. 시급은 최저시급이고, 여기에 계좌번호 써놓고 문 단디 닫고 나가소.”

“네.”

은행과 계좌번호를 적고 나가려는 순간, 해주의 눈앞에 두툼한 은행 봉투가 보였다. 순간적인 충동이 해주를 괴롭혔다. 외면하고 싶었지만, 봉투는 이미 옷 깊숙한 곳에 숨어들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무실에서 나와 자신의 가방으로 급히 봉투를 밀어 넣었다. 다행히 아무도 보지 못한 듯하다. 심장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팔딱여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옷매무새를 고치며, 태연하게 할머니들 사이로 돌아간다.



***


말순 할머니가 그렇게 가버리실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이렇게나 발칵 뒤집힐 줄 알았다면…. 다시 조용히 가져다 두려고 했는데…. 아니, 처음부터 탐내지 말아야 했는데…. 할머니가 범인으로 몰릴 줄도, 더군다나 이런 일로 세상을 떠날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나란 인간은 정말 쓸모없는 존재. 다른 사람 인생까지 파괴하는 인간 쓰레기. 머저리. 최악. 인간 말종. 진작에 죽었어야지….

영정 사진 속 할머니를 마주하고 죄송하다는 말도, 내가 그랬으니 책임지겠다는 말도, 그 어떤 말도 할 용기가 없었다. 아니, 그보다 한시라도 빨리 사라지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 되는 일이라고 여겼다. 해주는 늘 이렇게 뒷걸음질치며 살아왔다. 모든 원흉은 자신이니, 그저 자신만 없으면 해결된다고 믿었다. 아빠가 그랬으니까…. 나같은 새끼는 세상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50만 원. 진항에 도착한 날, 해주에게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보증금을 미리 뽑아뒀다. 차곡차곡 개킨 이불 위에 하얀 봉투가 잘 보이도록 올려 둔다. 짐이 남아 있으면 후일 할머니가 곤란해질 거다. 잠시 여행 다녀간 아이로 기억되길 바란다. 꺼내둔 것들을 가방에 모두 넣어 조심스레 방문을 나선다. 할머니가 깨지 않도록, 최소한의 걸음만으로 살금살금, 자기 전 살짝 열어둔 대문 앞으로 향한다. 다행히 문소리는 크지 않았다. 문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나서야 깊은숨을 내쉰다.


유난히 이연한 새벽 2시. 한기가 온몸을 감싸는 초겨울의 바닷가에서 의지할 거라곤 가로등에서 낙하하듯 떨어지는 불빛과, 그 불빛에 번져 흐릿해진 별의 잔상들뿐이다. 차마 버리지 못한 미련들을 둘러메고, 진한 바다 내음과 절써덕하는 파도 소리를 따라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딘다. 진항의 바다는 해수욕장을 제외하곤 바다에 조형된 바위들이 많은 지형이다. 민박집 주변 해안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밝을 때 봐두었던 해안가의 기억을 더듬으며, 마지막 세속의 경계를 넘어 울퉁불퉁한 바위 더미에 다다랐다. 앞에 무슨 물체가 있는 건 아닌지, 발을 헛디뎌 떨어지는 건 아닐지, 한 걸음씩 조심히 내디디는 자신이 우스웠다. 방법이야 어떻든 죽음이라는 목적에 도달하면 그만인 것을 ‘내가 원하는 대로 죽겠다’라는 비겁한 자존심을 움켜쥔 나약한 영혼의 발버둥이었다. 바위 끝에 다다라 아래를 내려 보니 그저 달빛을 가둔 검정이다. 뒤꿈치에 손가락을 넣어 남은 미련을 훌렁 벗고, 한데 모아 뒤로 힘차게 던진다.


‘툭, 툭’

처음부터 한 켤레가 아니었던 것처럼 멀찍이 다른 방향을 향해 흩어진다. 평소에도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신발과 옷가지를 가지런히 모아두는 게 이해되지 않았던 해주는 역시나 그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설정일 거다 확신한다. 가지런히 모아두는 정성도, 유류품을 쉽게 찾게 해줄 배려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래도 가방은 무거우니 제자리에 내려둔다. 끝까지 멋대가리 없는 박 해주.


“철썩-”

바닷물이 오가며 바위들의 면면을 부딪치는 소리, 새벽 바다의 상쾌하고도 비릿함이 혼재된 감청의 내음, 스산하다 못해 오싹하기까지 한 효풍이 해주의 마지막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 순간 짙게 가라앉은 어둠이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다가올 미지의 세계가 더는 두렵지 않았다.

‘숨을 참아야 하나?’, ‘바로 안 죽으면 어떡하지?’ 잠깐의 고민을 끝으로 마지막 깊은숨을 들이마신다.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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