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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타샤 Oct 24. 2021

귀여움은 우주 최강

딸기

남편은 멋에 죽고 멋에 사는 남자다.

지금에야 나아졌지만 멋내기를 끔찍하게 사랑해서 텅장이 채워지면 꽉 찬 옷장도 더 채우기 위해 쇼핑을 했다. 과도한 소비로 미래를 함께 하기 어렵겠다며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내비치면 교묘하게 중국발 택배를 받거나 동묘나 광장시장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빈티지 의류를 함께 구매한다. 이렇게 그는 가짜와 진짜, 새것과 헌것을 적절히 믹스 매치하며 자칭 합리적 소비를 하는 진정한 멋쟁이로 거듭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웃옷들을 주워 입을 수 있는 나는 최대의 수혜자이기에 올라오는 잔소리를 잠시 넣어 두기도 한다.


옷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멋진 것들을 사랑하는 그에게 가끔 질문한다.

"여보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멋진 게 좋아 귀여운 게 좋아?"

"귀여운 게 우주 최강이지!"

"그렇지?!"



어느 날 아는 동생이 남편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형이랑 누나처럼 오래 잘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잘 만나기만 한건 아닌데......"

내가 적당한 대답을 못 찾자 매우 진지한 표정의 남편은 동생에게 되물었다.

"우리가 왜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아?"

동생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편은 더 진지해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바로. 남편이......

.

.

.

.

.

.

존나 귀여워야 돼."



"음...... 정말 맞는 말이야."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남편은 존나 귀엽다. 귀엽다 귀엽다 하니까 점점 더 귀여워지고 싶어 몸이 점점 불어났다. 한 때는 유명 브랜드 코**컴**의 모델로 매장 앞에 그의 얼굴이 걸린 포스터를 볼 수 있었다. 세월의 모진 풍파가 그를 솜방망이질 정도는 해주었는지 늘씬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세련미 철철 흘러넘치던 그가 많이 변했다. 몸무게 90kg을 거뜬히 넘기고 배가 유독 볼록 나와서 만삭의 임산부처럼 똑바로 누워 자는 것을 힘들어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나의 뚠뚜니는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귀여울 때가 많다.


 샤워를 하고 나와 발매트 위에서 '내 귀여운 몸매 좀 봐줄래?'라고 말하는 듯 나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도 귀엽고, 뽀송하게 닦아야 한다며 수건으로 꼬추를 탁탁 터는 모습도 귀엽고, 조금 부담스럽지만 똥꼬를 야무지게 닦는 행위도 귀엽다. '반하지 않을 수 없지.' 하트 뿅뿅 눈빛을 날려주면 예리하게 감지하고는 작은 꼬추(거대한 상체에 비해!)를 상모 돌리듯 재롱을 부리기도 한다.


 가끔은 늘어난 체중 때문에 심히 걱정이 될 때도 있다. 네가 귀여운 게 좋다 하여 이리 열심히 찌웠는데 이제와 살 빼라 한다며 늘어난 자신의 몸무게를 교묘하게 나의 탓으로 돌린다. 건강도 걱정이지만 근육질 몸매보다 살집이 적당히 있는 몸매를 선호했던 과거와 달리 씁쓸하게도 서른다섯이 넘자 적당히 근육이 있는 몸매에 시선이 따라간다. 그건 내가 아니라 나의 눈이 따라가는 것이라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다. 분명 성욕은 감퇴되고 있는데 건강미를 즐기고자 하는 눈의 욕구는 다른 것 같다. 이런 은밀한 비밀을 눈치챘는지 남편에게 팔짱을 끼면 주먹을 쥐고 팔뚝의 힘을 불끈 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팔짱을 끼지 않은 반대 팔을 휘둘러 남편의 배를 쪼물딱거린다. 

"너는 살성마저 너무 귀여워."


 남편의 배꼽에 입방구를 불고 겨드랑이 사이에 나의 정수리를 비비고 손등, 팔뚝, 눈썹, 이마 여기저기에 뽀뽀를 해대면 무심한 척 입꼬리를 씰룩대며 즐기기도하고 또 어떤 날은 질색팔색 하며 귀찮아한다. 반응하는 것을 보면 엄청 괴롭히고 싶은 시큰둥한 표정의 덩치 큰 강아지 같다.

"여보는 똥냄새도 강아지 같아. 큰 강아지가 사료 먹어야 되는데 주인이 먹는 거 몰래 먹다가 싼 똥냄새. 뭔지 알 것 같지. 그거랑 비슷해. 집에서 대체적으로 발가벗고 다니는 것도 강아지랑 비슷해. 우리 다음 생애는 골든리트리버 부부로 만나자. 알았지?"


 주로 귀엽다는 말을 남발하며 나는 넘치는 사랑을 주고 싶어 제멋대로다. 이십 대 후반부터 아이들과 미술수업을 시작하며 귀엽다는 말이 입에 붙기도 했거니와 원치 않았던 지리멸렬한 시간을 함께 지나오며 우리 사이의 코어 근육이 단단해졌을 것이다.


"여보 나는 여보가 너무 부러워."

"왜?"

"나한테 이렇게 사랑받으니까. 근데 내가 더 행복한 거 알지?"

"왜?"

"원래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한 거야. 그러니까 내가 이긴 거야."

경쟁심 많은 남편을 도발해보고 싶지만 본인은 시청하던 애니메이션을 마저 봐야 하기 때문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매번 오글거리고 훈훈한 얘기를 하며 달달하게 사는 건 당연지사 불가능하다.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진부한 멘트가 절절하게 와닿도록 사랑하던 삼 년 정도의 시기를 지나 여느 커플들처럼 권태기가 왔고 질리도록 싸워댔다.

 

지금에야 내가 가끔 욕을 하면 욕쟁이 할머니의 팬이 된 듯 남편이 좋아해서 가끔 도의적 책임감을 가지고 그의 즐거움을 위해 씨발이라 뱉어주기도 한다만 과거는 달랐다. 강남역 한복판에서 소리 지르며 싸우는 꼴 보기 싫은 커플이 되기도 하고, 감정이 아무리 격해져도 욕은 하지 말자던 다짐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화를 참다 복화술로 씨발이라 욕한 적도 있다. 불행히도 그 입모양을 내게 들켜 하루 종일 소매 끝으로 나의 눈물 콧물을 닦아야만 했다.

 

또 남편이 술을 마시고 저질렀던 과거의 몇 가지 황당한 실수 때문에 결혼 후 거나하게 취해 특유의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모습이라던가 비틀거리는 모습은 여전히 꼴 보기 싫다. 그럴 땐 안나 카레니나가 남편에 대한 애정이 식어감을 '저이의 귀가 원래 저렇게 이상하게 생겼나'라고 묘사했던 것을 떠올리며 오늘 나의 남편은 이상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고 한탄한다. 그리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 술과 관련된 이혼사유를 검색하며 무의미하길 바라는 복수를 도모하기도 한다.


 게다가 나란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경솔하여 십여 년간 연애하는 동안 서너 번 헤어지자고 했다. 좋아하는 책을 함께 공유하는 것도 어렵고 예술뽕 제대로 맞은 이십 대 초반 매일 읽어 내려가던 영화평에도 그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을 찬양하면 그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을 숭배한다 말했다. 무엇보다 뜨거운 연애만큼은 짜릿하면서도 언젠가 부질없어질 거라고 나는 자주 불안해했다. 이런 나의 불안함을 기저에 깔고 올라오는 우유부단함을 일찍이 예상이라도 했는지 처음 헤어지자고 했던 날 그는 헤어짐에 있어서는 삼진 아웃이라며 딱 세 번만 붙잡을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다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끝이라며 나를 살짝 쫄리게 만들었다.


 연애 7년 차 세 번째 헤어지자고 통보했던 날 영등포의 허름한 곱창집에서 남편의 오랜 회유 끝에 넘들이 보던 말던 우린 질질 짜면서 화합을 도모했다.

"이번이 세 번째니까 다음에 또 헤어지자고 하면 절대 붙잡지 말아 주렴. 진심이야."

이미 한 고비 넘긴 남편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놀리듯 말했다.

"싫은뒈~~ 또 잡을껀뒈~~~"



'도대체 내가 뭐가 좋아서 나를 놓지 못하는 거야 홍홍홍' 하고 자만하던 것도 한두 번. 남편과 함께 대청소를 하다 새삼스럽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는 한 번이라도 애정을 쏟았던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했다. 초등학생 때 가방에 달고 다니던 도날드덕 키링마저 버리지 못했다. 하물며 사람인 나를 보내는 것은 힘든 일이었겠구나 싶었다. 나의 매력 때문이 아니라 그의 애정을 쏟은 대상이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습성 때문이라 생각하니 허무하다가도 헤어지자고 말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니 안쓰러웠다. 전에도 바퀴벌레처럼 붙어 다니던 한쌍이었지만 결혼 후 더 부대끼며 살다 보니 남편은 자신의 유약한 부분을 한 꺼풀씩 벗겨내며 슬쩍 보여주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나의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결혼 전 대체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남편은 육식파이기 때문에 과일 따윈 키우지 않는다고 했다. 과일을 소복이 접시에 담아 포크로 찍어 입 앞에 들이밀어도 먹지 않는다고 앙 다문 입으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뚠뚜니가 되고 난 뒤 입맛도 귀여워진 것인지 전에는 통 먹지 않았던 과일들을 쏙쏙 받아먹는다. 그중에서도 자신은 딸기를 좋아한다고 어필했다. 그 외 식감이 말캉말캉한 멜론, 황도, 망고 같은 유독 비싼 과일들이 좋다고 고백했다. 봄이 되면 딸기를 열심히 사다 나르곤 하는데 딸기만큼은 스스로 포크로 찍어 먹는다. 잠시 딴짓을 하고 있으면 접시가 비워져 있다. 혼자 다 먹는 게 내심 얄미웠다가도 과일을 잘 먹는 모습을 보면 배가 부르다. 그래도 그의 배는 더 이상 부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 빨간 딸기 위에 검은색 작은 씨를 그렸다. 옆에서 보던 귀여운 아이가 말했다.

"선생님 딸기 씨는 노란색이에요!!"


아무래도 남편도 과일도 잘 안다고 자부하기엔 섣부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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