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
중학교 동창 P는 다섯 살 연하의 남자 친구와 갑자기 맞이한 장거리 연애의 여파로 최근 이별했다. 얼마 있다 만난 그녀는 주님에 의해 끊었던 알코올을 다시 적시고 진정한 주酒님으로 거듭나려 했다. 그리고 후련하게 털어내라고 만들어 놓은 판 위에서 예상의 어긋남 없이 울기 시작했다.
비혼주의자로 가벼운 연애만 즐기다 그녀가 내게 처음 소개해줬던 연하의 남자 친구는 인상이 좋았다. 첫 만남 이후 남편과 나는 그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런 그와 도대체 왜 헤어졌는지 듣다 보니 내가 이해하기로는 연락이 잘 안 되는 것이 큰 이유였다.
“언제 (주 연애 장소인 자신의 집에) 올 건지 얘기만 해달라고" 여러 번 얘기해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자신은 뒷전이라 데이트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연애초 안달복달하는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언제 올 건지 얘기하지 않는 게 그리 서러울 일인가 의아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얘기를 반복해서 얘기하는 그녀를 보다 불현듯 우리의 과거가 떠올랐다.
바야흐로 중학교 2학년 나의 부모가 이혼하기 직전의 아슬한 상황, 그녀의 부모 사이도 우리 집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300미터 반경 안에 서로의 집이 있어 매일 함께 등교했는데 밤새 울고 통통하게 부은 서로의 눈두덩이를 보며 꿀팁을 공유했다. “녹차 티백 냉동실에 얼려놓고 눈두덩이에 올려놓으면 빨리 가라앉는데.”
“나는 이제 둘이 언성 높아지면 미리 숟가락부터 냉동실에 얼려놔. 그게 즉방이야.”
지금에야 두 가정의 부모 모두 잘 지내고 계시지만 톨스토이 말마따나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불행하다고 당시 약국을 운영하시던 P의 아버지는 집에 있는 온갖 상비약을 배부르게 드시기도 하고, 한 번은 가스 배관을 자를 테니 살고 싶으면 휘주네 집으로 지금 당장 가라 했다며 그를 간신히 말린 이야기를 그녀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넌 엄마라도 네 편이지. 우리 엄만 아빠가 그럴 때마다 밖에 나가 있고 연락도 안돼.” 하며 푸념했다.
그제야 “언제 올 건지 말만 해달라고” 반복해서 말하는 그녀가 좀 더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좀 전에 떠오른 과거를 꺼냈다. 추측이었지만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다음날 진정이 된 그녀에게 언제 올 건지 얘기해주지 않았던 엄마한테 사과부터 받으라며 우스개 소리를 했다.
현재 누구보다 사이좋은 모녀지간을 자랑하는 그녀는 장난스럽게 여차저차 하여 휘주가 엄마한테 사과받으라 했다며 고자질했다. 얼굴도 마음도 소녀 같은 그녀의 어머니는 그날 저녁 전화기 너머 살짝 취한 목소리로 “엄마가 예민하게 낳아서 미안해……”라고 나즈막이 말씀하셨다 한다.
우리의 부모들이 오은영 박사가 전수하는 좋은 부모로서의 역할을 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면 상황이 좀 달라졌을까 싶다가도 한참 다투던 그들의 나이가 지금의 내 나이와 별반 차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내게 주지 못해 받게 된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헤아려 볼 수 있는 나이가 된 것 같다.
모두의 인생이 평탄치만은 않다. 우여곡절을 통해 스펀지처럼 온갖 감정들을 흡수해 더 예민해지거나 미리 방어벽을 단단히 세워 자극에 무던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좋은 일에 예민하게 감응하고 원치 않는 일에 무던하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들이 유독 눈에 많이 띈다. 유유상종이라고 함께 대화하는 게 즐거운 이들 중엔 초민감자들이 많다. 그들 중 나를 포함한 팔할은 심리상담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중이거나, 정신과 치료 및 약을 처방받기도 한다. 예전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심리상담만 칠십 번 넘게 받은 내담자계의 전문가가 된 친구, 우울증에서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길래 승격했다며 함께 깔깔거리고 웃는 것으로 쓰린 마음을 대신했던 대학 동기, 대학원에서 철학 상담을 공부하며 적극적으로 상담을 받고 상담을 해주는 나의 도반이 되어준 고등학교 동창까지 각자 나름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아등바등 노력하며 살고 있다.
쉽게 무르고 상처가 잘 나는 무화과를 포장할 때 주로 스티로폼 박스를 사용한다. 이름도 고아하고 보라와 연두가 만났을 때의 신비로운 색감까지 지닌 무화과를 애호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부림 본능이 올라와 고혹적인 향을 한번 맡고 연한 과육을 절반 자른다. 산호색의 작은 씨를 오독오독 씹으며 금세 비어지는 상자를 아쉽게 바라본다.
부모가 내게, 내가 친구들에게 무화과를 안전하게 감싸는 스티로폼 박스 같은 사람이 되어준다면 감사할 노릇이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들 또 어쩌겠는가. 행여 큰 상처가 나더라도 잘 봉합해 치료하거나 작은 상처라도 방치해서 곪아터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각자 나름대로 고안해내며 버티고 있는 친구들을 격하게 응원하고 싶다.
빛 안에 있는 사람은 빛 안밖에 못보지만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은 빛과 어둠을 다 본다.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