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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휘 Sep 12. 2020

당신의 몸에선 녹슨 쇠 맛이 난다

당신이 내게 얼굴을 붉힌 날 집 가는 길 한강의 석양은 위태롭게 작열했다 불구덩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마녀의 비명 같은 색이었다 붉은 것은 그렇게 까맣게 재가 되기 마련이었다          


지하철은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금박이 붙은 커다란 빌딩은 어린 날의 동경의 빛, 꿈이 고작 녹슨 붉은색이라니 짜증 난다 말했다 오늘 당신의 얼굴도 저런 빛이 돌았다 나 없이 살 수 없다 말한 당신이었지만 이젠 어쩔 수 없었다 우리의 관계는 삭을 대로 삭아서 시큼한 냄새가 났다 반지를 뺀 약지 손가락에 혀를 갖다 댔 비릿한 쇠 맛이 올라왔다 세상을 살아가는 주제에 감상 따위에 젖어있는 탓이었다

     

여러모로 늙은 나는 홍조 띤 당신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댈 수 없었다 사람은 본디 쇠로 태어나기에 며드는 건 녹이었다 현실을 생각하란 당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쇠로 태어나지 못할 뿐     


당신의 몸에선 쇠 맛이 나지 않아

     

말이 나온 곳은 분명 여기저기가 부르튼 바셀린의 흔적조차 없는 윤기의 황무지였다 365일 비가 내리는 열대의 땅은 영양분이 모두 씻어내려 가 붉은빛이 돈다 과연 영양실조에 기인한 당신의 모진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끝없이 펼쳐진 적막치고는 경광봉을 흔들고 돌아온 날 늘 입을 맞춰준 당신이라서 우리의 집은 사막 속 정글이었다 하나뿐인 밀림의 웅덩이에는 언제나 물이 고여 있었다

           

목이 말라 두 손을 모아 물을 퍼올렸다

           

마시자 피 맛이 돌았다 녹이 잔뜩 붙은 커다란 대못을 핥으면 입 안 가득 도는 비릿한 맛

비린내를 머리에 박은 채 창조주를 원망하던 괴물의 비명이 들렸다 이런 곳에 웅덩이를 왜 만들었냐고 물었지만 당신은 그저 한쪽 팔을 들어 보일 뿐이었다

          

전방 정지 더 이상 전진하지 말 것

늙은 것이 잔뜩 묻은 눈이라 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난 당신을

          

밀림의 오아시스는 당신이 온통 붉을 때까지 마르지 않았다 주차장의 웅덩이는 달랐다 그곳엔 늘 남의 온정에 기생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기가 비린내 나는 생명을 잉태했다 혀가 없는 주둥이엔 온정을 나눌 감각이 없었다 그러니 모기란 녀석은 쇳덩이가 수시로 밟는 웅덩이에 생명을 낳고 그 생명이 다시 피를 빨고 다시 생명을


부질없는 날갯짓이 부러웠다 

그럴 때면 당신의 피를 빠는 꿈에 잠겼다

꿈에선 당신이 비리지 않았다

     

찰나 쇳덩이가 굴러오더니 생명을 밟았다

모기는 혀 없는 주둥이로 생명을 빨아들였다

쇳덩이의 주인은 자국에 침을 발랐다

침을 바르던 손끝에선 무슨 맛이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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