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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Feb 20. 2021

축적된 시간

나를 위한 것이라는 착각은 더 이상 없다.

6개월 정도 길렀던 머리를 잘랐다.

이렇게까지 머리를 길게 기른 건 오래간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흑역사에 가깝지만,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무렵, 

반지키스의 주인공인 안정환 선수를 따라 장발의 파마머리를 한 이후 처음인가.

그때 내 뒷모습이 시장 가는 아줌마가 따로 없다며 놀리는 이들이 있었지.

2020년의 회사생활은 퇴근도 없고, 휴무도 없고, 심지어 휴가기간에도 일을 했다.

내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만은 없었고 심지어 나는 열심히 잘 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생활이 나에게 좋은 성과와 평가를 가져다주었다고 해도 (실제로 그렇지도 않았지만)

그건 전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좋은 성과와 평가도 내가 원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을뿐더러

잘 해내고 있다는 것도 나의 착각일 뿐이었다.

보기 좋게 버무려진 착각과 욕심은 내 눈을 가린 채 결국 번아웃을 가져왔고 

지칠 대로 지쳐있던 상태에서 업무 중 부상을 당했다.

그 역시 휴무인 날의 업무 중 발생했다.

한 달간 휴직을 하고 강제로 요양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 출근할 때는 아침마다 머리를 손질하는데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하지만 외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집에서 최소의 움직임으로 생활하다 보니

머리 손질은커녕 감을 필요도 없었고 

번아웃으로 새까맣게 타버려서 검은 그을음으로 가득했던 내 정신은 천천히 맑아졌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 시점의 나에게 머리를 기른다는 것은 

정확하게 말해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장발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퇴사로 인해 주어진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나'가 아니라 

'나에게 보이는 나'에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머리를 손질하던 그 시간에 나를 위한 하루를 계획하고, 

겉모습을 위한 소비생활을 되짚어 보고, 나를 돌아보는 글을 썼다.

어느 시점에는 머리가 '거지존'의 길이가 되어 외출할 때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비되기도 하고

5-6개월 즈음에는 나도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 되긴 했지만

긴 머리는 축적된 나를 위한 시간을 상징했다.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머리를 단정하게 잘랐다.

잘려나간 6개월의 머리카락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쑹덩쑹덩 잘려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면서

오롯이 나를 위해 보냈던 시간이 끝나는 것 같아서 하염없이 서운했다. 


6개월의 시간은 잘려나갔지만 이제는 더 이상 번아웃이 되지 않도록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과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 채우는 법을 알게 되었다.

나를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은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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