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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Sep 14. 2021

매듭을 풀어가는 삶

선택은 현재의 나에게 남겨진 몫

살다 보면 풀지 않고, 혹은 풀지 못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들이 많다. 누군가와의 오해, 하지 못한 말, 해보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것들 등등. 그것은 우리의 인생의 매듭으로 남아 트라우마가 되거나, 상처가 되거나, 슬픔이 된다. 간절했지만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한다면 그것은 '한'으로 남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무뎌졌을 거라고 생각했다가도 생각지 못한 순간에 그것을 마주하게 되면 마치 타임슬립을 한 듯이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 매듭 앞에서는 엄마에게 모질게 말했던 사춘기 시절로, 자존심 때문에 사과하지 못했던 유치한 아이로, 당당하지 못했던 작은 나로 돌아간다. 최근에 본 여러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그 말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죽어서 혹은 본인이 죽어서 전하지 못하고 후회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영원히 풀지 못하게 되어버린 매듭.


나에게도 매듭들이 여럿 있다. 브런치에 글로 남긴 유치원 시절의 잉어밥도 그중의 하나다. 작은 연못에 있는 잉어 한 마리라도 보게 되면 어김없이 나는 엄마에게 잉어밥을 사달라고 할 수 없어서 마냥 부러운 눈으로 친구들을 바라보는 7살짜리 유치원생이 된다. 그리고 슬퍼진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별일이 아닌데, 어린 나에게는 그게 매듭으로 남을 만큼 슬픈 기억인가 보다. 지난 10월에 다시 남원에 다녀왔다. 정확하게 일 년 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엄마와 함께였다. 광한루에 가기 전에 점심을 먹으며 유치원 시절의 잉어밥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다. 나는 슬펐지만, 엄마는 재미있어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내 매듭이니까. 광한루에 가는 내내 잉어밥을 파는 매점이 문을 닫았을까 봐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문을 열려 있었고, 엄마는 어른이 되고도 한참이 지난 자식에게 잉어밥을 사라고 돈을 꺼내 줬다. 나는 7살의 유치원생이 되어 기쁜 마음으로 잉어밥을 사서 엄마 손에 나눠주고 같이 잉어밥을 던져줬다. 그리고 잉어밥을 주다 보니 어느새 매듭은 풀려서 없어져 있었다. 그렇게 나는 7살의 나 자신과 화해했다.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서 서러웠던 7살의 내가 묶어놓은 매듭은 이제 없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말 그래도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를 돌아보면서 매듭으로 묶인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보고 풀어보고자 함이다. 하지만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바꿀 수 있는 건 없다. 그 매듭은 현재의 내가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매듭은 오롯이 지금의 나에게 남겨진 몫이고 그것을 푸느냐 마느냐 역시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알고도 모르는 척 넘어가거나 애써 외면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하지만 좋은 삶이란, 풀지 못한 매듭을 하나씩 잘 풀어가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를 돌아봐야 하고, 거기서 기억을 꺼내야 하고, 그것과 화해해야 한다. 그 과정이 우리에게 고통스럽거나 어려울 수 있겠지만 언젠가 인생의 끝에서 중간중간 거슬리게 묶여있는 매듭들을 보면서 후회할지도 모른다.


인생의 끝매듭을 잘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간에 있는 울퉁불퉁한 매듭들을 

먼저 푸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 못난 매듭을 풀어야만

야무지게 끝매듭을 지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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