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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Oct 21. 2019

눈물이 많아졌나요

나이 때문은 아닐 거예요

나는 싫고 좋은 게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다.

'이거 어때?'라는 질문에

'괜찮네'라는 어정쩡한 대답을 해도

이미 얼굴은 '별로야'라고 말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 탐탁지 않음을 강하게 드러내는 '별로야 표정'이다.

그래서 애초에 솔직하게 다 말하는 게 더 예의를 갖추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부분은 좋은데, 어떤 부분은 별로다.'라고 말하는 게 좋다.

오히려 이런 대답을 좋아하는 주변인들이 있다. 


업무지시의 경우에도

무언가 내가 생각하기에 타당하지 않거나, 불합리하다고 생각될 때는

얼굴에 바로 표시가 난다.

이른바 '내가 왜 표정'.

어렸을 때는 엄마가 시키는 일에도 이런 표정이 곧 잘 나오곤 해서

여러 번 잔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군대 가서도 그러면 큰일 난다.'

'사회생활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

굉장히 맞는 말씀이다.


이밖에도 '어쩌라고 표정', '너 미쳤니 표정', '저리 가 표정' 등

나는 미묘한 차이를 갖고 있는 다양한 표정들을 이용해

내 감정표현에 꽤 능숙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표정으로만.

'감정표현' 이라기보다는 '감정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유독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선 그렇지가 못하다.

슬픔을 충분히 느끼지만 그걸 표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인지

아니면 슬픔 자체를 느끼는 감정선이 약하기 때문인지.

특히 나는 눈물이 없는 편이다.

'사나이는 평생 딱 세 번만 운다'라는 구시대적 교육을 받아서도 아니고

우는 게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도 아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눈물방울이 '똑' 하고 떨어지는 주인공이 부러울 때가 많았지만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다' 정도가 한계였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울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영화, 드라마, 책을 보면서 혹은 음악을 들으며 우는 건

나의 버킷리스트에 넣어야 할 정도로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

영화, 드라마, 책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마 나는 '저게 뭐지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어린 시절, 동생과 드라마 <가을 동화>의 마지막 회를 본 적이 있다.

주인공이던 송혜교가 송승헌의 등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너무 슬펐다.

한참 드라마에 빠져 있던 내가 '너무 슬프지'라고 말하며 동생을 돌아봤을 때

동생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그렇게 소리도 없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니. 부러운 자식.

하지만 이런 나에게 전환점이 된 영화가 있으니

그것은 <신과 함께:죄와 벌>이다. 

수홍 역의 김동욱이 어머니의 꿈에 법관복을 입고 나타나 수화로 말하는 장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그 장면을 정말 눈물 없이 볼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영화를 극장에서 세 번을 봤는데, 세 번 다 울었다.

세 번 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나도 해낸 것이다.

심지어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두 번을 더 봤는데 그 두 번도 똑같이 울었다.

 

<신과 함께>를 보면서 울고 난 후에는 이상하게 눈물이 많아졌다.

요새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눈물이 나고, 드라마를 보면서도 운다.

그동안에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한꺼번에 나오는 건가 싶을 정도로 참 잘 운다.

어떤 주변인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라고 갱년기라며 놀리기도 하지만

정작 나는 그런 내가 싫지 않다.

내가 느끼는 슬픔을 눈물로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

2005년의 나는 차라리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울지 못했지만

이제는 슬픔까지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한 단계 성숙한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내 감정에 내가 솔직할 수 있다면 나 자신을 더 챙겨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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