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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휘찬 May 02. 2021

4월의 기록

2021년 4월

#8권의 책, 1편의 영화, 1편의 드라마 그리고 1개의 전시


유난히 빠르게 한 달이 지나가버렸다. 1, 2, 3월보다는 한 3배 정도 빠른 느낌이었다. 특별히 해야 할 것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 것도 아닌데 하루에 열흘씩 휙휙 지나가더니 어느새 5월이 되어버렸다. 그러다 보니 책이나 영화, 드라마도 볼 여유가 없었다. 4월에 8권은 정말 많이 읽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머지 시간에는 뭘 했을까. 특별히 해야 할 것들이 없던 그 시간에. 1박 2일의 여행 외에 몇몇 약속이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구멍 뚫린 듯이 텅 빈 느낌이라니, 일수가 적은 2월에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정말이지 알 수가 없다. 몇 달 전에 읽었던 단편소설집에 관한 북토크를 유튜브에서 보게 되었다. 첫 마음은 반가움이었다. 지금 현재의 문학을 따라가기 위해 신간을 매일같이 확인하면서 관심 가는 것들을 챙겨봤는데, 그런 책들을 다룬 북토크나 서평을 만나게 되면, '나는 벌써 읽었는데.' 하는 나름의 뿌듯함이 있다. 그 영상도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며 시청하게 되었는데, 반가움은 당혹스러움이 되고 곧 충격이 되고 이내 근심이 되었다. 왜냐하면 책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일기장에나 나올법한 '참 재미있었다.'는 흐릿한 감상 외에 기억나는 것이 전혀 없었다. 등장인물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했지만, 줄거리나 장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영상 속의 진행자들이 하는 얘기를 완전히 처음 듣는 느낌이었다. 심지어 내가 읽은 책이 아니라, 읽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책을 내가 착각한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을 정도였다. 나는 이것을 굉장히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아주 심각했다. 이렇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뭐하러 시간을 들여 책을 읽는단 말인가. 결국 안 읽은 거나 마찬가지인데. 사실 며칠 전에도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책을 읽고 나면 얼마나 기억이 나는지 물어봤다. 다행히 그들의 대답은 나를 안심하게 했다. 심지어 난독증이 걸린 것처럼 긴 글을 읽지 못하겠다는 대답까지 들었다. 결국은 간단하게라도 독서노트를 작성해보자.라는 꽤나 훈훈한 마무리. 또한 그것이 노화든 변화든 따지지 않고 받아들이는 마음도 필요하다는 것.


#다이어터


식단 조절과 다이어트라는 단어가 어찌나 생소한지. 그 두 단어는 나와 먼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그 어려움과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예전에는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건 다 독하지 못해서 그런 거라고, 사람이 음식한테 진다는 게 말이 되냐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한 걸까.) 나는 잘할 자신 있다고 했는데 이미 가지고 태어난 본능과 거기에 보태서 그동안 살아오며 몸에 밴 습관을 이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20일이 약간 넘었고, 그 사이에 나쁜 습관들이 고쳐지고 새로운 습관이 익숙해져 가고 있다. 절제할 필요가 없었을 때는 아쉽지 않았던 것들이 절제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보니 괜히 더 아쉬운 느낌이다. 왜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죄다 밀가루 음식인지. 그리고 밀가루를 끊고 넓게는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식단 조절을 하고 보니, 밖에 나가서는 사 먹을 게 없다. 샐러드 또는 고기라는 극단적인 선택권만이 주어져서 난감할 때가 많다. 원래 고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샐러드가 무척 잘 맞았지만 이것도 매일매일 계속되니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래도 그 와중에 떡 대신 곤약를 넣은 곤약 떡볶이라던가, 단백질 쿠키 같은 것들로 해소하긴 했으나 점점 적당하게 복합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에도 신경 쓰고 있다. 3월에 수면습관에 대한 개선에 집중했다면 4월에는 식습관 개선에 집중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하나씩 고쳐 씁니다.


#환각


흘러가는 시간만큼 앞으로 나아간다면 좋겠지만, 어째서인지 제자리다. 시간만큼 앞으로 나아가는 건 육체의 노화뿐인듯했다. 시간은 먼저 가버리고 나는 허공에 헛발질을 하고 있다. 그런줄도 모르고 열심히 쫓아가려 하고 있다. 어느새 새롭기만 했던 행복도 반복되고 또 거기에 익숙해진다. 철저한 계획과 충실한 실행은 뒤돌아보지 않을 길이라 생각했는데, 만족과 후회의 차이는 정말이지 아주 작고 미세하게 느껴진다. 후회는 측정할 수 없기에 언제나 얇게 쌓인 먼지처럼 보고 싶을 때만 보인다. 하지만 일단 눈에 들어오면 더 이상 얇아 보이지는 않는다. 


언제나처럼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 녀석은 내가 알고 있던 그곳에서 정확하게 나타난다. 휴대폰 화면의 사진을 두 손가락으로 확대하듯이 내 생각을 쭉쭉 늘려놓고는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다. 잘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확대하면 눈을 감은 채 찍혀버린 아쉬운 사진처럼, 잘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확대해 놓고 보니 눈을 감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알고도 모르는 척했을 수도 있고, 몰랐지만 알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그 자극이 지금의 안정을 파괴할지도 모르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또 잘 아물어 있을 텐데. 거슬러 올라가지는 못하더라도 지금처럼 흘러가면 안 되겠다. 한 번도 노 끝에 스치는 물결을 느끼지 못했으면서, 내가 노를 저어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 스스로를 이해시키느라 얼마나 애를 썼나. 사실 그것은 이해가 아니라 환각에 가까웠다. 


크리스마스에서 시작해서 벚꽃에 도착했지만 도착은 곧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이더라. 정처 없이 날아다니는 꽃잎은 또 나를 헷갈리게 만들고, 이것은 벚꽃잎이 아니라 아직 크리스마스에 흩날리는 눈송이라고 믿고 싶었다. 쏟아지는 비 속에서 길바닥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것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고, 날개가 젖어 더 이상 날 수 없는 나비처럼 비참했다. 그리고 녹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런 환각 속에서 나는 몽롱했지만 또렷했고, 냉철하게 사리분별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내다보며 우스운 광경에 깔깔거렸지만,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울을 보며 웃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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