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좋은 날씨에 걷기 좋은 길을 걷는다. 오르막내리막이 반복되고 햇빛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과 땀을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이 있다. 날씨는 화창하고 길벗은 즐겁게 걷는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마음이 무겁다. 마음에 그늘이 생긴 것이다. 마음이나 그늘이나 모두 내가 만든 허상이다. 허상에 속고 끌려다니느라 이 좋은 길을 걸으며 마음 한편은 무겁고 어둡다. 마음의 조명이 있다면 그림자가 없는 조명이 있으면 좋겠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좋은 모습이든 불편한 모습이든 모두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 그림자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보기도 한다. 그러니 그림자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마음이 허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허상임을 알아차리면 그림자는 저절로 사라진다.
표현이 과하고 격했다. 짐이 무거우면 나눠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짐을 나눠 들고 가야 하는 사람은 경우에 따라서는 불편하기도 하고 때로는 즐거울 수도 있다.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럼에도 리더의 입장에서 누군가의 짐을 다른 사람이 나눠 들고 가는 것이 편하지는 않다. 각자 자신의 짐은 자신이 들고 가야 한다. 그리고 들고 갈 수 있을 만큼의 짐을 들고 와야 한다. 리더로서 또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오랜 기간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깨달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표현이 과격했다. 그리고 과한 표현에 대해서는 죄송하다고 구두로 사과를 드렸다. 사과를 했음에도 여전히 마음이 개운하지는 않다. 상대방은 내게 용서를 하겠다고 했다. 용서받을 일인지 잘 모르겠다. 자신의 짐은 자신이 들고 가야 된다는 것은 리더로서는 당연히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시지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메시지를 전달하는 표현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다.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서 과한 표현과 화를 누르지 못했던 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모임에는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고 규정이 있다. 다만 걷기학교에서는 규정을 문서화하지 않고 있다. 문서는 문서에 불과할 뿐이다. 각자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면 되기 때문에 규정을 만들지 않았다. 앞으로도 규정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모임 신청은 온라인으로 하고, 모임을 오프라인으로 하고 있다. 온라인 문화가 있다. 참석자는 반드시 참석 댓글을 달고 와야 한다. 동행이 있을 경우 한 번은 동행으로 참가할 수 있지만, 두 번째부터는 가입한 후 본인이 직접 참가 댓글을 달고 와야 한다. 그리고 이 점은 동행에게 첫 번째 참석 시 말씀을 드린다. 댓글에 동행이 있다는 언급 없이 동행이 나타나게 되면 리더로서는 무척 당황스럽다.
나 자신으로 돌아온다. 부드럽고 편안하게 말씀을 드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순간 올라오는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미 알아차렸을 때는 엎질러진 물이 되었다. 마음챙김 걷기를 하고, 마음챙김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고, 글로 표현을 하면서 정작 나 스스로는 감정의 불길을 알아차리지고 못했고, 그 불길은 나의 집을 집어삼켰다. 온 세상이 화택(火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어제 나의 집을 불에 탔다. 이제 다시 집을 지어야 한다. 집을 어떻게 짓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마음으로 집에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감정은 불이다. 불길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불씨를 빨리 찾아내어 번지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아직도 멀었다. 어느 정도 중간쯤 와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다. 중간쯤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문 입구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었다. 아직도 문에 도착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문을 바라보고는 있다. 오랜 세월 문만 바라보며 걸어왔다. 아직도 제자리다. 그래서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꾸준히 앞으로 가고 있지만, 간만큼 문은 뒤로 물러난다. 해파랑길을 부산에서 걸어서 주문진까지 왔다. 꾸준히 걸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먼 길도 첫걸음부터 시작된다. 이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다시 나의 길을 걸으면 된다. 이미 불타 없어진 집은 잊자. 그리고 다시 새 집을 짓자. 첫 삽을 오늘부터 뜨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는 집이 들어설 것이다.
어제 감정 통제를 못해 불편을 끼쳐드린 분들에게 이 글을 통해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용기를 주고 싶다. 이 글을 쓰며 어제의 일을 흘려보낸다.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다. 과거를 발판으로 오늘 다시 길에 서서 길을 걷는다. 아직 먼 길이지만, 언젠가는 도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