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양 도성 순성(巡城) 길

by 걷고

코로나 여파가 어느 정도 가라앉고 있어서인지 선거 공휴일인 4월 15일 한양 성곽 순례길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특히 인왕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람들이 기다리다 올라갈 정도였다. 모두 사전 투표를 마쳤거나 아니면 새벽 일찍 투표를 마치고 임시 공휴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간 코로나로 인해 외출을 자제하며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켜왔는데, 최근에 신규 확진자 수가 50명 이하로 떨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도 느슨해진 느낌도 든다. 한편으로는 좋은 일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벌써 긴장을 풀면 안 될 것 같다는 걱정이 내심 들기도 한다. 한양 성곽 순례길의 마지막 코스인 남산에는 벚꽃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나마 사람들이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걷고 있어서 다행이다. 아마 코로나가 종식된다 하더라도, 앞으로 마스크는 일상 속 필수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한양 도성 순성 길을 걸었다. 순성 놀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았다.


“순성(巡城)이란 서울 성곽을 따라 걸으며 도성 안팎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에 순성은 아주 재미있는 놀이에 속했다. 조선의 유본예(1777-1842)는 <한강 지락>에서 봄과 가을에 한양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성곽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성 안팎의 경치를 구경한다고 썼다. 이를 통해 순성이 예부터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곽을 따라 걷는 길은 단순한 트레킹이 아니다. 서울 성곽을 따라 걷는 것은 오랜 옛날부터 유구히 흘러온 시간의 퇴적층을 밟는다는 의미가 있다.”(순성의 즐거움, 효형 출판, 이도형, 2010)


옛날 선조들이 걸었던 성곽을 따라 걸었다. 걸으며 한 가지 의구심이 생긴다. 선조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이 길을 걸었을까? 길을 걷기 편하게 정비해 놓은 요즘에도 그 길을 하루에 걷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오전 9시에 출발해서 오후 4시 반경 마쳤다. 총 7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휴대전화에 설치된 ‘걷기 앱’에 나온 거리는 약 21km. 빠른 속도 걸었고 간단한 점심을 먹었다. 아주 짧은 휴식 시간에 물이나 간식 정도만 먹고 계속 걷기만 했다. 등산화와 걷기 편한 복장을 하고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해 온 걷기 동호회 정예 멤버들이 걷는데도 하루 종일 걸린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어떤 모습으로 이 길을 걸었을까? 모두 축지법을 쓰며 날아다니듯이 걸었을까? 그것도 한복을 입고, 삿갓을 쓰고, 짚신을 신고서? 산길도 지금보다 많이 험했을 것이다. 중간 중간 쉬면서 한 잔씩 마시고 여유롭게 걸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말에는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걸어서는 순성 놀이를 하루에 마치기가 쉽지 않다. 아마 도중하차했다면 놀고, 마시고, 유유자적하게 걸으며 소풍처럼 다녀올 수 있었을 것이다. 물은 계곡물을 마실 수 있었으니 갈증은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배고픔은 어떻게 달랬을까? 주먹밥을 뒷짐에 지고 걸었을까? 아니면 종들이 음식물을 미리 들고 올라와서 적당한 자리에 차려놓으면, 양반 자제들이 천천히 올라와서 먹고 마시고 쉬면서 걸었을까? 그 당시의 순성 놀이가 궁금하다. 어떤 방식으로 순성을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쉬지 않고 꾸준히 걷지 않는 한 하루에 마치기는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검색한 바에 의하면 장원 급제를 위한 기도의 방편으로 순성 놀이를 했다고도 한다. 순성 놀이는 단순한 소풍이나 놀이가 아닌 간절한 염원을 담은 기도였다. 불자들이 정성을 다해 탑돌이를 하듯이, 순성을 하며 마음속으로 간절한 기도를 했을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공부한 것을 암송하거나, 장원 급제를 기원하거나, 장원 급제 후 성안에 들어가서 정부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몰아내리라는 각오를 다지기도 했을 것이다. 백성들의 힘든 상황을 뼈저리게 느끼며 그들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관리가 되겠다고 마음을 다졌을 것이다.

성곽을 걷는다는 의미는 ‘안’에도 서있지 않고, ‘밖’ 에도 서있지 않은 경계를 걷는 제법 위험한 상황이다. 잠시 정신을 팔면 안팎 어디든지 떨어져 다칠 수도 있다. 경계에 서있을 때에는 확고한 자신의 방향을 결정해야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 장원 급제를 해서 성 안으로 들어가 청운의 꿈을 실현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위치에 맞는 편안한 삶을 성 밖에서 살아가거나. 그런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에게 솔직하고, 냉철한 성찰을 하고, 주위 사람들의 말을 잘 들을 수 있는 열린 귀가 있어야 한다. 또한 사람과 상황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밝은 눈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자신을 알기가 어려운 이유는 바로 ‘이기심’과 ‘욕심’ 때문이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모든 상황과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기심으로 인해 자신과 타인, 상황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기 어렵게 된다.


묘하게도 순성 놀이를 하는 오늘이 국회의원 선거일이다. 성 안에서 살고 있는 모든 의원들이 자신의 이기심을 내려놓고 국민들을 위한 의정 활동에 전념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성 밖에서 살아가는 나는 길을 걸으며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로부터 빨리 벗어나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답답함을 조금만 더 참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좀 더 잘 지켜서 우리 모두 행복한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순성 놀이 같은 건강한 놀이를 통해 각자 자체 면역력을 키워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홀로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한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홀로 살아가는 방법도 배우고, 걸으며 성찰을 통한 내면의 힘과 건강을 유지하며 신체적, 심리적 면역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산성.bmp


keyword
이전 15화드레스 코드: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