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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락 이강휘 Oct 15. 2020

셋째 형은 어디로 갔을까 上

수록시: <감자먹는 사람들>, 정진규/ <고향길>, 신경림

“이봐, 완승 군. 이 그림 어떤가?”


사무소 문을 열자마자 선생님이 물었다. B시에 강연을 다녀온 그의 두 손에는 큰 액자가 들려 있었다. 나는 액자를 받아들며 그림의 출처를 물었다.


“모조품이네.”


당연히 모조품이겠지요.


“그런데 선생님. 우리 사무소에는 그림을 걸어 둘만한 공간이 없는데요.”

“아, 그런가? 이거 곤란하군.”

“충동구매하신 것 같군요.”

“역 앞에서 3만원에 팔고 있지 뭔가. 맙소사, 무려 고흐 그림을 말이야. 안 살 수가 없었네.”


선생님은 마치 진품을 산 것인 양 어깨를 으쓱했다.


“일단 여기 두도록 하지. 걸어둘 공간이야 차차 생각하고 말이야.”

“네, 그건 그렇고. 이 그림은 무슨…?”

“감자 먹는 사람들이네. 고흐의 초기 작품이지. 네덜란드 농촌의 빈곤한 풍경을 그린 거야.”

“그래서 전체적으로 어두운 거군요.”

“그렇지, 왼쪽에 있는 부부의 손을 자세히 보게. 농사로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저 손으로 자식을 키워냈을 테지. 저들의 어둡고 침울한 내면을 어두운 색감으로 드러냈을 거란 말일세. 이런 명작을 마땅히 걸 데가 없다니 아쉽군.”


선생님은 액자를 응접실 테이블 옆쪽에 세워두고서는 그런 명작을 아무렇게나 두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듯 안타깝게 바라봤다. 진짜 진품을 사고서는 모조품이라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만큼. 그때였다.


“우라질!”


바깥에서 큰 소리로 욕설이 들렸다.


“네 놈이 입을 닫고 있는 바람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형님이랑은 말을 못한다니까요. 어차피 화만 내시잖아요.”

“제기랄, 네가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니까 그렇지. 그놈이 어디 있는지만 말하면 되는 거 아냐! 이 판국에 시는 무슨 시야!”

“그러니까 여길 온 거 아닙니까? 일단 들어가요.”


한껏 상기된 두 남자의 대화가 닫힌 사무소 문을 뚫고 우리 앞에 다다랐다. 나보다 조금 더 입구에 가까웠던 선생님이 직접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신지요?”

“여기가 뭐시냐, 시 탐정사무손가 하는 데가 맞소?”


키는 크지 않으나 큰 덩치, 넓적한 얼굴에 부리부리한 눈망울의 남자가 무례한 말투로 선생님에게 물었다. 정돈되지 않은 턱수염이 제법 쇤 걸로 봐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보였다. 그는 화가 나 있는 듯했고 그래서인지 가뜩이나 험상궂은 인상이 더 두드러졌다.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출입문 위쪽에 걸린 현판을 가리켰다. 그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형님이 화를 내셔서 덩달아 목소리가 커졌나봅니다. 탐정님이신가요?”

“그렇습니다만, 볼일이 있으시다면 일단 들어와서 말씀하시지요.”


거듭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남자는 덩치 사내와 함께 사무소로 들어왔다. 그는 형님이라 부르는 자보다 적어도 20살은 젊어 보여 부자간이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듯했다. 덩치 사내보다는 덩치가 작고 호리호리한 몸매였으나 키는 더 크고 어깨가 넓었다. 덩치 사내는 사무소에 들어와서도 연신 투덜거리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여기까지 와야 하냔 말이다.”

“무슨 일이신가요?”

“이놈아, 네놈만 입을 열면 되는 거야. 남들 앞에서 이게 무슨 망신이냐?”

“형님이야 말로 잠자코 있으세요. 말도 제대로 못하게 하면서 무슨 말을 듣겠다고…….”

“뭐야? 이 자식이 보자보자하니까.”


덩치 사내는 당장이라도 동생을 때릴 듯이 손을 올렸다. 나는 참다못해 소리를 질렀다.


“남의 사무소에 와서 이게 무슨 행팹니까?”


그 말에 덩치 사내는 손을 내렸다. 하지만 분은 풀리지 않은 듯 팔짱을 낀 채 동생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선생님은 눈짓으로, 씩씩거리고 있는 나를 말렸다. 선생님만 아니었으면 경찰에 신고라도 해서 쫓아냈을 지도 모른다.


“두 분께 실례를 범했습니다. 저희 형님이 워낙 다혈질이시라, 게다가 안 좋은 일도 있고요.”


동생의 말에 덩치 사내가 헛기침을 했다. 이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고 계시던 선생님이 말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었네요. 괜찮으십니까?”

“이 정도 일은 늘 있는 일이라 저는 괜찮습니다만 저야 말로 죄송합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흥분한 덩치 사내와 달리 그의 표정은 차분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덩치 사내의 과격한 행동에 꽤 익숙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앉으라는 선생님의 말에 둘 다 소파에는 앉았으나 덩치 사내는 화가 덜 풀린 듯 팔짱을 낀 채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탐정님께 의뢰할 일이 있어 왔습니다. 며칠 전 저희 셋째 형님이 사라졌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요. 아, 저 분은 제 큰형님입니다. 저는 막내이고요. 4형제입니다.”

“네놈은 알고 있잖아. 그 놈이 어디 있는지.”


또 덩치 사내가 끼어들었다. 그의 무례함에 다시 화가 났지만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선생님의 감정 조절 능력은 도저히 따라 갈 수 없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저 녀석은 알고 있어요. 그 놈이 어디 있는지. 나만 모르는 얘기를 둘이서는 곧잘 했으니까, 분명 그놈이 제 동생한테는 말을 했을 거란 말이요.”


선생님은 젊은 사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닙니다. 제가 알고 있는 건 셋째 형이 최근에 봤던 시밖에는 없습니다. 저에게 읽어주고는 이 시가 어떻냐고 물어봤었죠. 괜찮은 시 같았지만 워낙 시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놔서요. 그냥 괜찮은 거 같다고 말했더니 무슨 반응이 그리 싱겁냐고 말했어요. 제가 아는 건 그 정도입니다.”

“뼈 빠지게 일해서 공부시켜놨더니, 뭐? 시? 내 참.”


맥락도 없이 툭툭 끼어드는 무례함이 계속 거슬렸다. 


“진정하시고요. 그 시가 중요한 단서가 될 거 같습니다.”

“응? 지금 뭐라고 하셨소?”

“셋째 동생분이 막내 분께 읽어주었다는 시. 그 시가 이 사건을 해결하는 키입니다.”

“나참,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그깟 시가 무슨 단서가 된단 말이요? 

“조금 지켜보시죠. 아, 완승 군. 차 좀 부탁하네.”


덩치 사내의 무례함을 신경이 쓰느라 의뢰인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마저도 잊고 있었다. 그를 위해 차를 내어오는 게 영 내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의뢰인을 손님처럼 대접한다는 선생님의 철칙을 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나저나 방금 하신 말씀, 좀 자세히 해주시겠습니까?”

“무슨 말?”

“공부시켜놨다는 말말입니다.”

“자세하게 하고자시고도 없소. 들은 대로 그 놈이 4형제 중에 유일하게 먹물 좀 먹은 놈이요. 내가 다 공부시켰다고. 근데 이 놈이 이렇게 말도 없이 사라지니, 이거야 원.”

“그렇군요. 그 내용은 나중에 듣도록 하고, 음…….성함이?”


선생님은 젊은 사내를 보며 말했다.


“유성한입니다. 형님 이름은 유배한이고요. 셋째 형 이름은 유계한입니다.”

“네, 유성한 씨. 유계한 씨가 보여주신 시. 제목을 기억하십니까?”

“그게...기억이 잘...감잔가 고구만가 그랬던 거 같은데…….”


그는 먼 곳을 바라보며 관자놀이를 긁적거렸다. 기억을 해내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이었으나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잠시 후 그가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 ‘아!’하는 소리를 냈다. 그의 시선은 테이블 옆에 세워진 그림에 가있었다.


“감자였어요. 감자를 먹는...뭐 그런 거였어요. 저 그림...저 그림 같은 거요.”

“「감자 먹는 사람들」이군요.”


선생님은 나를 보면서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저 그림을 사온 게 괜한 일은 아니었나보군. 그렇지 않나, 완승 군?”

“정말 그렇군요.”

“미안하네만 시집 좀 찾아봐주게. 정진규 시인의 『도화 아래 잠들다』라는 시집이라네. 왼쪽 두 번째에 다섯 번째 칸 즈음에 있을 거야.”


- 中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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