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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락 이강휘 Oct 15. 2020

셋째 형은 어디로 갔을까 中

수록시: <감자먹는 사람들>, 정진규/<고향길>, 신경림

선생님이 시집을 찾아오게 하는 방식이 신기했는지 덩치 사내(이름을 들었으나 태도가 괘씸하여 이름을 말하기가 싫다.)가 반응을 보였다.


“저 많은 시집이 모두 선생 꺼요?”

“오,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새 보셨군요.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뭐, 내 직업이니까. 시 제목만 들어도 그 시집을 찾을 수가 있는 거요?”

“뭐, 제 직업이니까요.”

“껄껄, 재밌는 양반이시구먼. 이 녀석이 시 탐정이라고 하기에 뭐하는 양반인가 했더니 완전 전문가이시구려.”

“그러니까 형님, 대단한 분이시라니까.”

“아, 그러니까 지금 얘기하고 있잖아. 암튼 남의 일터에 와서 소란을 떨어 미안하게 됐소.” 


덩치 사내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져 있었다. 그는 제목을 듣자마자 시집을 찾아내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신뢰를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시집을 찾아 자리로 돌아왔다.


“「감자 먹는 사람들 - 삽질소리」네. 찾으면 낭독해 주겠나?”


나는 시를 훑어보며 분위기를 느껴야했다. 그림처럼 어둡고 습한 분위기. 그렇지만 왠지 지나치게 암담하게 읽고 싶지는 않았는데 아마 마지막 부분에 있는 ‘부드러운’이라는 시어 때문일 것이다.


감자 먹는 사람들 - 삽질소리


우리들도 그렇게 둘러앉아

삶은 감자를 먹던 때가 있었다

불빛 흐린

언제나 불빛 흐린

저녁 식탁이

누구의 손 하나가 잘못 놓여도

삐걱거렸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셋째 형만이

언제고 떠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잘 삶아진 굵은 감자알들처럼

마디 굵은 우리 식구들의 손처럼

서걱서걱 흙을 파고 나가는

삽질 소리들을 꿈속에서도 들었다

누구나 삽질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새벽에는

빗줄기가 조금 창문을 두드렸다

제일 부드러웠다

새싹들이 돋고 있으리라 믿었다

오늘은 하루쯤 쉬어도 되리라

식구들은

목욕탕엘 가고 싶었다


“맞습니다. 이 시에요. 셋째 형님도 이 시를 읽어줬죠.”

“안타까운 얘기부터 해야겠군요.”

“뭡니까?”


덩치 사내가 물었다.


“이 시만 가지고 셋째 분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른 단서가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분이 떠났을 때의 마음은 알 수는 있을 거 같습니다.”

“흥, 지긋지긋하게 가난한 집구석 보기 싫어서 떠난 게지, 뭐. 나약한 자식.”

“아직 동생 분을 잘 모르시는군요.”

“뭔 소리요? 내가 지금껏 동생 놈들 뒷바라지하며 살았소. 내가 이놈들 부모요, 부모. 자식 마음 모르는 부모 본 적 있소?”

“부모라고 해서 자식 마음 다 아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선생님의 말에 덩치 사내가 입을 다물었다. 딱히 반박할 만한 말을 찾지 못한 듯했다.


“탐정님, 부탁드립니다. 형님이 왜 떠났는지라도 알면 찾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1행과 2행을 보면 화자는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생활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밥 대신에 ‘삶은 감자’를 먹었다는 걸 보면 말이지요. 그리고 그런 상황 때문에 암울해하고 있는 것도 발견됩니다. ‘불빛 흐린’이 그 증거입니다.”

“쳇, 내 말이 맞잖소. 가난 때문에 떠난 거라니까. 선생을 못 믿는 게 아니라 정황이 그렇잖아, 정황이.”

“아, 가만히 좀 들어봐요. 탐정님, 계속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덩치 사내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분위기도 심상치 않군요. ‘누구의 손 하나가 잘못 놓여도/ 삐걱거렸다’를 보면 위태위태한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형님이 상당히 엄하게 동생 분들을 키우셨군요. 식사자리에서 동생들을 혼내기도 하셨나봅니다.”

“그랬지. 어쩔 수 없잖소. 선생은 형제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4형제요. 3명의 남동생을 키우려면 가장이 중심을 잡고 딱 버티고 있어야지. 그러니 엄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나저나 시만 보고 그런 걸 알아내다니, 좀 신기하긴 하구만.”

“어떤 시가 누군가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시에 그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덩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파에 기대어 있는 몸을 조금 일으켜 허리를 세웠다. 선생님의 시 추리에 조금씩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많이 엄했습니다. 큰형님은 형제끼리 싸우는 것, 특히 먹는 걸로 싸우는 걸 극히 싫어했어요. 적은 음식이라도 꼭 나눠먹기를 바랐죠. 하지만 어릴 땐데 그게 되나요. 거의 매일 혼났습니다. 그 덕에 우리끼리 우애는 좋은 편입니다. 큰형님과는 좀 어렵지만요.”

“뭐가 어렵다고 그래? 좀 컸다고 말끝마다 따박따박 대꾸나 하고 말이야.”


덩치 사내는 큰 소리로 동생을 타박했지만 그것은 동생에게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인정을 받은 것을 겸연쩍어 하는 반응인 듯했다. 


“아마 이 부분이 동생 분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겁니다. ‘다만 셋째 형만이/ 언제고 떠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거 봐. 그럴 줄 알았어.”


동생이 이제 말하기도 지쳤다는 듯, 아무 말 없이 덩치 사내의 허벅지를 잡자 그가 입을 다물었다.


“집을 떠나려고 생각을 했던 건 맞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가 왜 떠났냐는 거지요. 그는 인식했던 것 같습니다, 가난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걸 말지요. ‘누구나 삽질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고난 사람들이었다.’가 그 증거입니다. ‘삽질’은 육체노동을 말합니다. 이를 근거로 볼 때, 식구들이 모두 육체노동을 하는 걸로 보입니다. 큰형님께서는 건축이나 인테리어 쪽 일을 하시겠죠? 나머지 동생 분들도 그쪽 일을 하실 테고요.”

“아니, 그건 어떻게 알았소? 뭐로 먹고 산다는 얘기는 안 했던 거 같은데?”

“처음 여기에 앉으실 때 말씀하셨습니다.”

“응? 언제 말이요?”

“제가 들어오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집이 꽂혀 있는 책장을 보셨냐며 놀라자 유배한 씨께서 직업이 그쪽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게다가 두 분 다 그을린 피부도 그렇고, 발달된 팔 근육이나 굵은 손가락 마디를 보고 그쪽 일을 하실 거라 추측한 것일 뿐입니다. 큰형님의 영향으로 동생분도 그쪽 일을 하실 테고요.”

“야, 이거 진짜 보통 분이 아니시구먼!”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계속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합시다.”


거칠었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그는 이제는 완전히 선생님을 신뢰하게 된 것 같았다.


“화자는 희망을 버리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새싹들이 돋고 있으리라 믿’었죠. 하늘에서는 비가 옵니다. 비가 오면 일을 못하지요. 그러면 선생님은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습니까?”

“화가 나겠죠. 일을 못하면 돈을 못 버니까 말이요.”

“보통은 그렇겠죠. 하지만 화자는 그걸 휴식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하루쯤 쉬어도 되리라.’가 이 판단의 증거입니다. 그는 비를 유배한 씨처럼 부정적인 대상으로 생각한 게 아니라 새싹, 그러니까 희망을 키우는 단비로 여겼다고 볼 수 있지요. ‘식구들은/ 목욕탕에 가고 싶었다’ 이 부분을 보면 식구들에게 휴식을 주고 싶어 하는 화자의 마음이 보입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의 ‘그러니까!’ 소리에 두 사내의 눈이 동시에 선생님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는 식구들이 지친 걸 알고 있었습니다. ‘식구들은 목욕탕엘 가고 싶었다’가 그 증거입니다. 유계한 씨는 식구들에게 휴식을 주고 싶었을 거라고 판단됩니다. 이게 그가 식구들을 떠난 이유입니다.”

“탐정님,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좀 혼란스러워서요.”

“아까 유배한 씨께서 형제 중 유일하게 유계한 씨만 공부를 시켰다고 하셨지요. 나머지 분들은 뒷바라지를 하셨을 테고. 아마 그는 그런 식구들의 노고에 죄책감이나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던 걸로 판단됩니다. 흔히 ‘목욕탕’은 피로는 풀러 가는 곳이죠. ‘목욕탕엘 가고 싶었다’는 식구들이 피로를 풀고 싶어 할 만큼 지쳐 있다는 걸 그가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오늘은 하루쯤 쉬어도 되리라’ 이건 이제부터 자신이 여러분들을 쉬게 하겠다는 말로 들립니다. 이제 자신이 나서야한다고 생각한 거지요. 정리하면, 유계한 씨는 경제활동에 나선 거로 보입니다. 식구를 위해서 말이지요.”


나란히 앉은 두 사내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덩치 사내는 팔짱을 낀 채 바닥을 보고 있었고, 유경한 씨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빌어먹을 놈. 누가 저보고 돈 벌어 오랬나…….”


덩치 사내는 혼자 중얼거린 후 말했다.


“선생님 말이 맞소. 우리 중에 셋째 놈이 제일 똑똑했지. 나야 뭐 애초에 공부에 담을 쌓은 놈이고 둘째 놈은 나를 따라 저도 돈을 벌겠다고 고등학생 때부터 일찌감치 건축 일을 배우기 시작했지. 근데 셋째 놈은 머리가 좋았어요. 공부를 곧잘 했지. 상도 많이 받아오고. 그래서 형님들이 돈을 벌 테니 공부를 계속 하라고 했수다. 뭐, 저도 우리 따라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우리가 말렸어. 우리 중에 적어도 한 놈은 배운 놈이 있어야 한다고 했어요. 나중에 더 많이 벌어서 우리들 먹여 살리라고 했지. 그 고집 센 놈이 그 말을 듣더니 그나마 수긍을 하더라고.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했어요. S대에 들어갈 정도는 됐는데 장학금 때문에 지방사립대에 갔어.”

“그런데, 졸업하고 나서도 취직이 안 됐어요. 4년 장학생이라고 해도 지방대는 취직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괴로워하는 걸 많이 봤어요. 그래서 저도 기술을 배우는 쪽으로 생각하게 된 거구요. 형제들한테는 힘든 티를 안 냈지만, 그래도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 공부를 더 하고 싶어도 대학원에 갈 형편은 안 되고, 그렇다고 취직도 안 되고 그러니 힘들었겠죠. 큰형님, 둘째형님이 장가도 못 가고 자기 뒷바라지한다고 항상 미안해했어요.”

“쓸데없는 생각을…”

“그랬군요. 여러분들 말씀을 들으니 경제적 상황을 바꿔보려 집을 떠난 게 더 확실해 보입니다. 하지만 큰형님께서 추측하신 이유는 아닌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요. 큰 오해를 한 거 같소. 나는 이 놈이 집구석이 지긋지긋해서 도망친 걸로만 알았거든.”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셋째 형이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거야, 형편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게 사람이니까. 그런 걸 한두 번 봐왔어야 말이지.”

“세상 살다보면 그런 일이 많이 겪게 되지요.”

“노가다 경력만 30년이요. 그간에 남 뒤통수치는 인간들 지긋지긋하게 봐왔수다. 그래도…… 동생 놈은 믿었어야 했나봅니다. 우리 책임지라는 것도 그냥 공부하라고 한 말인데, 그걸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미련한 놈. 괜히 사람 미안하게.”


덩치 사내는 천장 쪽으로 고개를 들어 큰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젊은 사내는 형님의 허벅지를 툭툭 치고 난 후(내가 본 것 중 가장 무뚝뚝한 위로였다.), 선생님께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어떻게든 연락이 오겠지요. 아무 말 없이 떠난 걸 보면 당분간 자신을 찾지 말라는 메시지를 준 걸 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동생 분께 시로 왜 자신이 떠났는지에 대한 단서를 주기도 했지 않습니까? 뭔가를 해내겠다는 의지를 가진 분이니 기다려주시는 게 어떨까요?”


나란히 앉은 두 사내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사무소를 나가기 전 젊은 사내가 의뢰비를 물었으나 선생님은 동생을 찾으면 그때 달라며 거절했다. 덩치 사내가 그런 법이 어딨나며 막무가내로 의뢰비를 지불하려 했으나 선생님의 단호한 태도에 눌린 듯했다.(어쩌면 의뢰비가 꽤 비싼 편이라는 말이 그의 고집을 꺾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 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그렇게 소란스러웠던 형제는 돌아갔다.


- 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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