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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l 15. 2016

역설의도

집으로 돌아온 나는 큰 대학 병원에서 공황장애로 진단을 받고, 치료는 집 근처 정신과에서 받았다. 창원 쪽 병원을 몇 군데 가봤으나 약을 처방하는 것 말고는 다른 치료는 없었다.


엄마는 많이 속상해하셨다. 내가 고등학생 이후로 공부 안 할 때부터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은 했을 것이지만 이런 병이 있는 줄은 몰랐을 것이다. 엄마는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고 이것이 나중에 기록에 남아서 내가 사회생활 할 때 장애가 될까봐 걱정하셨다. (실제로 공황장애에 대한 병원 진료기록은 사회생활과 아무 상관이 없다.)


병무청에서는 6개월간 진료기록을 가져오면 그 당시 4급(공익근무요원에 해당)을 줄 것이고, 1년 이상의 진료 기록을 가져오면 5급(군 면제)을 준다고 하였다. 몇 년간 공황으로 많이 힘들어한데다 병원비가 비싼 것도 아니어서 장기간 병원 다니는 데에 큰 무리는 없었다. 4급을 받을지 5급을 받을지는 나의 선택에 가까웠다.


엄마는 내게 6개월 치료받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길 원했다. 군 면제를 하면 사람들 시선도 좋지 안을 것이고, 정말로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이해하고 엄마 말에 따랐다.


나는 6개월 동안 약을 정말 열심히 먹었다. 그땐 하루에 한번 씩 꼬박 꼬박 약을 챙겨먹었고 일주일에 한번은 병원을 갔다. 그렇게 열심히 약을 먹은 이유는 6개월간 진료 기록을 병무청에 내야하는 과정에서, 혹시 내가 약을 게을리 먹으면 재검에서 현역판정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의사 선생님이 내 병이 완전히 나았다고 판단할까봐, 그래서 병원 오지 말라고 할가봐 그것도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6개월 동안 내 몸이 더 악화되기를 바랐다. 공황이 더 더 심하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내 간절한 바램에도 내 상태는 오히려 더 호전되었다.



정신의학자 빅터프랭클은 ‘역설의도’ 기법으로 자신의 환자들을 치료했다. 손에 다한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지금 손에서 땀을 내어보라’고 다독였고, 말을 더듬는 사람에게는 말을 더 심하게 더듬어보라고 지시했고, 긴장을 하여 글씨를 삐뚤삐뚤 적는 사람에게는 글씨를 최대한 삐딱하게 써보라고 지시했고, 불면증이 있는 사람에겐 아예 밤을 새우라고 숙제를 내줬다. 환자들은 빅터프랭클이 내 준 숙제를 하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했고,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들의 의도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증상이 호전되었다.


엉뚱하게 보이는 이 치료법은 왜 성공했을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 증상에는 분명히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 목적은 사람들이 그 증상을 피하고 두려워함으로써 최대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고통스러워야지만, 그제야 자신 주변의 문제를 인식하기 시작하고 스트레스 상황도 고치려고 노력을 한다. 사람들의 무의식 한편에선느 그 고통을 진심으로 원하고 있다.


우리가 공황이나 우울증을 피하고 두려워해야지 우리는 고통을 느낀다. 우리가 그 증상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바라고, 증상이 악화되기를 원한다면(그것이 조작이더라도) 그것은 더 이상이 고통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 고통이 되지 않는 공황, 우울증, 다한증, 말더듬, 불면증은 어떤 면(가령 프로이트가 말하는 파괴본능)에서는 시시하고 별 재미가 없다. 그래서 그 증상들은 쉽게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6개월 간의 진료기록을 병무청에 제출했고 4급을 받은 후 동사무소에서 사회복지요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내가 6개월간 약을 열심히 먹은 덕분인지, 역설의도 기법으로 심리치료를 한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1년 반 동안은 내 마음이 아주 건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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