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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Oct 02. 2016

만화처럼 웃자

나는 공황이 있다는 사실을 가족과 친한 친구 몇 명을 제외하고는 사람들에게 거의 말하지 않았다. 내가 정신과 다니는 것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공황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그래서 공황을 애써 숨기고 마음이 건강한 사람처럼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가끔 그런 무모함이 더 큰 공황을 가져오기도 하였다.


인지행동치료 프로그램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부 나처럼 공황을 힘들어하고 있었고 그 상태도 심각했다. 우리는 같이 밥을 먹기도 했는데 대화의 시작과 끝은 온통 ‘공황’ 이야기뿐이었다. 우리는 이미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서로 알고 있었기에 공황을 감출 필요도 없었다. 분위기도 심각하지 않았다. 사실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사람들은 웃으면서 자신의 공황을 이야기하였다. 그랬더니 공황을 꾹꾹 감췄을 때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공황이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는 이 장면이 만화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예전에 '뽀로로' 만화 영화를 보다가 한 장면이 떠올랐다. 만화에서는 내레이션으로 ‘그 꼬마 친구들이 낚시를 갔다가 풍랑을 만나서 배가 전복되고 의식을 잃어버렸는데, 일어나 보니 무인도였습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었다. 그 친구들이 깨어나서 대수롭지 않은 듯 대화를 이어가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기절초풍할 일인가? 만화라는 장르의 특성 때문에 그 장면을 시청하는 우리들도 꼬마들이 목숨을 잃을 뻔한 사건을 큰 일이 아닌 듯 여기고 그냥 웃으면서 보았을 것이다.


2001년 9.11테러 이후, 이 날의 사고로 많은 사람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공황과 증상이 비슷하다.) 그 현장에 있었거나 가까이서 테러를 목격한 이들에겐 그 사고가 평생 잊히기 힘든 큰 외상이었다.


대학교 때 사회복지 수업 중에 그들이 심리 치료를 받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는데 대충 이랬다. 5~10명 짝을 지어 앉아서 그때의 일을 그냥 웃으면서 만화처럼 이야기 하는 것이었다. 난 '저게 뭐 하는 거지?' 궁금했다. 한 사회복지사가 해설하는데, 저것은 하나의 큰 ‘트라우마’를 단순한 ‘에피소드’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저런 작업을 반복하면, 사고를 겪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들이 겪은 심각한 사고가 그저 대수로울 것 없는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하다고 인식하게 된다고 하였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사회의 많은 아픔을 웃음의 소재로 쓰는 것처럼, 그런 개그엔 유난히 더 웃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직면한 끔찍한 현실을 개그 소재나 만화와 같이 여긴다면 삶을 살기가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공황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것을 감추지 말고 만화 보듯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크게 웃어버릴 수 있다면, 그런 착시현상 속에서 진짜 힘든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러니 다들 힘들어도 웃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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