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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새 Jun 06. 2017

무의식이 원하는 대로

(친구와 커피숍에서 대화하며 느낀 것 정리. 친구와 말하면 좋은 점= 평소 내가 했던 생각을 말하면서 그 내용을 정리도 할 수 있다는 것)




중 3때였다. 밤에 자다가 배(위)가 아파서 깼다. 밤 늦게 먹은 음식이 소화가 잘 안 된 것 같다. 혹시 위암이 아닐까봐 덜컥 겁이 났다. 며칠 전 tv에서 우연히 ‘접시 꽃 당신’(주인공이 위암으로 죽는다)이란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그것만 생각했다. 불행히도 그 다음 날 밤에도 배가 아파왔다. 그 다음 날에도. 나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밥도 잘 못 먹었다. 겁이 나서 병원에도 못 갔다. 내 비합리적이고 지나친 걱정이 그 증상을 키운 것이었다.



그 증상이 사라진 것은 여름방학을 하고 나서부터였다. 학기 중엔 학교 마치고 밤 11시까지 학원공부(당시 연합고사 시절)를 해야했다. 나는 소수정예반이었다. 공부만 해야 했다. 집에서 시켜서 공부를 한 것도 있지만, 솔직히 1등 하고 싶은 내 욕심도 있었다. 그때 너무 시달린 탓일까? 아님 정말 놀고 싶었던 탓일까? 방학이 되고 친구들과 놀 시간이 많아졌다. 야구하고, 농구하고, 구슬치기 할 때는 그 순간에만 몰입했다. 배가 아픈 것 따위는 out of 안중이었다.



모든 증상(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 강박증 등등)은 이렇게 없어지는 것 같다. 자기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는 어떤 걱정, 강박도 다 사라진다. 죽음도 없다. 그저 이 순간의 행복만 있을 뿐이다. 16살 그 나이에 그저 친구들과 뛰어 놀고 싶었던 것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의 저자 모건 스캇 펙(정신과 의사)은 우리 무의식이 시키는 대로 행동해야 행복해진다고 한다. 그는 무의식이 신의 메시지이자 은총이라고 까지 한다. 칼융의 집단 무의식(태어나기도 전부터 생긴 무의식)을 그 근거로 삼는다. 그가 말하는 무의식은 단순한 성적욕망이나 파괴본능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 그것은 올바른 길이며, ‘성장’을 향해 있다고 한다. (그의 책은 뒤로 갈수로 추상적이다.)



책의 첫 문장은 ‘삶은 고해(苦海)다’이다. 삶은 원래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작가는 (정신과 상담사 경험을 통해) 우리가 마땅히 겪어야 할 고통을 피하는데서 모든 증상이 생긴다고 말한다. 무의식은 계속해서 어떤 메시지(~ 하고 싶다 or 다 때려치우고 싶다)를 주는데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 따위를 포기하는 것 or 내 의견을 과감히 말할 수 있는 용기 등)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 고통은 치과에서 신경치료 받기 싫어서 충치를 방치하는 것과 같다. 피하면 나중에 더 큰 고통으로 찾아온다.



(집 근처에 이런 데가 있다. 이 글은 여기서 썼다)




전 여친이 내게 탕수육 세트를 시켰다고 구박한 적이 있다. 왜 다 먹지도 못할 걸 시키냐고. 나는 마음이 아파서 담부터 죽을 각오로 음식을 다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노력들은 다 소용없었다. 결국 우리는 헤어졌다. 이미 그녀는 마음이 떠났었다. 불안, 우울과 같은 증상에 집착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쁜 생각이 들거나 불면증(증상)이 심해도 그것 자체를 해결하려는 것은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야 한다. 정신분석자들이 인지행동치료를 비판하는 근거도 바로 이런 것이다.



그 문제는 우리의 정체성과 이어진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무의식이 원하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그것이 무엇일까? 스스로 답을 찾기 힘들면 타인과 함께 찾아야 한다. 한 가지의 믿음은 필요하다. 정체성을 찾으면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는 마법처럼 사라질 것이란 것을.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아무 것도 확신하지 못한다. 지금은 눈앞의 이 사람에게 아무 감정이 없지만 2일 뒤에는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일단 지켜보기로 한다. 또한 지금은 이 사람이 사랑스럽지만 결국 세르토닌도 2년 뒤에는 멈출 것을 안다. 그래서 적당히 잘해주기로 한다. 이처럼 나의 감정을 관조할 수 있는, 입체적이고 분별력 있는 태도가 나를 더 건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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