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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코치 Young Oct 24. 2021

엄마라는 자리, 행복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성장하는 딸과의 진짜 소통법

  해마다 5월 셋째 주 월요일은 ‘성년의 날’이다. 만 20살이 되면 공식적으로 ‘어른’으로 인정을 받는 날이다. 인터넷으로 ‘성년의 날’을 검색해 보면 어떤 선물을 할지 고민하는 글과 여자는 장미꽃, 향수, 키스를 받는다고 하고, 남자는 보통 시계 선물을 해준다는 글을 보았다. 그러나 성년의 날을 검색했을 때, 어른이 되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진정한 어른은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하며 모든 일을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과연 나는 만 20살이었을 때 내가 한 일에 스스로 책임질 줄 알았던가?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되어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보게 된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책에서는 유대인들의 자녀를 위해 치러주는 성인식은 인터넷에서 검색과 의미가 달랐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자녀가 13세가 되면 성인식을 치른다. 성인식은 결혼식처럼 일가친지와 친구 등 많은 사람이 모여서 축하를 해준다. 그 자리에서 13살이 된 아이는 자신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공부한 내용을 참석자들 앞에서 발표를 한다. 아이는 1년 전부터 정성을 다해 발표문을 준비한다. 그렇게 성년식을 마치면 연회장이나 대형 식당을 빌려 결혼식 피로연과 비슷한 축하모임을 갖는다. 이때 참석자들은 현금으로 부조를 한다. 뉴욕의 직장인이라면 대개 200달러 정도를 낸다. 축하객 100명이 왔다고 하면 2만 달러의 큰 자산이 모이는 셈이다. 부모는 이 날 들어온 돈을 예금하거나 채권을 사서 묻어뒀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자녀에게 준다. 이처럼 유대인 청년들은 쌈짓돈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때문에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창업 등 다양한 진로를 모색할 수 있다.  



  유대인이 아이들의 성년식을 빨리 치르는 이유는 일찍부터 아이의 독립심을 키우기 위해서다. 유대인은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모든 것을 독립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 바로 이 시기에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인격체로서의 책임의식을 느끼도록 성년의식을 치르는 것이다. 




  모든 부모는 아이가 행복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러나 행복하게 키우는 것과 편안하게 키우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아이를 나이에 맞춰 책임질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려면 편안하게 키워서만은 되지 않는다. 신문기사에 보면 가끔씩 캥거루족, 헬리콥터 맘 등의 신종 어휘를 볼 수 있다. 아이가 자라 성인이 되어 나이가 30세, 40세가 되어도 부모가 옆에서 성인이 된 자녀를 돌보는 현상을 일컬어 생긴 말이다. 아이가 어려서부터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한 대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해 보지 않는다면 실패를 하며 성장하는 기쁨조차 알 수 없는 아이로 커간다. 결국 어른이 되어도 조그만 일에 상처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북큐레이터 일을 시작하며 다양한 환경에서 자란 부모들을 만나며 느낀 점이 많았다. 부모님 세대에서 원하던 대로 공부를 못 했던 만큼 아쉬움이 크기에 자식들 잘 되라고 공부를 시켰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부모님들보다 공부는 더 많이 했지만 그 자녀가 자라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된 지금 개인의 만족도는 떨어진다. 심지어는 수능성적이 다른 사람에 비해 0.1%에 들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받았는데도 자신이 공부를 잘했다는 생각을 못했다는 엄마를 만나기도 했다.


  결국 아이가 부모님 세대가 못해서 아쉬웠던 공부를 열심히 하던 아니면 다른 무엇을 선택하든 처음은 오로지 아이의 선택이 있어야 한다. 유대인들이 아이를 위해 치러주는 성인식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나니 주체적으로 무엇이든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 나이에 내 아이가 스스로 고민하고 도전해 볼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말로만 전달하는 것보다 제대로 성인식의 의미를 전달해 주고 싶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도 함께 모여서 해볼까 생각도 했다. 유대인은 만 13세에 성인식을 치른다고 하니 나는 아이가 중학교 입학할 때 해줄까, 생일이 늦은 아이를 위해 중2가 되는 해에 해줄까 고민만 하다 바쁜 일상 속에 까맣게 잊어버리고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그러다 아이가 중학교를 다닌 3년이란 시간 동안 엄마로서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몇 번 있었다. 결국 중2병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문제라는 결론에 아이에게도, 또한 부모인 나에게도 어떤 계기가 필요했다. 


  어느 날, 회사에서 아침에 하는 교육준비를 하다 유대인 교육법에 대한 내용을 사례로 넣으려고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책을 다시 꺼내 보았다. 책장을 넘기다 유대인 성인식에 대한 내용이 내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그때가 아이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었을 무렵이었다.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는 새해에는 우리 가족만이라도 모여 아이만을 위한 성인식을 치러주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부모라면 유대인처럼》by 예담


  남편에게 나의 생각을 전하고 아이를 위해 편지를 써달라고 부탁을 했다. 우리 아이만을 위한 특별한 기념일 같은 느낌이 들게 해주고 싶어 엄마인 내가 어른이 되어 느낀 점에 대해 글을 써서 남편의 편지와 함께 준비했다. 파일 맨 앞장에 ‘성인식’이란 제목을 넣어 졸업장처럼 아이에게 건네주려고 챙겨 두었다. 파일의 마지막 장에는 어른이 되어 아이가 경험한 것을 스스로 채워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무것도 쓰지 않은 백지를 넣어 두었다. 그리고 유대인의 성인식처럼 여러 사람을 초청하지 않는 대신 아이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어 주었다. 작은 돈이라도 나중에 모이면 종잣돈이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고, 아이가 자라서 일을 해서 월급을 타게 되면 매달 저축하는 습관을 길렀으면 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17살이 된 아이와 설날 연휴 마지막 날,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평소에 지나다니다 눈여겨보았던 동화 속에 있을 법한 성처럼 생긴 예쁜 카페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몇 날 며칠 준비했던 편지를 읽으려고 했더니 그냥 자기가 읽겠다며 편지를 읽었다. 역시 사춘기 아이는 많이 시크했다. 별다른 감정 표현 없이 아이는 자기가 시킨 핫초코가 너무 비싸다는 말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만을 위한 성인식은 그렇게 조용히 치러졌다. 아이만을 위한 성인식을 치른 후로 지금부터 아이를 마음에서 떠나보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서인지 평소 같으면 잔소리를 할 상황도 참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사실 성인식을 치르고 1년 정도는 내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성인식을 치르기 전과 달라진 점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자신은 생각지도 않았는데 엄마 아빠가 성인식을 해준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날 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아이를 내 마음속에서 진정으로 어른으로 대하기까지 익숙해지는데 대략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감정적으로 아이를 대할 듯싶으면 꾹 참고 아이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때로는 내 방 안에서 책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아이가 감정적으로 내뱉은 말을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다. 사실 내가 아이를 사춘기 아이라고 말을 할 뿐이었지, 또래 사춘기 아이들과 비하면 그래도 아이가 스스로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일찍 정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걱정할 일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로서 아이에 대한 기대감이 부모인 나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아이 또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네 명의 자녀를 흔한 사교육 없이 모두 훌륭히 키운 저자 김준희의 《CEO아빠의 부모 수업》 책에서 부인이 동창회에 다녀온 후 쓴 일화가 생각났다. 아이들이 어릴 때 김포로 이사를 가서 살았고, 저자의 부인은 주인 없는 빈 텃밭에 농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 해본 농사일에 부인은 저녁 8시면 곪아 떨어지곤 했다. 책에는 주변에 학원 하나 제대로 없는 변두리 지역에서 아이들을 키운 내용이 소소히 담겨 있다.


《CEO아빠의 부모수업》by 나무를 심는 사람들


  아이들이 모두 자라고 어느 날 동창회 모임에 참석했더니 엄마는 하는 일 없이도 아이들이 척척 명문대에 붙었다며 부러워하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아니, 내가 왜 한 일이 없어요? 아이들에게 참견하고 싶은 것, 잔소리하고 싶은 것 꾹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집으로 돌아와 부인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걸 듣고 저자는 그 일화를 책에 옮겨 놓았는데 그 대목을 읽으며 엄마로서 그 분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정말로 네 아이의 엄마가 아무리 피곤해도 저녁 8시만 되면 잠이 들어서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까지 잠을 잘 수 있었을까? 단연코 아니었을 것이다. 네 명의 아이들이 거실에서 서로 투닥거리거나 음식을 찾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을 법도 했겠지만 아이들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했으면 하는 마음에 참고, 참고 또 참으셨을 것이다. 내가 방 안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부모의 인내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가 바로 아이의 사춘기이다.


  아이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갈 때에는 부모의 역할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야 한다. 아이가 10대가 되었을 때 부모는 아이에게 상담가 역할을 하여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단서가 달려 있다는 걸 늘 기억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원할 때만 아이에게 상담가 역할을 해야 한다. 아이가 부모의 도움을 요구할 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아이가 부모를 필요로 하는 대부분은 아이에게 밥을 줄 때와 용돈이 필요할 때다. 그래서 사춘기를 겪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는 때로 분통을 터뜨릴 때도 있다. 

‘내가 무슨 식모야? 밥 달라 그럴 때만 찾고 말이야.’




  아이는 나의 잔소리가 줄어들자 예민하게만 느껴졌던 반응 또한 점차 줄어들었다. 그리고 때로 아이의 툴툴거리는 말투에 침묵을 하고 있으면 아이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게 말을 걸어왔고 친구와 있었던 소소한 일을 말하기도 했다. 그동안 신문을 내가 일방적으로 읽어주기만 했다면 이제는 신문 헤드라인을 보고 내게 읽어 달라 부탁하기도 하고 자신의 의견을 자연스럽게 말하며 대화를 나누곤 한다.


  아이가 태어나서 36개월은 두뇌발달의 결정적 시기란 말은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 못지않게 사춘기의 두뇌발달 또한 한 사람의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생후 첫 3년 동안 두뇌 발달에 폭풍이 일어나듯이, 청소년기 동안에서 또 한 차례 폭풍이 일어난다. 뇌 속에서 어떤 부분은 연결 지점을 유지하고 또 어떤 연결지점은 폐기시킨다. 엔진은 계속 돌아가는데 운전사가 없는 상황과 똑같다. 


  요즘 가끔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출연자가 집에서 음식을 직접 만들어 편의점에 출시하는 프로그램인데, 그 중에 배우 김재원이 어린 아들과 나오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모습도 재미있지만, 어린 아들의 당당한 태도와 새로운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있게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방송에 나와서 똑 부러지게 모습을 보여주었던 그 아이가 했던 말이 있다. 아빠인 배우 김재원이 평소에  '천천히 하면 다 할 수 있다.'라고 아이에게 제일 자주 얘기를 한다고 한다. 


KBS <신상출시 편스토랑> 방송 캡처


  그렇다. 처음 하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잘할 수가 있단 말인가. 부모가 된 우리도 사춘기 시절에는 자다가 이불을 뻥 찰 정도로 부끄러운 행동과 말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의 어리숙한 행동이 어른이 되어서 크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실수를 한다는 건 그만큼 여러 번 시도를 했다는 증거이다. 무언가 해보지 않고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 잘할 수는 없다.


  부모로서 내 아이가 실패하는 시간을 지켜봐 주고 새롭게 시도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면, 아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부모가 생각한 이상으로 성숙한 태도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 또한 아이의 발달 과정을 제대로 알고 있다면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아이를 키우는데 다른 답은 있어도 틀린 답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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