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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Feb 07. 2022

무궁화

단편소설 1 화

 무궁화밭은 꽃 머리가 없다. 강바람은 누렇게 말라빠진 줄기 사이를 스친다. 건조한 목질부가 수런거린다. 온화는 턱 끝을 쳐든다. 눈꺼풀을 덮는다. 태양은 어김없이 잔상을 남긴다. 까만 눈앞에 흰 얼룩이 진다. 작년 팔월은 어땠나. 여름날 볕을 다시 그린다. 상완근에 꽃향기가 엉기던 습도였다. 뺨에 주근깨를 두어 개 그릴 광도였다. 찌를 듯 떠오른 광원 아래를 걸었다. 활짝 핀 무게를 못 이겼던가. 숙인 고개가 흐드러진 강가였다. 눈앞까지 차오른 무궁화를 스쳤다. 쉬이 웃음 터뜨린 때였다.


 망막에 겨울만 맺힌다. 저만치 경적이 들린다. 온화는 짐가방을 추스른다. 모자를 고쳐 쓴다. 하이데거를 생각한다. 현존재는 피투(被投) 된 상태랬지.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났다. 만들어진 세계 속에 던져졌다. 언제 죽을지 모를 삶을 잇는다. 남성 철학자는 스러졌다. 몸뚱이는 탄소와 질소로 나뉜 지 오래다. 분해된 혀는 언어를 쌓았다. 세기를 지나도 피부에 닿는다. 초행길 따가운 태양 아래 어리둥절한 땀방울을 닦으며. 혹은, 출근길 개화강 바람에 맺힌 공허에서.


 한 달 전이었다. 온화가 마지막 시험을 치른 지 석 밤 지난 날이었다. 철도를 따라 주름진 이불을 날랐다. 숙소에 다다랐다. 매트리스에서 젖은 수건 냄새가 났다. 화장실을 살폈다. 배수구에 머리털이 똬리를 틀었다. 고무장갑을 꼈다. 엉긴 유전정보를 뽑았다. 검정은 짧게 꼬불거렸다. 누렁은 길고 얇았다. 뚝뚝 끊겼다. 진갈색은 매끈하게 젖었다. 얽히고설켰다. 생경한 천장을 응시했다. 익숙치 않은 패턴이 시야를 채웠다. 온화는 굳은 목을 갸웃거렸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해는 초승에 서녘을 양보했다. 엉금거리며 매트리스로 기었다. 정수리 위로 손을 더듬었다. 안대를 쥐었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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