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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Feb 24. 2022

톱니

단편소설 14 화

 흔함의 연속이었다. 쌍둥이는 흔했다. 아이들 등하교는 흔했다. 학교 앞 차량은 흔했다. 후진은 흔했다. 부주의한 어른은 흔했다. 교통사고는 흔했다. 어린 죽음은 드물었다. 두 날것은 손을 맞잡고 엄마 곁을 떠났댔다. 양 약사가 살며 딱 한 번 겪을 일이었다. 어쩌면 안 겪어도 좋았을 사건이기도 했다.

 이 년 전, 양 약사는 장례를 치렀다. 그러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살았다. 출퇴근 시간은 일정했다. 분주한 아침을 보냈다. 점심을 위해 이르게 퇴근했다. 균열은 미세했다. 마음에 가느다란 금이 갔다. 양 약사는 눈치채지 못했다. 남편은 한국에 돌아왔다. 캐나다 집을 처분했다. 어린 남자 둘과 복닥거리던 한국 집에서, 나이 든 남자 하나와 데면데면했다. 아침마다 약을 먹었다. 겨울을 두 번 맞았다. 뇌는 흐르는 시간을 망각했다. 온화는 어렴풋이 깨달았다. 지금껏 이 년 전 양 약사와 대화했구나. 세월이 지나고 강산이 뒤집혀도, 양 약사 당신만은 변함없겠구나.


 사유 늪을 따라 무한히 가라앉다가도, 현실 빛은 온화를 끌어올렸다. 일상으로 상상은 무한히 가벼워졌다. 느지막이 햇살을 뿜어내는 먼지처럼. 온화는 복약대에서 부유했다. 물살 따라 아가미가 뻐끔거리듯, 자동문은 열리고 닫혔다. 송 약사였다. 조제실을 한 바퀴 돌았다. 온화에게 말을 걸었다.

 — 커피 마실 사람?

 개국을 코앞에 둔 송 약사였다. 마지막 질문일 터였다. 따뜻한 음료는 반드시 흘러서 온댔다. 찬 음료를 택했다. 한 직원은 배달 온 커피를 나눴다. 온화는 검지로 플라스틱 겉면을 훑었다. 물방울 하나 없었다. 빨대를 빨았다. 이가 덜덜 떨렸다. 고체가 든 액체를 마시기에, 날은 아직 추웠다. 한 직원은 혼잣말을 툭 던졌다.

 ― 퇴근하고 싶다.

 웅얼거림은 전염되었다. 멀리 퍼졌다. 약국 모두는 한마음이었다. 온화는 송 약사에게 질문했다.

 — 매일 이렇게 퇴근하고 싶어도 되는 걸까요?

 송 약사는 뜸 들였다. 도리어 물었다.

 ― 뭐가 문제죠? 얼마든지 퇴근을 기다릴 수 있어요. 당연하죠. 상관없어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돼요.


 혼란한 오 주였다. 퇴적을 뒤로하고 단순 업무를 맡았다. 지식과 실무 사이 괴리가 아득했다. 온화는 자신이 약국 부속품일 따름인지 궁금했다. 복약 상담실 배경 화면에 불과한지 회의했다. 시간은 의문을 풀었다. 구성원은 각 위치에서 나름대로 애썼다. 숨 막히게 바쁜 시간에도, 눈앞 업무에 소홀하지 않았다. 송 약사는 공사를 구분했다. 공은 일, 사는 가치였다. 사적 철학과 무관하게, 주어진 약업을 수행했다. 양 약사는 희미하게 거들었다.

 ―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찰음이었다. 마음속 톱니가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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