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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Feb 23. 2022

사막

단편소설 13 화

 마른 바람이 흘렀다. 잔잔한 모래가 섞였다. 온화는 낙타를 보았다. 등에 혹이 둘 달린 낙타였다. 하나는 첫째였다. 다른 하나는 둘째였다. 양 약사였다. 쌍둥이는 팔삭둥이였다. 나자마자 아팠다. 무척이나 깨끗한 침대에 누웠다. 몇 달을 보냈다. 양 약사는 말했다.

 ― 우리 애들은요. 삐용이도 많이 탔어요. 목숨이 깔딱거린 적이었죠. 그땐 저도 무서웠어요. 이제는 애들이 많이 커서요. 힘든 시절은 다 지났죠.


 양 약사는 완벽한 타인에게 아이가 아팠던 시절을 덤덤히 꺼냈다. 감정을 얹지 않고 입을 뗐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겹을 쌓았을지, 짐작할 수 없었다. 양 약사는 젊은 시절을 회상했다. 지금 남편은 캐나다에 혼자 남아 일한다, 가족 넷이서 캐나다에 살았었다, 남편과 미국에서 만났다, 석사를 따려 미국 대학원에 갔다, 국내 최고 약학대학에 진학했었다. 최근부터 옛날까지. 드문드문 읊었다. 온화는 양 약사가 졸업한 상아탑을 추앙했다. 양 약사는 쑥스러운 듯, 혹은 대수롭지 않은 듯 웃었다.

 ― 너무 오래된 일 인걸요.

 했다. 양 약사는 온화가 태어난 해에 약사 면허를 땄댔다. 짐짓 놀라는 척하며 입을 가렸다. 온화는 장갑 뒤에 숨은 입꼬리를 훔쳐보았다.

 통념에 따르면 나이는 자유와 반비례했다. 온화 나이는 자유로워야 마땅했다. 온화 육체는 양 약사 영혼만큼 자유롭지 못했다. 삼삼한 웃음은 사실을 일깨웠다. 온화는 니체를 떠올렸다. 곧 니체는 죽었다고 되뇌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니체는 세 가지 변화를 이야기했다. 낙타, 사자, 어린아이로 나아가는 단계였다. 낙타는 주인에게 종속되었다. 가장 무거운 짐을 견뎠다. 힘든 내색 없었다. 사자는 용맹했다. 장벽을 극복했다. 자유를 쟁취했다. 어린아이는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타인을 이해했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했다. 정신 발전 최종 단계였다. 니체는 초인이 되려면 어린아이의 정신을 향해야 한댔다.


 온화는 니체가 낙타 속성을 잘못 상정했다고 여겼다. 니체는 혹에 든 지방이 낙타 생존에 필수임을 고려하지 않았다. 양 약사는 두 혹을 짐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혹이 짐짝일 때도 있으나,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하였다. 양 약사는 지칠 때마다 혹에 든 아이들 기억을 꺼내 먹었다. 다감한 목소리가 맴돌았다.

 ― 건강하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 수 있더라고요. 어떻게든 살아져요.

 혹이 잘린 낙타는 의외로 자유롭지 않았다. 실습 마지막 주에야 알았다. 송 약사 귀띔 덕이었다. 양 약사 쌍둥이는 이 년째 사 학년에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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