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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Feb 22. 2022

약싸개

단편소설 12 화

 자동문은 잠잠했다. 바닥에 뒤집힌 약(藥)자가 검게 늘어졌다. 온화는 덩그러니 남았다. 오 국장을 불렀다. 떠난 환자를 설명했다. 오 국장 낯빛은 어두워졌다. 이끼 낀 바위 같았다. 호통쳤다.

 ― 환자를 못 가게 막고 나를 불렀어야지! 그냥 보내면 어떡해!

 온화는 갸웃했다. 환자는 제대로 된 복용법을 알았다. 오 국장을 불렀다고 한들, 이십팔 일간 잘못 먹은 약을 게워낼 수 없었다.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러게, 누가 실습생을 방치하래. 마스크 아래서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송구한 눈빛을 지어냈다. 성난 바위는 식지 않았다. 길길이 뛰었다. 외쳤다. 소리는 조제실까지 울렸다.

 ― 이러다 송 약사 같은 사고가 생기는 거야! 다들 정신 차리라고!


 얼핏 들은 이야기를 기억했다. 리바록사반(Rivaroxaban)을 두 배 용량 먹은 환자였다. 두 달 내내 두 알을 먹었다. 한 알은 PTP였다. 다른 한 알은 약포지에 들었다. PTP 담당 약사는 리바록사반 상자를 따로 챙겼다. ATC 담당 직원은 그 사실을 몰랐다. 약을 깠다. 다른 약과 함께 약포지에 포장했다. 송 약사는 검수를 담당했다. 놓쳤다. 환자는 속이 이상했다. 병원에 갔다. 대장 출혈이 생겼더라. 먹은 약을 확인했다. 원인을 찾았다. 곧장 중단했다. 보상 여부니, 처분이니, 하는 뒷말은 뜬구름처럼 흩어졌다. 온화는 무게를 생각했다. 약국은 포장 전문 식당과 닮았지만, 사람을 죽이기 훨씬 쉬웠다.


 문득 낯 뜨거웠다. ‘약싸개’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날만큼. 과 후배 입에서였다. 뜻을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두 약대생은 침묵으로 이해했다. 발싸개도 아니고. 약사 개도 아니고. 반박하려니 틀린 말은 없었다. 약사는 정말로 약을 재포장했다. 온화는 제 처지를 미워할 방법을 몰랐다. 뜨악한 합성어를 노려봤다. 못난 말이었다. 못된 말이었다. 특정 직업군을 찌르려 만든 가시였다. 지저분한 바늘은 심장께에 꽂혔다. 힘이 쭉 빠졌다.

 약국에 오 국장이 넘쳐서, 터를 잘 잡아 돈만 보는 작자가 흘러서, 약사는 약싸개 소리를 듣나 싶었다. 사념이 일렁였다. 총 한 자루를 쥐었다면. 탄환이 하나뿐이라면. 총구는 누구를 향할까. 일 순위는 오 국장이었다. 사라진다 한들 그뿐이었다. 해결될 문제는 없었다. 온화는 고민하기 지쳤다. 아무래도 자신 잘못 같았다. 경직에서 홀연히 떠나고 싶었다.


 총구를 관자놀이에 대었다. 방아쇠를 당겼다. 고요했다. 총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겁쟁이 온화였다. 장전 안 한 상태였다. 한 발을 소중히 아꼈다. 한 달 내에 오 국장과 약국을 버틸 수 없다면. 거울 속 약싸개가 못 견디게 부끄럽다면. 비친 머리통이나 시원하게 날리자 다짐했다. 싱겁게 어깨를 털었다. 지평은 태양 끄트머리마저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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